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너 T야?” - 광고에서 MBTI 쓰기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너 T야?” - 광고에서 MBTI 쓰기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12.1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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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학교 모의고사를 망쳤다며 우는소리를 하고 들어와 소파에 엎어지는 딸에게 아빠가 차분하게 차갑고 단호한 소리로 말한다.

“공부를 더 했어야지?”

고개를 들어 원망이 잔뜩 담긴 도끼눈을 하고 딸이 아빠에게 쏘아붙인다.

“아빠, T야?”

올해의 유행어 중 하나인 “너 T야?”라는 말로 만든, 겨울이 오면 찾아온다는 미떼의 광고였다. 광고에서 유행어라는 걸 쓰면 보통 그러하듯,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고 어리둥절해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좀 유행한다 치면 바로 가져다 쓴다고 실소하거나 심하면 짜증이 난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리는 이들도 있다. 대부분 아는 사실이겠지만, 우려에서 설명충이라는 비난을 무릅쓰고 풀어서 얘기하자면 “너 T야?”는 MBTI의 ‘T(Thinking)’에서 나온 말이고, 공감하지 못하고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이들을 타박하듯이 주로 쓴다.

MBTI는 이미 유행이라고 하는 단계를 벗어나, 하나의 고정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3년 전에 젊은 친구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 회사인 대학내일과 긴밀하게 일을 하던 시절에는 하루에 한 번이라도 MBTI가 언급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때 며칠 상관으로 MBTI가 대화에 오르거나, 화제로 오른 일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 적도 있었다.

- 팀장급 리더 워크숍이 열렸다. 참가자들은 사전에 MBTI 테스트를 했고, 결과로 나온 유형에 따라서 조를 구성했다. ‘내가 저런 친구와 같은 유형이라니’ 하면서 절망하는 이도 소수 있었지만, 대체로 조원들끼리는 반가움을 표시하며 암묵적으로 유대 관계를 더욱 강하게 맺는 계기가 됐다.

- 사내 웹진에 실린 한 직원 소개를 위한 일문일답 기사 중 일부이다. “별명이 유재석이라고 하던데요?” “3인 이상 모인 자리에서 대화가 끊기면 못 견디고, 제가 MC를 봐서요…MBTI가 ISFP로 유재석과 같기는 해요(TMI·너무 과한 정보).”

​- 채용 관련 업무를 진행하는 친구가 푸념 비슷하게 늘어놓았다. “자소서가 엄청나게 들어와서 그걸 보고 있어요. 그런데 거의 반수가 자기소개를 할 때 MBTI 유형을 얘기하면서 시작해요. MBTI 어쩌고를 하도 많이 봐서 마구 헷갈리고 이제 좀 지겨워지더라고요.”

​MBTI를 전면에 가지고 나온 기업의 마케팅 활동들이 차고 넘치도록 많기도 했다. 대학내일 친구들이 위에서 본 것처럼 MBTI로 떠들던 그 시기에 ‘MBTI로 보는 16가지 불닭볶음면 먹는 유형’의 동영상을 해당 기업에서 유튜브에 올렸다. 곧 그를 본 유튜버들이 거꾸로 불닭볶음면을 먹는 방식으로 성격을 가리고, 그에 맞춘 불닭볶음면을 찾아준다는 콘텐츠로 뒤를 이었다. 한 통신사에서는 ‘스마트폰 바꿀 때 MBTI별 특징’을 짤로 구성했다. 파생된 콘텐츠들은 결국 MBTI 자체를 더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떼 광고에서는 MBTI라는 용어를 바로 언급하지는 않고, “너 T야?”라는 올해의 유행어를 살짝 틀어서 썼다. 그리고 아재 개그의 반전이 나온다. 아빠의 공감 부족 ‘T’스런 반응에 속이 상해 쾅 자기 방문을 닫으며 틀어박힌 딸에게 아빠가 살짝 방문을 열고, 자신은 ‘T’가 맞는다고 하며, 힘주어 스타카토로 말한다.

“너만의 스-위-티”

광고를 만든 이들이 의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위티’는 사탕과 같은 달콤한 것을 뜻하는 ‘sweety(혹은 sweetie)’가 될 수도 있고, 달달한 차라는 ‘sweet tea’로도 들린다. 앞의 ‘sweety(혹은 sweetie)’에는 사랑하는 사람, 곧 연인이란 뜻도 있으니, ‘딸을 사랑하는 아빠’가 될 수도 있다. 딸이 그런 여러 뜻을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빠가 타 온 ‘부드러운 거품 속 진한 초콜릿’을 아빠와 함께 찬바람 맞으며 마시면서 딸의 마음은 풀린다. ‘MBTI’를 해봤느냐는 딸의 물음에 당연히 해봤다며, 어쨌든 시험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며 ‘다 맞았지’라고 하는 아빠의 농담 설정 답은 약간의 사족 같기도 하다. 그래서 15초 짧은 판에서는 빠졌다.

MBTI를 전면으로 내세우는 광고나 마케팅 활동은 식상할 지경이다. 유행어를 그대로 가져다 옮기는 광고도 그러하다. 살짝 비트는 반전이 있어야, ‘스윗sweet’함이 살아난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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