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을 잘 몰랐다'라는 변명만큼은...

'고객을 잘 몰랐다'라는 변명만큼은...

  • Jordan
  • 승인 2019.02.01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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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업은 규제를 가장 많이 받는 산업 중 하나이다. 금융거래를 위해 민감한 개인정보를 취급할 수 밖에 없고, 고객에게 직접적인 금전적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배경에서 금융회사는 고객, 주주 그리고 일반 대중을 상대로 한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있어서 법규에 위배될만한 사안은 없는 지를 항상 주의 깊게 살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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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C’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혹자는 “그거 어릴 적 즐겨 신던 양말 브랜드 아닌가요?”라며 반가운 표정을 지을 지 모르겠다. 하지만 ‘KYC’는 영어 ‘Know Your Customer’의 줄임말로 우리나라에서는 ‘고객알기제도’라는 말로 금융권에서 사용되고 있다.

고객이 자금세탁의 목적으로 금전 거래를 하는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고객 신원을 확인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투자상품을 고객에게 권유하는 입장이라면 고객의 재정상황, 위험성향, 나이 및 투자경험 등을 잘 따져서 고객의 특성에 맞게 투자상품을 권유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실제로 고위험의 펀드 상품을 투자경험도 별로 없고 위험성향도 낮은 고객에게 투자하도록 권유했다면 이는 자본시장법상 적합성 원칙을 위반한 것이 된다. 일반기업의 입장에서 본다면 고객 성향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상품을 개발하고 판매하는 일은 기업 재량에 달린 일이지만, 금융업에서는 중요한 법규 준수 사항이 되는 것이다.

금융회사가 얼마나 법규를 잘 준수하는 지는 기업 평판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어, 금감원이 발표하는 민원평가에서 만년 꼴찌를 한다거나 펀드 미스터리 쇼핑(*위탁받은 외부전문기관 또는 금감원 직원이 고객신분으로 판매회사의 판매과정을 점검하는 방법)에서 최하위 점수를 받았다면 오랫동안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통해 쌓아온 노력들이 모두 빛을 바랠 것이다.

대규모 자본으로 세워진 금융회사들은 공시규제를 받는 상장사인 경우가 많다. 상장사가 아니더라도 은행, 보험, 증권사 등 금융회사의 실적과 주요 경영활동은 대부분 소속 협회 등을 통해 대중에게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공시되는 내용들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기사화되어 확대·재생산 될 수 있기 때문에 금융회사의 홍보담당자라면 언제 어떤 내용이 공시될 지에 대해 미리 잘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모든 기업들에게 소셜 미디어 채널을 통해 온라인 공간에서 확산되는 스팸, 음성 피싱, 가짜 뉴스 및 잘못된 정보 등은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평판과 브랜드 영향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금융회사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금융업의 공공재적 성격으로 많은 사람들은 금융회사에 대해 보다 높은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금융회사들은 급작스러운 상황에 대비하여 가장 빠르고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시의적절한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대응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레그테크(Reg-tech)의 개념을 커뮤니케이션 업무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레그테크는 규제 준수를 돕기 위한 기술로 인공지능이나 빅데이터를 활용해 금융회사 임직원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감시하고 보고하는 시스템이다. 최근 금융권에서는 AI나 블록체인 등 기술을 활용한 업무 프로세스 혁신이 가속화되고 있다.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활동과 컴플라이언스 및 위험관리에 드는 비용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기업들은 순이익의 5% 정도를 컴플라이언스 및 위험관리에 지출하고 있으며 이 비율은 매년 40%씩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종이로 인쇄된 문서를 통해 일방향으로 전달하던 커뮤니케이션 활동은 첨단 통신기술의 시대에서는 더 이상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혁신적 기술 발전은 금융 커뮤니케이션의 여러 분야에서도 전통적 시스템을 뒤엎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고 있다.

글로벌 금융회사들은 이미 ‘커뮤니케이션 지배 전략(Communication Governance Strategies)’의 개념을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급변하는 금융 규제 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가고 있다. 이를 통해 고객 니즈를 더 잘 이해하고 고객 만족을 높일 수 있는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 활동과 평판 관리를 도모하는 것이다.

한 조사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금융회사들은 규제 준수를 위해 한 해 약 80조원의 비용을 지출한다고 한다. 개인정보보호나 투자자보호 뿐만 아니라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필요한 규제 준수를 위해서도 막대한 관리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점점 더 많은 규제 기관들이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도 보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신뢰받는 금융회사로서의 명성과 브랜드 파워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객 이익 극대화를 위한 지속적인 경영활동과 고객 눈높이에 맞춘 커뮤니케이션 노력이 어우러졌을 때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결실이다. 하지만 한 순간 법규준수에 방심하거나 기업의 단기적 이해득실만을 따진 편협한 판단으로 커뮤니케이션 기회를 놓치게 된다면 또 언제라도 고객으로부터 외면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성공적인 금융 커뮤니케이션과 평판 관리를 위해 투철한 준법정신을 빼놓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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