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정신병원의 가짜 환자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정신병원의 가짜 환자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5.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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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GianCarlo Greco / Unsplash
사진 GianCarlo Greco / Unsplash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잭 니콜슨이란 배우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라는 영화로 남우주연상을 타면서 처음 각인되었다. 아주 어린 시절이었지만 미국 정신병원에 대한 두려움도 막연히 자리 잡았다. 미국의 정신병원은 심리학자들의 실험 무대가 되곤 했는데, 데이비드 로젠한이 1968년에 한 실험이 유명하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원작은 1962년에 나왔으나, 영화를 제작할 때는 로젠한 실험의 영향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거꾸로 로젠한은 원작 소설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건 자연스러우니까.

로젠한은 병원에 정상인을 보내며 정신병 환자 행세를 하라고 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기록하는 게 그들 가짜 환자들의 임무였다. 로젠한이 보낸 가짜 정신병 환자 중에 의료진이 가짜라고 적발한 경우는 없었다. 처음에 의사와 간호사들의 행동을 은밀하게 기록하던 가짜 환자들은 아무 의심도 사지 않자 대놓고 기록하는 데도, 의사와 간호사들은 정신병 중 조현병의 증상 중 하나라고 믿었다. 거의 모든 행동에 대해 ‘조현병이라 그렇다’라는 식의 해석이 덧붙여졌다. 한 가짜 환자가 복도에서 헛디뎌 발을 삐었는데, 간호사들이 “오늘도 역시 신경이 예민하군요”라고 조현병 환자는 그런 경우가 있다고 했단다.

가짜 환자에 속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그 병원에 있던 진짜 정신질환을 앓고 들어와 있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의사와 간호사들은 새로 온 환자들이 가짜라는 진짜 환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환자들 말을 어떻게 믿어’라는 식이었음은 당연할 수도 있다. 실제 정신이 온전하지 않아서 병원에 들어온 사람들이니 그럴 만도 하지 않은가. 그래도 여러 사람이 이야기하면 귀를 기울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일수록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 자신만의 확신에 빠지는 경향이 아주 강하다.

어느 영화를 두고 음란 포르노인지 예술 작품인지 문제가 되었던 1964년에 당시 미국 대법관이었던 포터 스튜어트가 판결문에 써서 유명해진 말이 있다.

“그냥 보면 안다(I know it when I see it).”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딱 보면 안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해버리는 이가 공식 자격까지 가진 전문직 인사라면 문제가 있다. 그들 전문가라는 이들의 좁은 이너서클 밖의 사람들은 반론을 제기할 수 없다. 받아들일 자세도 전혀 되어 있지 않다.

피의자가 유죄라는 확신을 한 검사들은 유죄를 입증하는 증거들만 모으기 쉽다고 한다.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것들은 무시하거나 버리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혹시나 무죄를 주장하는 이에게는 유죄라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것들을 보이다가, 피의자가 알지 못하는 법 조항 등을 들이밀며 공격하곤 한다.

마케팅에서도 이런 사례를 자주 본다. “소비자들이 뭘 알아”라는 말을 하며, 스티브 잡스는 절대 조사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까지 가지고 오는 이들을 꽤 봤다. 물론 그렇게 해서 성공하는 신제품이나 새로운 광고도 있지만, 압도적으로 실패로 귀결된 비율이 높다. 실패의 쓴맛을 다질 때, 제대로 소비자의 소리를 듣지 않았다고 돌변하는 이들도 꽤 봤다.

위에서 얘기한 로젠한의 연구 뒤에는 소소한 반전이 있다. 가짜 환자들을 의사와 간호사라는 의료전문인들이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결과를 로젠한이 발표하자,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에 이상이 있다며 병원에 왔으니, 가짜 환자라고 생각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로젠한은 한 정신병원에 그때부터 3개월 동안 가짜 환자들을 보낼 터이니, 찾아내 보라고 제의했다. 이후 193명의 환자가 3개월 동안에 그 병원을 찾았다. 병원에서는 그중 41명을 가짜 환자로 지목했다. 5명 중 하나꼴이었다. 약속한 3개월이 지난 후 로젠한이 결과를 발표하며 말했다. 단 한 명의 가짜 환자도 보내지 않았다고 했다. 의사들에게는 악몽과 같은 반전이었다.

소비자들을, 고객들을 잘 안다고 확신하지 말라. 그리고 전문가라고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우월감을 느끼고 우기지는 말라.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이화여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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