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시대를 규정하는 밴드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시대를 규정하는 밴드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12.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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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비틀스의 팬에게 1960년대는 그들의 첫 싱글 <러브미두/피.에스.아이러브유(Love me do/P.S.I love you)>가 나온 1962년 9월에 시작하여, 1969년 1월 30일 애플스튜디오 건물 옥상에서의 소위 ‘루프탑(Rooftop) 공연’으로 끝난다. 1961년 1월부터 시작하여 1970년 12월까지 치는 보통의 계산에서 거의 4년을 잘라먹은 것 아니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에게는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 얘기한 짧은 20세기를 들어 반박한다. 홉스봄은 20세기를 <극단의 시대(The Age of Extremes)>라 규정하며 시작을 1914년 제1차세계대전, 마지막을 1991년 소련의 해체로 인한 냉전의 종식으로 잡았다. 홉스봄이 20세기의 끝이라고 했던 그해 어느 밴드의 노래가 선보였던 1991년 7월을 진정한 90년대의 시작으로 보는 이가 있다.

장면 하나하나가 같은 메시지를 반영하고 있다. 바로 쾌락주의, 행복감, 화려함이 넘치던 80년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이 5분짜리 노래가 직전의 10년을 통째로 갈아엎었다. <90년대> (척 클로스터만 지음, 임경은 옮김, 온워드 펴냄, 2023) 74~75쪽

90년대를 상징한다고 저자가 과감하게 정의하고, 실제로 나 자신을 포함하여 감히 반발하기 힘들게 시대 속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한 어느 밴드의 노래와 그 뮤직비디오를 두고 한 말이다. 80년대를 마감시키고 90년대를 대표한다고 저자가 얘기한 이 노래는 무엇일까? 이 노래를 부른 밴드가 더 맞추기 쉬울 수 있다.

노래 중간에 “Oh well, whatever, never mind(뭐, 어쨌든, 신경 꺼)”라는 가사가 나온다. 커트 코베인이 척 클로스터만의 표현을 빌리면 ‘건조하게 읊조린다’. 그리고 노래 마지막에서는 ‘A denial(부정)’이라는 단어를 아홉 번 연속하여 절규한다.

커트 코베인의 절규를 들으며 엉뚱하게 코미디언으로 유명한 마르크스 형제 중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콧수염의 그루초 마르크스의 말이 생각났다.

“Whatever it is, I’m against it(무엇이건 간에 아무튼 나는 반대야).”

미국 주재 생활을 시작하며 생일 파티를 한 친구의 초대장에 싸움하고 주위 사람들이 말리는 마르크스의 사진과 함께 씌어 있던 글귀였다. 당시 막 40대에 접어들던 친구였다. “이렇게 ‘중년의 위기(middle age crisis)’라고 외치는 것인가?”라고 농담을 하면서 그의 생일 파티에 우리 가족 모두가 참석했다.

초대장의 마르크스의 글귀를 들어 그 미국 친구와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을 베이비 부머와 X세대의 차이라고 일반화하여 비교를 시도했다. 행동으로 옮기며 반대했던 베이비 부머에 비하여, 엑스세대는 그냥 부정만 했다고 폄하했다. 중년 위기의 친구를 달래려는 의도도 있었다.

한 해를 보내며 부정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반대가 낫다. <서울의 봄> 영화로 새삼 주목받고 있는 전두환이 1981년인가 제5공화국 헌법에 대한 찬반 국민투표를 앞두고 ‘기권은 반대보다 나쁘다’라는 말도 했다. 1992년 MTV에서는 ‘Choose or Lose(기권은 곧 패배)’라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당시 40대의 빌 클린턴이 60대의 아버지 조지 부시에게 승리를 거둔 요인으로 젊은 층의 상대적으로 높았던 투표율이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우리는 어렸을 때 펑크 밴드들을 동경했고, 펑크 밴드가 팝 차트에 오르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어느새 우리가 그런 밴드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

실제 <Never mind>앨범은 1,0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팝차트에 오른 펑크밴드라는 자신이 모순이라고 규정한 현상의 주인공이 된 커트 코베인은 그런 상업적 성공을 어찌 받아들였을까.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 혼란에 저항은 의미가 없었다. 그저 신경을 끄고 부정만 했다. 부정의 90년대는 2001년 9월 11일의 사건으로 끝이 났다고 <90년대>의 작가인 척 클로스터만은 썼다. <타임(Time)> 잡지에서 ‘지옥에서 보낸 십 년(Decade from Hell)’이라고 정의한 2000년대의 첫 10년의 시작이었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2010년대를 사는 것 같은 2023년의 연말이다. 그래서 저 먼 1960년대의 비틀스부터 1990년대의 너바나까지 소환해봤다. 중간에 1980년대 전후의 한국까지 나왔다. 이 글을 쓰면서 그때를 살아보지도 않은 19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친구들과 연이어 만났다. 모두 시대를 상징한다고 했던 밴드들을, 한국에서 벌어졌던 희극이 섞여 있던 참혹한 비극들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역사는 이어진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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