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21세기 타이타닉의 비극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21세기 타이타닉의 비극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6.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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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탄 잠수정 (출처 오션게이트 트위터)
타이탄 잠수정 (출처 오션게이트 트위터)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타이타닉의 비극’은 원래 1912년 4월 영국에서 첫 출항에 나서 미국으로 항해하던 당시 최고의, 최대의 호화여객선인 타이타닉 호가 빙하에 부딪혀 탑승 인원 2천 2백여 명 중 1천 5백여 명이 사망한 대형 해난사고를 말한다. 1997년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무려 2억 달러가 넘는 제작비를 쓰며 <타이타닉>이란 제목의 영화로 제작하여 전 세계적으로 현재까지 20억 달러가 훌쩍 넘는 수익을 올렸다. 최근 그 제임스 캐머런 감독도 소환되고, 타이타닉이란 단어가 다시 사람들 사이에 회자하고, ‘21세기 타이타닉의 비극’이란 말도 등장했다. 바로 지난 6월 18일 111년 전에 침몰한 타이타닉 호의 잔해를 보기 위해 5명이 탄 잠수정이 잠수 시작 2시간이 채 되지 않아 연락이 끊기고, 5일 만에 잠수정의 잔해들이 발견되며, 잠수정에 탔던 이들은 모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나면서였다.

잠수정의 이름이 ‘타이탄’인 것은 비극의 전조인가, 자연스러운 것인가. 잠수정의 운영회사인 오션게이트 익스페디션의 스톡턴 러시 최고경영자(CEO)와 영국 국적의 억만장자 해미쉬 하딩, 파키스탄계 재벌 샤자다 다우드와 그의 아들 술레만, 프랑스의 해양 전문가 폴 앙리 나졸레가 잠수정에 타고 목숨을 잃은 5명이었다. 영국과 파키스탄의 억만장자 3명은 25만 달러, 한화로는 3억 5천만 원 가까운 돈을 내고 잠수정으로 심해로 들어가는 특이한 관광에 나섰다가 참변을 당했다. 관광 목적으로 탄 승객이 다수인 잠수정과 연락이 끊기자 바로 미군 해안경비대 선박들이 출동하여 수색을 시작했고, 캐나다와 프랑스에서도 구조대가 꾸려졌다. 전 세계 언론에서 실시간으로 시시각각 진행 상황을 긴급 뉴스로 전했다. 잠수정의 잔해가 발견되었다고 하자 바로 SNS의 주요 검색어로 떴고, 더욱 분주하게 관련된 소식으로 이어졌다.

타이탄 잠수정이 타이타닉 호의 잔해가 묻힌 곳으로 잠수해 들어가기 4일 전에 유럽의 그리스 남부 펠로폰네소스 해안에서 700여 명의 파키스탄인이 주류를 이룬 난민들을 태운 배가 침몰당하였다. 배는 침몰당하기 전 최소 7시간 이상 움직임이 없는 상태였고, 그걸 그리스 해안경비대에서도 인지하고 있었으나, 아무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타이탄 잠수정의 연락 두절 이후에도 침몰당한 난민선의 실종자들 몇몇은 생명이 붙은 채로 사고 해역 주위에 있었으나, 관련된 기사는 보기 힘들었다. 구조 노력과 관심도 잠수정과는 비교되지 않았다.

잔혹하게까지 들리는데 인명 사건을 두고,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양상을 보면 서유럽이나 미국을 포함한 북미와 같은 잘 사는 나라와 경제적 여건이 안 좋고 그래서 국제 영향력이 낮은 국가들 사이에 확실하게 차이가 있다. 즉 미국인 1명이 죽은 게 나이지리아에서 20명이 사망한 것보다 세계 미디어에 크게 보도가 된다는 식이다. 이번 잠수정 사고가 직후에 국제적 관심사로 떠오르면서부터 그리스 난민선과 대비하는 기사가 소수이지만 나왔다. 극단으로 치우치는 경향이 심하게 나타나는 SNS에서는 특히 파키스탄 재벌 부자를, 비난을 넘어 매도하고 조롱하는 말까지 나왔다. 난민선에서 사망·실종으로 분류된 이들의 절대다수가 파키스탄의 빈곤한 지역 출신들이었으니 비교가 될 만도 했다. 그런데 사망한 다우드 가문은 사업도 사업이지만 빈민과 사회를 위한 자선사업으로도 명망이 높았다고 한다. 다우드 부자 사망을 조롱하는 몰지각한 SNS 포스팅을 올리는 이들을 두고 한 파키스탄 언론인이 이런 말을 했다.

“그런 무분별한 SNS 사용자들의 숫자는 다우드 집안이 도운 이들의 1%에도 미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혹은 먼저 접한 한쪽만을 보고 거기에 집착하는 습성이 있다. 다우드 부자를 두고 특이한 관광을 하려 ‘돈지X’을 한 재벌로만 보는 이들이 있고, 자선활동에 앞장서다가 휴가 때 불의의 사고를 당한 안타까운 기업인으로 평가하는 쪽도 있다. 양쪽이 평행선을 그며 점차 멀어져 가고, 서로 편을 갈라 비난한다. 이런 양극단화가 심해지는 상황이 21세기의 정말 심각한 비극이다.

원래 알고 있는 부분에만 매달려서는 진실이 왜곡 당한다.

잠수정 잔해가 발견되고 사고 원인이 ‘implosion’이란 외신 보도가 나오자, 한국 언론에서는 처음에 이를 ‘내부 폭발’이라고 번역해서 띄웠다. ‘폭발’이란 뜻으로 원래 알고 있던 ‘explosion’과 대비하여 쓴 것이다. ‘내부 폭발’이라는 표현은 내부의 시설이나 설치된 폭발물이 터져서 나가는 걸 연상케 한다. 그러나 ‘implosion’은 그와는 반대로 보통 ‘내파(內跛)’라고 번역하며 압력 등으로 순식간에 찌그러지거나 수축하여 내부 균열이 발생하고 깨지는 현상을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최초 ‘내부 폭발’이라고 표기하던 기사의 제목은 ‘내파’로 대부분 바뀌었는데, 계속 ‘폭발’을 쓰며, 외부로 터져 나간 듯한 느낌을 주고 있는 기사들도 많다. 비극에서도 방향은 중요하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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