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7월초에 생각하는 ‘먹다’와 광고에서의 중의적 표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7월초에 생각하는 ‘먹다’와 광고에서의 중의적 표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7.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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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처: TV조선 유튜브 캡처
촐처: TV조선 유튜브 캡처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요즘 40대 이하의 친구들은 홍수환 선생을 노년층 대상 건강식품의 광고 모델로 잘 보지도 않는 종이 신문이나 잡지에서 봤다고 한다. 조금 더 관심이 있다면 왕년의 유명 복싱 선수로, 그 경험을 가지고 복싱 경기 해설자로 나서거나 강연하고 예능 프로그램에 이따금 나오는 인물 정도로만 알고 있다. 홍수환 선생의 입담이 최초로 전국에 빛을 발한 때는 1974년 초여름의 7월 4일 아침이었다. 학교에 가려고 집을 나서기 직전 라디오에서 나오던 흥분한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그에 이어진 홍수환 선수와 그 어머니의 지금도 전설로 회자하는 통화 대화를 확실하게 그 분위기까지 기억하고 있다.

“엄마야, 나 챔피언 먹었어.”

“김기수 선수 어머니가 그렇게 부럽더니만. 일생 소원을 풀었어, 수환아. 귀에 피는?”

“피 안 나와요, 지금.”

“대한국민 만세다! 대한국민 만세야!”

중간 대화는 앞뒤의 ‘챔피언 먹었어’와 ‘대한국민 만세’의 강렬함에 가려 별로 기억하는 이가 드물다. ‘대한국민 만세’가 아닌 ‘대한민국 만세’로 기록하고 얘기하는 이들도 많다. 모자의 대화가 강렬했기에, ‘먹었어’가 여러 분야에 쓰였다. 홍수환 선수의 말에 의하면 그 북한 지역 출신인 어머니가 늘 ‘먹어야 한다’를 강조하셨다고 한다.

그 어머니는 약 30년 동안 평택의 미군 캠프 안에서 카투사들에 한국 음식을 먹였다. 한국 음식을 주로 파는 보통 스낵바라고 불리는 부대 내 음식점을 운영했다. 카투사로 지원 입대한 인원들은 논산훈련소에서 기초 훈련을 마치고, 카투사 교육대로 가서 미군 부대에서 생활할 수 있는 기초 교육을 받았다. 하루 훈련을 마치고 저녁 식사까지 한 후에 서양 음식의 느끼함을 떨치기 위해 카투사 훈련병들은 스낵바를 찾아 매운 라면을 먹어댔다. 먹는 데만 열중하다가 잠시 숨 돌릴 때면 어느새 ‘대한국민 만세’의 주인공인 황농선 여사께서 옆에 와서 “잘 먹었어?”라고 말문을 트고는 슬며시 홍수환 선수 소재로 얘기를 돌리곤 하셨다. 그러면 어김없이 카투사 친구들은 ‘챔피언 먹었어’를 끄집어내곤 했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 쓰임새에서 가장 힘들어하는 동사가 ‘먹다’라고 한다. 영어로는 ‘take’, ‘get’이 가장 다양한 경우에 쓰이는 동사라고 하는데, 표현 하나로만 보면 ‘먹다’는 영어의 두 단어보다도 몇 단계 위인 것 같다. 요 며칠 사이에 음식물과 상관없이 ‘먹다’가 쓰인 경우가 숱하게 있다. 힘없이 귀가한 아들은 ‘더위 먹은 것 같아요’라고 했고, 모임에서 처음 만난 후배 둘은 서로 ‘나이를 얼마나 먹었나’ 확인을 하더니 곧 ‘친구를 먹기로’ 했다. 사진작가 친구의 스튜디오에 들르니, 최근 찍은 작품을 보여주면서 ‘빛이 잘 먹었다’고 했다. 어느 기업의 로고 시안을 여러 색깔로 보여주면서 어느 한 시안을 두고 디자이너는 ‘색이 안 먹는다’라고 했다. 엘살바도르와의 국가대표 친선경기에서 한국 축구 대표팀은 종료 몇 분을 남기고 ‘동점 골을 먹었다’라고 했다. 생각나는 것만 이 정도이니 그냥 흘려 들은 ‘먹다’로부터 파생된 표현들은 얼마나 많겠는가. 각각의 경우에 맞게 쓰일 다른 동사들도 있겠지만, ‘먹다’의 활용형을 씀으로써 주는 느낌은 다르다.

이런 여러 뜻을 가진 단어들을 광고에서 쓸 때,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고 싫어하는 이들도 있지만, 보는 이들에게 해석의 여지를 준다고 해서 긍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그런 데서 반전의 계기도 만들어지곤 한다. 온라인 쇼핑 플랫폼인 ‘지그재그(ZIGZAG)’에서 각 분야에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는 6명의 여성과 함께 ‘나다움’을 주제로 캠페인을 진행했다. “제가 알아서 살게요”라는 카피가 나온다. 모델들이 쇼핑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어울리지 않는다’, ‘이상하다’는 식의 말을 하며 수군거린다. 그때 “제가 알아서 살게요”라는 카피가 나오는데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내가 알아서 내 인생을 잘 살아가겠다(live)’와 ‘내가 알아서 옷을 잘 골라 사겠다(buy)’. 어느 쪽으로 가든 제대로 반전을 가져오는 ‘먹히는’ 카피이다.

‘홍수환 선수의 ‘챔피언 먹었어’라는 힘겹게 싸워서 취한 것으로도, 너무 쉽게 얻어걸린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어쨌든 그 느낌을 몇 가지로 영어 번역 시도는 해봤지만, 마음에 드는 걸 찾지는 못했다. 7월 4일이 낀 주를 맞아, 1994년 돌아가신 황농선 여사님께서 약간은 넋두리처럼 해 주시던 홍수환 선수와 그의 가족들 이야기를 생각하며, 독자들에게 ‘먹어주기’를 바라며 썼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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