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휴가는 ‘off’의 시간이 아니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휴가는 ‘off’의 시간이 아니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8.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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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자녀분이랑 대화는 얼마나 하시나요? 밤낚시 가서 저수지를 돌며 아드님이랑 이야기를 나누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신입사원 입문 교육에 당시 이미 신화가 된 초고속 승진으로 이름 높았던 임원이 특강을 했다. 자신이 얼마나 일을 열심히 했는지 신입 시절부터 그때까지의 회고담이 주를 이루었다. 특강 후에 연수를 담당한 선배가 정해준 ‘취미는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한 친구가 했다. “취미는 자기가 재미있고 즐기는 걸 하는 거잖아. 나는 일하는 게 제일 재미있더라고. 그래서 굳이 취미라고 하면 일이지”라고 대답을 해서, 우리 교육생들 사이에 ‘와’하는 탄성이 다수에게서 나왔는데, 바로 한 친구가 각본에 없는 위에 있는 질문을 했다.

왜 꼭 ‘밤낚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자신감의 카리스마를 뿜고 있던 임원이 ‘밤낚시라, 밤낚시······’라고 혼잣말처럼 몇 차례 중얼거리더니, 표정을 추스르고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일만 하느라 가족들을 챙기지 못했다며 앞으로는 그럴 시간을 좀 갖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그 대답으로 특강이 마무리되었고, 밤낚시 질문을 한 친구는 지도 선배에게 끌려가 무례한 행동을 했다고 경고받았다. 임원은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르겠으나, 딱히 다른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때까지 일만 해왔던 관성이 있고, 일 이외에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놀아야 하는지 알지 못했고, 무엇보다 노는 것 자체를 죄악시하는 풍조가 적어도 임원들 사이에서는 확실히 있던 시대였다.

한국의 대표적인 제조업체 대기업 몇 곳을 다녔는데, 여름에 4~5일 공장 전체 가동을 멈추고 생산직 모두가 휴가를 즐기는 제도가 있었다. 그 기간에 맞춰서 주요 해수욕장 같은 곳에 직원들 여름 캠프를 운영하는 기업도 있었다. 본사의 임원들도 공장이 쉴 때 맞춰서 휴가를 내는 게 불문율이었다. 그 휴가도 한꺼번에 전체 임원들이 빠지면 안 된다고 해서 2일 조, 3일 조로 나누었다. 즉, 어느 본부에 임원이 다섯 명이 있다면 공장 휴가 주간에 2명은 월요일과 화요일을 쉬고, 3명은 수요일에서 금요일까지 쉬는 식이었다. ‘앞뒤로 주말 이틀이 있어 4일을 쉬는 게 어디냐, 예전에는 하루도 쉬지 못했다’라며 세상 좋아졌다는 식의 얘기를 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실제 제조업체에 있다가 계열 광고 회사로 온 인사 중에는 처음으로 여름휴가를 간다면서 자랑과 쑥스러움을 섞어서 얘기하기도 했다. 아래 직원들을 위하여 임원들은 꼭 휴가를 가라는 지시가 최고경영층에서 내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등 떠밀리다시피 해서 휴가라고 갔다가 하루나 이틀 만에 회사로 와서는 자기 방에만 있을 테니까 자신에게 신경 쓰지 말고 일하라는 임원들도 몇 명 봤다. 그런 임원들을 존경 어린 시각으로 보는 이들도 예전에는 있었지만, 갈수록 애처롭게 보는 이들이 다수였다. 그런 자세가 회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나왔다.

“Much of what we call management consists of making it difficult for people to work (우리가 관리/경영이라고 하는 행위 대부분이 사실은 사람들이 일하기 힘들게 만드는 것들이다).”

‘경영학의 아버지’라고 하는 피터 드러커 선생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심지어는 동작 하나하나까지 매뉴얼로 만들고 철저하게 관리하기로 유명했던 헨리 포드조차도 '직급이란 잘난 체하는 것을 자기 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라고 비슷한 말을 했다. 그러니까 임원이나 상급 관리자들이여, 너무나 열심히 휴가까지 반납하며 일하지는 말자.

휴가나 개인 용무를 보러 회사에 출근하지 않는 날을 두고, 영어로 보통 하루 일을 쉰다는 식으로 'Day-off'라는 표현을 쓴다. 하루가 ‘on’으로 켜져 있는 게 아니라 ‘off’로 꺼져 있다는 거다. 회사 일을 하지 않으면 헛되이 보내는 시간 취급을 하는 거다. <원더박스>라는 책의 저자는 거기에 반전을 일으키고 싶어 했다. 그는 회사 일을 하지 않는 여가를 'time-on'이라고 하자고 제안한다.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이 내가 인간적으로 본래 그렇게 살아야 하는 시간이 멈춘 상태이고, 회사에서 나와서 정말 제대로 된 시간을 산다고 생각하자는 것이다. 실제 그의 아내가 실행했는데, 휴가나 병가를 쓸 때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집으로 회사 일을 가져오는 경우도 줄고, '급여'보다는 '휴일'을 늘려달라 회사에 요구하는 등 생활 모습이 바뀌었다고 한다. 평소 쓰는 낱말의 표현만 살짝 바꿔도 반전이 일어난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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