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출문제를 빼돌려 판매한 경우, 저작권 침해일까요?

기출문제를 빼돌려 판매한 경우, 저작권 침해일까요?

  • 윤혜진
  • 승인 2019.01.28 0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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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19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가장 난이도가 높았던 국어 문제입니다(과학 문제 아닙니다). 창의, 융합이라는 수능 문제의 진수를 보는 것 같은데요. 맨 밑의 경고문이 보이시나요? 이 문제지에 관한 저작권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있다는 것입니다. 네, 시험문제에도 저작권이 있습니다. 아래 문제는 저작권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창작성을 뛰어 넘은 고도의 창작물이고요. 풀이방법 또한, 저마다 창작성이 인정될 것 같습니다.

수능의 취지가, 말 그대로 대학에서 수학할 능력이 있는지 검증 받는 것이라면, 단순 암기식 시험보다는 분명 진일보한 시험일 것입니다. 앞으로 입시를 치러야 하는 입장에서는 학교 교육만으로도 시험을 치를 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있고요. 대한민국 입시를 다룬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가 인기입니다.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가 봅니다. 비록 그 양상은 다르지만요. 우리 저작권법에서도 교육 목적이라면, 저작권자의 권리행사가 제한되는 경우를 나열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기준이 엄격합니다.

학교는 교육을 위해서 여러 자료들을 활용하는데, 일일이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는 것은 어려우므로, 수업목적상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동의 없이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교사가 시중에 나와 있는 문제집을 복사하여 학교 홈페이지에도 업로드한 것인데요. 수업목적상 복제, 전송한 것이므로 저작권의 행사가 제한됩니다. 물론 수업에 불필요한 부분까지 통째로 업로드하였다면 저작권 침해에 해당할 수 있고요.

창작성이 없다면 저작권 제한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겠지요. 시험 문제에도 창작성이 있는가와 관련하여, 법원은 “교과서, 참고서 등의 일정부분을 발췌, 변형하여 구성되었으나, 출제위원들의 정신적인 노력에 의하여 남의 것을 베끼지 않고 문제를 출제하였고, 질문의 표현이나 제시된 여러 개의 답안의 표현에 최소한도의 창작성이 인정된다면 저작물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서는 의사 및 간호사 국가시험을 출제합니다. 법원은 기출문제는 대학 교수들이 문제은행에서 선별, 수정을 거친, 최소한의 창작성이 인정되는 것으로, 저작물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가 하더라도 비슷할 수 밖에 없는 표현, 즉 저작물 작성자의 창조적 개성이 발현된 여지가 없는 경우에는 저작물의 창작성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재무관리에 대한 이론, 풀이방법이 정해진 재무문제들에는 창작성이 인정되기 어렵겠죠.

평생교육원이나 원격교육기관도 자유롭게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을까요? 학교는, 특별법에 의하여 설립된 유치원, 초.중.고.대학교입니다. 법원은 평생교육법에 따라서 원격평생교육시설로 신고된 교육기관에서, 교과서의 지문을 설명하여 제작한 동영상을 수업자료로 활용한 사안에서, 법원은 특별법에 의하여 설립된 학교로 제한되므로, 유치원, 초.중.고.대학교를 제외한 기관에서 이 같은 동영상을 제공한 것은 저작권 침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학교가 아닌 곳에서는 교육목적임에도 불구하고 저작물을 전혀 사용할 수 없는 걸까요? 저작권법에서는 공표된 저작물은 교육을 위해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허용기준이 학교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까다로운데요. 공표된 저작물이라 하더라도 정당한 범위 내에서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인용되어야 합니다. 즉, 사용되는 저작물이 주를 이뤄서는 안 되며, 일부를 발췌, 부연, 참고한 정도로만 사용되어야 하며, 반드시 비영리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영리 목적인 경우에는 제한적으로 허용됩니다. 학원과 관련된 사건은 주로 기출문제를 그대로 또는 조금 변형하여 강의하는 경우인데요. 아래 법원 판단에 의하면, 직.간접적으로 영리활동을 하는 학원이, 기출문제를 대부분 그대로 베껴서 사용하는 것은 사실상 허용되지 않는 듯 합니다.

법원은, 학원이 대학별로 출제된 논술문제를 그대로 복제하여 문제집을 만든 사건에서, 대학별 논술문제는 대학수능시험처럼 일반에게 공표된 저작물이라고 볼 수 없고, 논술 기출문제와 동일한 문제는 “기출문제로”, 기출문제와 유사한 문제들은 “유제” 라는 표제로 기출문제에 연이어 싣고 있어, 정당한 범위 내에서의 인용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고등학교 시험문제 역시, 교사들의 정신적인 노력에 의한 것으로, 최소한 남의 것을 베끼지 않은 창작성이 인정되는 저작물입니다. 족보닷컴에서 전국의 중.고등학교 시험문제를 자료화 한 후, 유상으로 판매하였는데요. 족보닷컴에서는 교과서를 펴낸 출판사와도 사용계약을 체결하였으므로, 교과서를 활용한 시험문제에 대해서도 저작권료는 지불하는 것은 이중으로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것이라고 항변하였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시험문제는 교과서와는 별개의 저작물이고 최소한의 창작성이 인정되므로, 시험문제에 대해서도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한편, 족보닷컴을 저작권 침해로 고소한 원고는, 공립 및 사립고등학교의 교사들이었는데요. 교사들이 원고로서의 지위, 즉 저작권자로 인정되는지에 대해 상반된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법원은 공립학교인 경기고 교사들에 대해서는 시험문제가 경기고 명의로 출제되었고 출제한 교사들의 이름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으므로, 이를 단체명의저작물로 보았고, 저작권은 공립학교의 설립주체인 서울시에 귀속된다고 하였습니다. 반대로, 숭의여고 교사들에 대해서는 교사들의 이름이 출제자로 기재되었고 숭의여고 1학기 중간고사라고 기재된 것은 시험문제의 출처를 나타낸 것일 뿐 저작권자가 숭의여고라는 의미는 아니므로, 학교의 명의로 공표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저작권은 교사들에게 귀속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결국, 똑같이 시험문제를 출제하였는데, 누구의 명의로 출제되었는지에 따라서 저작권자가 달라지게 된 셈입니다. 어쨌든 두 경우 모두 저작권 침해이고요.

토플은 어떨까요? 토플문제는 미국에서 저작권 등록이 되어 있으며, 미국의 주관법인은 부득이한 사정을 제외하고는, 전세계에 동일한 문제로 응시생들에게 소정의 비용을 받고 시험을 치르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토플 시험 감독이 토플시험문제 총 2,840문항을 입수하여 이를 영어잡지사에 넘겼고, 이 잡지사는 이중 1,100문항을 복제하여 잡지의 별책부록에 실었습니다. 이 사건은 1992년 발생한 것으로, 미국의 주관법인은 1990년 문제가 1991년 해당 잡지에 실린 것을 모르고, 동일한 문제로 1992년에 토플 시험을 치르게 합니다. 뒤늦게 수험생들의 항의를 받고 해당 시험을 취소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서는 잡지의 별책부록으로 기출문제가 수록된다는 것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죠?

그렇다면 무료 강의는 어떨까요? 아무리 교육상 목적이라 하더라도, 법원은 간접적으로라도 영리의 목적이 있다면, 공정한 관행에 의한 인용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건에서 해당 학원은 기출문제를 활용하여 동영상 강의를 했으나, 무료로 한 것이므로 저작권의 행사가 제한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지만 법원은 이 강의로 수험생을 유치하기 위한 목적이 없다고 볼 수는 없으므로, 간접적으로 영리의 목적이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학원에서는 학생들을 통해 기출문제를 얻는 것 같습니다. 시험을 치른 학생들에게 풀이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기출문제를 복제한다면 저작권 침해라고는 할 수 없겠죠. 그러나 몇 년간의 기출문제를 그대로 베껴서 숫자 정도만 바꾼 후, 마치 학원에서 펴낸 문제집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겠죠. 기출문제는 그 귀속관계를 떠나서 창작성이 인정된다고 봐야 합니다. 기출문제를 빼돌리고 그것도 거액을 받고 한 사람에게만 제공했다면, 공표된 저작물 여부는 별론으로 해도, 적어도 정당한 범위 내에서 행한 공정한 관행은 아니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드라마에서는 기출문제가 아닌, 진짜 시험문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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