[광고와 춤을] 디지털 이미지 호더의 출현

[광고와 춤을] 디지털 이미지 호더의 출현

  • 황지영 칼럼리스트
  • 승인 2019.11.29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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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에서 영웅적인 제품을 발견하는 것은 드문 일도 이상스러운 일도 아니다. 옛날 3M 디스켓 광고를 통해 확인해 보자. 배경은 사막과 열대우림이다. ‘정전기’를 지시하기 위해 모래먼지, 구름, 내리치는 번개와 같은 기표들이 동원되고 있으며 ‘습기’를 지시하기 위해 야자수, 폭포와 같은 기표들이 배치되고 있다. 모래 더미 아래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프로피 디스켓은 ‘정전기. 먼지 방지 기능’을 함축하며 폭포 앞에 배치된 대형 디스켓은 ‘곰팡이 방지 기능’을 내포한다. ‘전천후 사용’, ‘먼지방지’, ‘정전기 방지’, ‘곰팡이 방지’와 같은 기표들은 ‘상품의 탁월함’, ‘정보의 안전성’을 전달한다.

상품에 내재된 테크놀로지를 ‘영웅적 특성’으로 번역하기 위해 탄생신화가 인용된다. 자연의 힘에 맞서는 테크놀로지란 은유는 문화적으로 친숙한 ‘영웅 서사’를 반복하고 있다. 광고에서 자연과 기술문명은 대립을 이룬다. 번개가 내리치는 가혹한 환경에서 대지를 뚫고 나오는 상품, 상품을 비켜 내리치는 번개는 ‘영웅의 탄생’을 내포한다. 한편 폭포수 사이에서 물길을 막고 ‘거대한 지형’처럼 출현하고 있는 상품은 ‘영웅적인 투쟁’을 내포한다. 적대적인 자연과 그 적대성에 맞서는 기술문명이란 이야기는 3M 디스켓의 ‘영웅적 특성’을 강조한다.

하나의 사물은 도구, 상품, 혹은 사회적 가치를 가지는 기호 중 하나이거나 동시에 도구이자 상품이자 기호일 수 있다. 낡은 저장 장치가 되어버린 프로피 디스켓은 과거와의 연결을 위한 가치 즉, 과거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영웅을 허용했던 과거의 존재방식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현재 외장형 USB 3.5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와 1.44MB 플로피 디스켓과 같은 상품은 레트로 게임, 레트로 게임기, 레트로 키보드, 레트로 파일이란 용어들로 정리되는 레트로 취미의 영역과 관련성을 지닌다. 디지털 저장장치들로 교체되면서 SACCS 운용, 백업, 부팅, 복제를 위한 플로피 디스크의 사용은 과거의 경험이 되었다.

교체된 새로운 저장장치들은 일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우리는 사진촬영, 동영상촬영을 통해 형상을 복제하고 획득하면서 실재성을 입증하고자 한다. 이미지의 복제는 세상과 연결되는 손쉬운 방법이 되었다. 복제하고 인증 샷을 올리는 행위는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매일의 실천행위인 것이다.

메가바이트에서 기가바이트로의 저장용량의 증대는 과잉 복제되는 이미지들의 저장을 용이하게 한다. 이미지는 세계를 지배한다. 그리고 예기치 못한 새로운 사태가 초래된다. 저장장치를 가득 채우고 있는 이미지들은 폐기불능의 상태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사태는 디지털 이미지 호더 (image hoarder)의 출현을 예고한다.

복제, 복제의 복제, 복제의 복제의 복제...를 무한반복하면서 우리는 이미지의 폭력에 대해 통제력과 방어능력을 상실한다. 기술은 이제 오래된 영웅?본색을 은폐하고 신의 자리를 탐한다. 인간존재를 재규정하고 인간성의 한계를 새로이 설정한다.

 


황지영 경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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