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기억에 남는 예측을 하는 법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기억에 남는 예측을 하는 법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8.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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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tacking Third: Soccer Highlights and Commentary 유튜브 캡처
Attacking Third: Soccer Highlights and Commentary 유튜브 캡처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이번 여자 월드컵 축구의 내가 뽑은 최대 이변은 스페인의 우승보다 일본이 8강전에서 탈락한 것이었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이번 대회 우승팀인 스페인을 4-0으로, 이어 전통의 강호인 북구의 노르웨이를 16강전에서 3-1로 꺾었다. 마치 1974년 남자 독일 월드컵의 네덜란드나 1954년 스위스 월드컵의 무적군단 헝가리를 연상시킨다고 했다. 우승을 당연시했다가 준우승에 그쳤던 두 팀과 연계시킨 게 이상한 징조였을까. 그렇게 예측은, 특히 스포츠 경기에서는 터무니없이 빗나가기도 하고, 소 뒷걸음치듯 맞기도 한다. 수도 없이 나오는 예측에서 묘한 반전으로 기억에 남았던 것들이 있다.

차범근 선수가 독일 분데스리가로 진출하여 큰 활약을 보여서인지 1980년 전후하여 한국의 한 공중파TV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분데스리가 축구 경기를 녹화해서 보여주었다. 그래서 독일을 대표한 축구 선수 중 한국인들에게도 인기를 끄는 스타들이 나왔는데, 그중에서도 최고로 뽑으라면 단연 카를-하인츠 루메니게였다. 1980년, 1981년 2년 연속으로 최고 축구 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 상을 받기도 했고, 독일 대표팀의 주전으로 월드컵 2회 준우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유명 선수 출신들이 흔히 그러하듯, 그는 은퇴 후에 해설자로 활약했는데, 1991년 4월 독일 제2공영방송에서의 중계 때 한 예언이 선수 시절의 위업들만큼이나 역사에 남아,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하고 있다. 카이저슬라우테른이란 축구 팀이 우승할 수도 있겠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그럴 일은 절대 없습니다. 카이저슬라우테른이 우승할 확률은 미하엘 슈티히가 윔블던 대회에서 우승할 가능성만큼 희박합니다.”

미하엘 슈티히는 테니스 선수로 1988년부터 프로 무대에서 뛰기 시작했다. 루메니게가 축구 얘기를 하면서 느닷없이 그의 이름을 언급하던 1991년 봄까지 흔히 4대 오픈이라고 하는 호주, 프랑스, 윔블던, 전미 오픈에서 3라운드를 넘어선 적이 없었다. 오기가 발동했을까? 그는 루메니게의 발언 직후에 열린 프랑스 오픈에서 4강에 올랐고, 마침내 그해 윔블던 대회에서는 같은 독일 출신인 보리스 베커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당연하다시피 카이저슬라우테른도 그해 분데스리가 맨 꼭대기에 올랐다.

해당 분야에서 알려진 인사들이 한 틀린 예측들은 차고 넘치게 많다. 1974년에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영국에서 여성 총리가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한 인물은 바로 5년 후인 1979년에 수상이 되는 마거릿 대처이다. 서독의 정치인으로 “독일에 통일은 있을 수 없다”고 1989년에 소리쳤던 슈뢰더는 몇 개월 후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것을 봤고, 1998년에는 통일 독일의 수상 자리에 오른다. “인터넷의 능력은 과장되었으며, 인터넷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절대 없을 것이다”라고 한 이는 1995년의 빌 게이츠였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빌 게이츠가 저 말을 할 때의 위세를 감안하면, 인터넷에서 돈을 벌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저 단정은 심했다.

워낙 예측을 많이 하니,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대처, 슈뢰더, 게이츠 정도의 인사가 되지 않고는, 예측 자체로만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부족하다. 그래서 불쑥 루메니게가 다른 스포츠 종목인 테니스 선수 슈티히를 소환한 것처럼, 일종의 반전을 꾀한다.

게일로드 페리라고 1962년부터 1983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며 314승을 거둔 투수가 있다. 아메리칸리그와 내셔널리그에서 모두 사이영상을 수상한 최초의 선수였다. 당연히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나, 두 차례 낙방하고 세 번째 만에 겨우 들어갔다. 그의 통산 승수나 양 리그에서의 수상 업적 등을 생각하면 의외의 결과다. 침이나 이물질을 발라서 투구한다는, 그의 선수 생활 내내 따라다녔던 의혹이 발목을 잡았다. 그런 부정 투구 의혹 말고도 그는 타격이 약한 걸로 유명했다. 지명타자 제도가 생기기 전 타격을 해야 했던 많은 투수가 그랬지만, 게일로드 페리의 타격 솜씨는 그중에서도 영 젬병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서 그가 선수 생활을 시작하고 1년간 그의 타격을 지켜보았던 앨빈 다크(Alvin Dark) 감독이, 게일로드 페리의 선수 생활 2년째인 1963년에 이런 말을 했다.

"They'll put a man on the moon before he hits a home run(아마도 게일로드 페리가 홈런을 치기 전에 사람이 달에 갈걸)."

불가능한 일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람이 달나라로 간다는 표현은 아주 오래되었다. 그런데 앨빈 다크의 예언은 몇 해 지나지 않아서 현실이 된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가 역사적으로 달에 착륙한다. 닐 암스트롱(Neil Armstrong)이 달에 첫발을 내디딘 한 시간 후, 게일로드 페리는 그의 메이저리그 첫 번째 홈런을 쳤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게일로드 페리 (출처 MLB.com)
게일로드 페리 (출처 MLB.com)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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