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언더독(Underdog)의 도발 원칙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언더독(Underdog)의 도발 원칙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10.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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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추석날 아침에 아버지를 뵈러 평소보다 한산한 서울 시내를 승용차로 가는 중이었다. 신호등에 걸려 선 바로 옆 차선에 정지해 있던 버스의 옆면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원피스>의 실사 판과 한국 드라마 <너의 시간 속으로>를 신작의 대표로 내세우며 ‘넷플 뭐봄’이란 카피와 넷플릭스의 빨간 색 ‘N’ 자 로고를 좌우로 배치했다.

OTT에서 크게 제작비를 댔거나, 화제성이 있고 흥행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을 여러 매체를 동원하여 알리는 건 이미 익숙해진 풍경이다. 1990년대 말에 미국에서 영화사들이 촬영을 시작한다며 제작발표회와 같은 행사를 열고, 그때부터 광고를 개시하며, 개봉하기 전까지 몇 차례에 걸쳐 특기할 만한 상황을 부러 만들어 마케팅적으로 활용하는 걸 봤다. 그러한 치밀하고 대대적인 사전 마케팅이 21세기의 OTT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한 수로 더 떠서 웬만한 프로그램에는 최근 마케팅 활동의 필수처럼 자리 잡은 팝업스토어까지 단골로 등장하고 있다.

치열한 OTT들 사이의 경쟁을 생각하면 TV에서 그들의 광고를 보는 것도 어색하지 않았다. 버스에서 본 카피 앞에 ‘요즘’이란 낱말만 붙어서 광고 첫 화면이 떴다. 이내 ‘넷플’과 ‘뭐봄’의 사이가 벌어지면서 ‘말고’란 넷플을 배제하는 단어가 들어온다. 그리고 ‘웨이브’ 로고가 영어로 뜨고는, 다양한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 장면과 소개 사진들이 화면을 메운다. 넷플로는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들을 제대로 볼 수 없다며, 그런 예능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는 OTT는 웨이브라고 말한다. 똑같은 화면으로 시작한 다른 편에서는 웨이브 오리지널 드라마들을 필두로 한드, 곧 한국 드라마들을 쭉 소개하면서, 역시 넷플에 부족한 한드는 웨이브로 즐기라고 한다.

일종의 비교광고라고 할 수 있는 웨이브의 이 시리즈는 압도적인 1위가 있는 시장의 언더독(underdog)이 일반적으로 취해야 하는 세 가지 행동 원칙을 잘 지키고 있다. 첫째, 최강자를 공격한다. OTT라는 세계를 만들다시피 한 넷플릭스를 상대로 골랐다. “맞아도 금가락지 낀 놈한테 맞아라.” 한 친구의 어머니가 하셨다는 이 말씀대로, 싸워도 고만고만한, 이길 수 있는 상대만 골라서는 관심을 끌 수도 없고, 본인의 실력도 늘지 않는다.

둘째, 싸움터를 좁힌다. 거대한 상대와 전면전으로 정면 대결을 벌여서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아무리 막강한 위용을 자랑하는 이들도 아킬레스의 건처럼 치명적인 취약점이 있을 수도 있고, 어느 부분에서는 내가 강한 지점도 있다. 그런 지점을 만들 수 있고, 가벼운 만큼 움직임이 빠르니 그곳에서 국지전을 벌일 수 있다. 웨이브는 한국의 프로그램들, 그중 대표격인 예능과 드라마를 자신들의 강점으로 삼아서, 그곳에서의 상대적 강점을 가지고 넷플릭스의 거대함을 공격하는 반전을 시도했다.

마지막으로 상대의 무기를 쓴다. 넷플릭스가 광고에 쓴 카피를 가져다 살짝 꼬아서 반전을 가져온 광고로 웨이브가 노리는 바를 추정할 수 있다. 먼저 광고를 한 넷플릭스에 묻어가면서도 깜짝 반전으로 주목하게 하는 효과를 기획했다. <삼국지연의>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적벽대전에는 숱한 일화들이 나오는데, 제갈량은 미적지근한 태도를 보이는 오나라의 총사령관이랄 수 있는 제독 주유의 화를 돋우는 데 조조가 쓴 시를 살짝 바꾸어 이용한다. 이어 짙은 안갯속에 조조 군의 화살 10만 개를 가지고 와서 주유와의 기 싸움에서 우위에 서고, 당시 공동의 적이었던 강적 조조의 전력 손실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이고 수전(水戰)에 대한 조조 군의 두려움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낸다.

그럼 이런 웨이브의 도발에 맞서 넷플릭스는 무엇을 해야 할까? 웨이브의 광고를 두고 이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같은 답을 내놓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노자(老子)의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이루는 ‘무위지위(無爲之爲)’가 효과를 발휘한다. 금가락지 낀 손으로 아무것도 없는 놈을 패봤자, 귀한 금에 흠집만 생기며 끝나 버릴 수 있다.

물론 이도 절대적인 답은 아니다. 싹을 틔울 때 없애지 않으면 나중에 곤경에 처한다고, 속담에 나오는 토끼를 잡는 사자의 최선을 융단폭격으로 시현하는 이들도 있다. 1960년대 에이비스 렌터카의 유명한 ‘우리는 2등입니다’ 캠페인에 대응하는 압도적 1위인 허츠가 그랬다. 넷플릭스가 과연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주의 깊게 볼 일이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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