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은유가 되기에는 너무 눈 부신 태양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은유가 되기에는 너무 눈 부신 태양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9.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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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Nic Y-C / Unsplash
사진: Nic Y-C / Unsplash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중학교 때의 국어 선생님께서 교과서에 나오지 않았지만, 당신께서 가장 좋아하는 시라며 한 편을 칠판에 쓰고, 낭송해 주셨다. 함형수(1914~1946) 시인의 <해바라기의 비명(碑銘)>이었다.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시 전문)

시에서 태양은 화려함의 절정을 이루는 비유의 대상이다. 시인은 태양의 상태에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해바라기로 자신의 열망을 표현한다.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노고지리가 죽어서도 진행형인, 그러나 결코 태양에는 도달하지 못할 그의 꿈을 말한다. 그렇게 태양은 감히 은유할 수 없는 직유로만 접할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존재였다. 사랑의 직접 대상으로 언급하는 것까지 너무나도 눈부신 존재이다.

窓을 사랑하는 것은

태양을 사랑한다는 말보다

눈부시지 않아 좋다. (김현승 시인의 <窓(창)> 1연>

김현승 시인은 태양을 보지 않더라도 창을 맑게 깨끗이 닦으며 지켜, 우리가 눈들을 착하게 뜨고, 맑은 눈으로 빛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가히 범접할 수도 없고, 입에 올릴 수도 없게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창으로 대리만족을 하는 수준을 넘어서, 태양의 존재 자체가 잊히고 무시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정도이다.

팝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솔로 가수로 ‘King’이라고 불렸던 엘비스 프레슬리는 초창기에 햇살 따위는 없어도 된다며 ‘I don’t care if the sun don’t shine(태양이 햇살을 비추지 않아도 좋아)’이라는 노래를 내놓았다. 해가 지고, 비바람이 몰아치며 태양을 볼 수 없고, 햇살이 사라져도 ‘I’m with my baby’ 곧, ‘그대와 함께 있어’ 아무 문제가 없이 그저 행복하다고 한다. 그런 비유가 태양의 절대성을 말하는 것 같다.

1940년에 공식 발매되어 전 세계적으로 널리 불리는 ‘You’re my sunshine(당신은 나의 햇살)’이란 노래가 있다. 중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함형수의 해바라기를 읊어 주시던 시절에 음악 시간에는 이 노래를 배우고 불렀다. 태양이 빛을 비추지 않아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던 엘비스 프레슬리도 나이가 들어서는 이 노래를 무대에서 즐겨 불렀다. 가사를 보면 제발 자신을 떠나지 말아 달라는 애원조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온통 찌푸린 잿빛 하늘 아래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당신이 있으면 빛이 되고 행복하다고 한다. 절대 사랑이라고 하더라도 빛과 같은 존재이지, 빛의 원천인 태양에 이르게 비유하지는 않는다.

“먹구름 위 언제나 빛나는 태양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먹구름을 걷어내고 혼란 속에서 나라를 지켜내신 구국의 지도자”.

이런 표현이 나와서 화제가 되었다. 이런 화려한 언사를 구현한 이가 ‘지도자’를 직접 태양이라고 정의하여 은유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김현승 시인의 말을 살짝 빌리면, 너무나 눈이 부시다. 지나친 표현은 반전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Yes, he is a son of a bitch, but he is our son of a bitch(그래, 그놈은 개자식이지. 그래도 우리 편 개자식이야)."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가 한국의 리승만 대통령을 두고 한 말이다. 여기서 쓰인 미국 영어의 대표적 욕설인 ‘son of a bitch’를 이전에 ‘sun of a beach’, 곧 ‘해변의 태양’이라고 알아들어, 그런 표현이 무슨 문제냐고 물어보던 친구가 있었다. 얼마 전의 태양 운운한 말을 보고, ‘해변의 태양’도 찬사나 아부의 표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휙 들었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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