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콘텐츠가 왕이라면, 컨텍스트는 무엇인가?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콘텐츠가 왕이라면, 컨텍스트는 무엇인가?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11.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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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시 폴 BBDO인도 회장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혼잡한 뭄바이 시내의 차 뒷자리에서 광고회사를 차려야지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터키 남성들이 주로 쓰는 페즈보다는 좀 납작한 편이고, 인도네시아 남성들의 쏭콕과 비슷한 형태의 모자를 쓴 인도BBDO의 조시 폴(Josy Paul)을 소개하는 글에는 모두 자동차 뒷자리 얘기가 나와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스탠드 없이 나지막한 잔디밭 언덕에 비스듬히 누워서 맥주를 홀짝이며 일본 프로야구 야쿠르트 스왈로스의 경기를 보다가, 어느 선수가 2루타를 치는 순간에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했다는데, 바로 그 장면을 연상케 했다. 농담 비슷하게 그때 어느 회사의 차를 타고 있었느냐고 물었다. 일본의 혼다(Honda) 승용차라고 했다. 도요타보다는 좀 낫지만, 혼다 브랜드도 흥분을 자아내거나 궁금증이 일게 하지는 않는다.

그 결심을 하기 전에는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을 했다. <슬럼독 밀리어네어>처럼 드라마틱하지는 않아도, 세상 모든 기괴한 일이 벌어지고, 기묘한 사람들이 골목을 돌 때마다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은 뭄바이라는 도시에 어울리는 극적 반전이 있는 인생 이야기를 기대했다. 자신이 일했던 귀에 익은 몇몇 글로벌 광고 회사의 이름이 나왔다. 한국은 물론이고 어느 나라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광고회사를 옮겨 다닌 광고장이였다. 창업 스토리 자체는 너무나 평범하여 실망했지만, 그걸 ‘자동차 뒷자리’라는 구체적인 맥거핀과 같은 공간을 통해 궁금증을 자아내는 이야깃거리로 만들어 내는 능력은 보통이 아닌 것 같았다.

큰 조직의 일원으로 월급을 받고 살다가, 자신이 모든 걸 책임지는 회사를 차리는 건 다른 이의 시각에서야 흔하다고 하겠지만, 개인에게는 아주 큰 전환점이다. 하루에 광고 아이디어 하나, 한 주에 캠페인 아이디어를 하나씩 내는 걸 목표로 삼고, 실천했다며 농담 겸 진담을 덧붙였다. “우리가 광고주에게 받는 돈은 아이디어를 거절당하는 대가(paid for reject)이죠.” 이의 연장선상에서 그가 동료들에게 잘하는 말이 있다. “허락을 구하지 말고, 잘 표현하는 방법을 찾아라(Seek expression, not approval).” 광고주의 입맛에 맞춰 승인받는 데 목표를 두지 말고, 정말 인상적이고 행동을 바꿀 만한 표현을 만들라는 얘기를 간명하게 나타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이런 아포리즘에 빠져들었다. 그가 안정된 글로벌 광고회사에서의 생활을 접고 자신의 회사를 차리게 된 계기는 이렇게 정리했다.

Create acts, not ads(광고가 아닌 행동을 만들어 내라).

실제 그는 인도 사회의 오랜 관습을 깨뜨리는 행동들을 이끌어내는 캠페인들을 잇달아 선보였다. 독립 이후 최초의 성공작인 질레트는 남성들만의 독단적 행동을 꼬집으면서 여성들의 힘을 과시했다. 아리엘 세제는 여성의 일로만 인식되었던 빨래를 홀수날과 짝수날로 나누어 남성들도 함께해야 한다는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2015년의 칸 광고제를 결산하는 기사에서 이런 대목을 읽었다. ‘인도의 성적은 추락했는데, 인도BBDO만이 빛났다’.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느냐는 질문에 쑥스러워하면서, 사람들 생활 속으로 들어가서 그 맥락(context)을 파악한 덕분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또 하나의 아포리즘을 소개했다.

Content is King. Context is King Kong(콘텐츠가 왕이라면, 컨텍스트는 킹콩이다).

실제 의미로 국가의 수장인 ‘킹(왕)’과 거대한 괴물 유인원인 ‘킹콩’과의 비교는 성립하기 힘들다. 의미를 꼬장꼬장 따지면 비문에 가깝다고도 하겠다. 그러나 듣는 순간 그림이 그려지고, 어떤 뜻인지 즉각 느껴진다. 이 비유를 들은 친구들 모두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컨텍스트를 파악하는 것이 머리를 짜내어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다. 그래서 인도BBDO에서는 아이디어를 내기 위한 방식으로 흔히 쓰는 ‘브레인스톰(brain storm)’보다 ‘소울스톰(soul storm)’이란 용어를 쓴다고 한다. 문자 그대로 영혼을 모아서 행동을 이끌어내는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것이다. 표현만으로 칼날 같은 반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혼을 넣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Think like the navy, deliver like the pirates(해군처럼 생각하고, 해적처럼 수행하라).” 

조시 폴의 좌우명 비슷한 것이라고 한다. 해군과 해적을 대비하는 스티브 잡스의 비유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Why join the Navy when you can be a Pirate(해적이 될 수 있는데, 왜 해군에 입대해)?'

조시의 표현이 잡스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 같다. 문제의 연구와 접근은 해군처럼 치밀하고 과학적으로 하지만, 그걸로 문제를 해결하며 고객에게 전달할 때는 해적처럼 기발하고 기민해야 한다. 그래야 컨텍스트로 들어가서 단순 광고가 아닌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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