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누구이건 오라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누구이건 오라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8.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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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오늘날 수피즘은 실체 없는 이름이지만, 과거에 그것은 이름 없는 실체였다.”

대학 때부터 인연이 있던 역사학 교수 친구가 진행하는 이슬람 문명을 주제로 한 강의 시리즈를 듣고 있다. 이슬람 권역의 변방에 산재해 있는 소수 종파로, 빙빙 돌며 춤을 춰서 아래가 벙벙한 옷으로 원통형 대열을 만드는 모습으로만 기억하는 수피즘(Sufism)을 그로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안다고 해도 ‘신비주의’, ‘금욕주의’ 같은 수식어만 이름 앞에 붙이는 정도이다. 그런데 천여 년 전에도 수피즘에 대한 이슬람인들의 지식이나 이미지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나 보다. 동페르시아의 부샨지(Bushanj)에서 이름을 날렸던 알리 이븐 아흐마드 부샨지라는 이슬람 지도자가 수피즘의 요체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아랍어로 위와 같이 말하며 불평하였다고 한다.

알리 이븐 아흐마드 부샨지가 보기에 과거의 사람들은 자주 단식하고, 거친 양털 옷을 입고, 빙빙 돌며 춤을 추는 등 나름의 실제 모양, 곧 실체를 갖춘 종교 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를 통괄하여 지칭하는 용어, 곧 ‘수피’라는 브랜드명은 없었다. ‘수피즘’으로 아우르는 브랜드명을 가진 그의 시대에는 그 명칭에 얽매이며, 종교적인 실행을 소홀히 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질책으로 맨 위에 있는 것과 같은 말을 하지 않았나 싶다. 부샨지 같은 지도자가 있어서인지, 수피즘에서는 신과 합일을 매우 강조한다. 수피의 길이자 목적지가 인간적 완성, 신의 이미지의 실재화로 이루는 신과 합일이라고 한다.

수피즘의 또 하나 특징 중의 하나가 문학, 특히 시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시는 얼핏 보면 사랑을 읊은 것 같은데, 마치 독립만세운동 때의 민족지도자 33인 중 하나로 불교 지도자이자 독립지사였던 만해 한용운의 시에 나오는 ‘님’처럼 인간계인지 신계인지 구별할 수 없다. 구분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한쪽으로 정의하는 행위가 미성숙함을 드러낸다. 수피즘을 테마로 한 강의를 들으면서 잘랄 앗딘 루미-표기가 약간 다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잘랄 루딘 루미’, ‘잘랄 앗딘 알 루미’, ‘잘랄 앗 딘 알 루미’ 등-란 수피즘 시인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도 아름답게 와 닿았던 그의 시편 구절들이다.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봄의 정원으로 오라>라는 제목의 시 일부이다. ‘당신’은 한용운의 ‘님’처럼 사랑하는 이도, 절대자 신(神)도 될 수 있다. 봄의 정원에 ‘꽃과 술과 촛불’을 차려 놓았는데, 기다리는 이가 오지 않는다면 준비한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반대로 그리는 이가 와 있다면 차려 놓은 온갖 것들은 없어도 무방하다. 20세기 말에 한국에서 인기 있던 밴드가 부른 <당신만이>란 노래에도 ‘눈 부신 햇살’도 ‘은은한 달빛’도 아무 소용 없고, 당신만이 빛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잘랄 앗딘 루미는 다른 시에서 그가 사랑하는 이의 집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린다. ‘누구세요?’라고 묻는 문 뒤의 연인에게 ‘나에요’라고 대답했다. 연인은 ‘이 집은 당신과 나, 두 명의 사람이 있기에는 너무 좁아요’라며, 그를 집안에 들이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에게 거부당하고 시름에 잠긴 그가 한참을 고뇌하다가 다시 찾아가서 연인의 집 문을 두드렸다. 똑같이 누구냐고 묻는 연인에게 그가 답했다. “당신이에요.” 이에 연인은 문을 열어 그를 받아들였다.

신의 실재(實在) 앞에서 교리나 세세한 제의 규정에 맞춰 준비한 성물(聖物)이나 제물들은 의미가 사위어진다. 그리고 충심으로 신과 함께하는 합일을 막을 문과 같은 장애물은 없다. 이런 깨달음과 합일의 경지는 특정 종교라는 이름의 편협한 공간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잘랄 앗딘 루미는 이렇게도 노래했다.

오라, 오라, 그대가 누구이건 오라

이교도 불신자 우상숭배자라도 오라

이 사원은 고통의 사원이 아니니

백 번이라도 돌아오라

그대가 맹세를 저버렸을지라도

수피즘은 16억 정도의 이슬람 인구에서 1억 안팎으로 추산되는 소수파이다. 양분화와 그를 부추기며, 상호 혐오를 통해 간극을 키우는 현상이 강화되는 이 세상에서 종교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그 최전선에 종교 갈등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도시에서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대립을 보라. 증오와 폭력과 테러를 먼저 결부시키려는 이들이 목청을 높이는 현실에서 ‘누구이건 오라’는 이슬람의 한 지파인 수피즘 시인의 소리가 작은 반전이라도 가져왔으면 하는 바람에서 썼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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