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일상의 상징으로서 광고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일상의 상징으로서 광고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4.01.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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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부부가 둘이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먼저 간호사인 듯한 복장을 한 부인이 말한다.

“당신은 지금 정상이 아니야. 내가 도와줄게.”

의아하면서 의심 가득한 표정의 남편이 심각하게 말한다.

“왜 그렇게 우리 애를 갖자고 하는 거지? 나를 힘들어하면서.”

“그렇지 않아”라면서 부정하던 부인이 갑자기 뒤돌아서서 부엌 스탠드에 있던 통 하나를 집어 들었다. ‘모코코아’라는 상표의 코코아가 들어 있는 철제 통이다. 남편 쪽으로 다시 돌아서서 그 통을 정면으로 보이며, 광고 내레이션 투로 말한다.

“모코코아 한 잔 타 드려요? 니카라과 산에서 딴 천연 코코아 콩만 썼어요. 인공감미료는 전혀 쓰지 않았지요.”

급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놀란 남편이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주위를 둘러보면 반박하듯 묻는다.

“당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누구에게 얘기하는 거냐고?”

남편의 물음에 아랑곳없이 부인은 내레이션을 이어간다.

“제가 다른 코코아도 먹어봤어요. 그런데 이게 최고예요.”

영화 <트루먼 쇼>에서도 가장 소름 끼친다고 많은 이들이 입을 모으는 유명한 ‘모코코아’ 광고 장면이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의 이상함을 감지하기 시작했던 트루먼은 부인에게 어찌 된 영문인지 묻고, 겁에 질린 부인은 부엌용 야채 칼을 들고 방어 자세를 취하다가 바로 제압당한다. 목숨까지 위협받는 긴급한 상황이라 느껴서, 화면에는 잡히지 않는 방송 스태프를 향하여 “뭔가 해봐요”라고 구원을 요청한다. 트루먼에게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외침이었다. 이때 긴급 투입된 트루먼의 친구가 문을 두드리며 언제나처럼 맥주 여섯 캔 묶음을 먼저 보이면서 노크와 함께 집으로 들어선다. <트루먼 쇼> 영화 최고 명장면의 마무리 펀치라인 같은 느낌을 주는, 역시나 강하게 각인된 순간이다.

<트루먼 쇼>는 이미 전설이자 고전으로, 특히 미디어, 광고 부문에서는 필수적으로 봐야 하는 명작이다. 유감스럽게 최근 몇 년 간 나의 광고 수업을 듣는 대학생들 다수는 제목만 알고, 실제 영화를 본 친구는 손에 꼽는 지경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트루먼은 결정적으로 모코코아 광고 장면에서 일종의 각성을 일으켜, 자신을 가두고 있던 거대한 세트를 빠져나가는 길로 나서게 된다. 그런데 관점을 바꿔서 제작진 쪽에서 보면 모코코아 광고는 정해진 순서대로 진행되는, 어쩌면 일상의 평온함을 상징한다. 광고가 이런 기능을 하는 경우가 있다.

딜쿠샤
딜쿠샤

우리는 모두 라디오 앞으로 다가갔고, 이디와 나는 라디오에 귀를 바싹 갖다 댔다. 다른 사람들도 캐럴 올콧의 뉴스가 더 잘 들리게 각자 다양한 자세로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들리는 건 밴조와 비슷한 일본 악기 샤미센의 요란한 소리와 붕붕거리는 베이스 소리뿐이었다. 전파 방해 작전이 시작된 것이다. 어쩌다 간신히 단어 하나가 들리는가 싶으면 끽끽거리는 비음의 기습공격에 묻혀버렸고, 다시 소리가 잡히는가 싶다가 마침내 명료한 소리가 들려오면 겨우 “맥스웰 하우스 커피!” 같은 광고뿐이었다. - <호박목걸이>(메리 린디 테일러 지음, 송영달 옮김, 책과함께 펴냄, 2014) 24쪽 -

영국 출신의 배우로 일제강점기 한국에서 금광과 골동품 사업을 하던 미국인인 앨버트 테일러와 결혼하여 1917년부터 일본이 이차대전에 참전한 후인 1942년 미국으로 추방되었던 메리 린디 테일러의 자전적 기록인 <호박목걸이> 책 초반부에 나온 장면이다. 테일러 부부가 사직동 언덕 위에 지은 집인 ‘딜쿠샤’라는 이름의 집에 당시 서울에 살던 소수의 서구 출신 외국인들이 모여서 저녁 식사 후에 외부 소식을 갈구하며 라디오를 듣는 장면이다. 이 때가 한반도의 시간으로 1941년 12월 6일 저녁이었다. 그로부터 36시간 채 지나지 않아, 일본 연합함대가 진주만을 공습했다. “맥스웰 하우스 커피”라는 광고 속의 브랜드는 그들에게 아직 바깥 세계에 평온함을 유지하는 생활이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서울구락부(The Seoul Club)
서울구락부(The Seoul Club)

고교 시절의 선생님 한 분은 최전방 산골에서 군 생활을 했다. 항상 배가 고픈 상태인데, 정해진 때도 없이 툭하면 훈련한다고 산속을 헤매고 다녔다. 혹독한 추위가 밀어닥친 겨울날 더는 버틸 수 없었다. 대열에서 이탈하여 화전민이 살다가 떠난 듯한 빈집에 먹을 것을 찾아 들어갔다. 그 집에서 한참 철이 지난 <선데이 서울> 잡지 몇 쪽을 바닥에서 발견했다. 기사 내용은 문드러졌는데, 광고가 실린 면에서 상품과 기업 이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어쨌든 바깥세상은 돌아가고 있고, 그도 제대로 군 생활을 이겨내고 그 세상에 합류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부대로 다시 돌아가서 무사히 군대를 마치고 고교 교사까지 되었다고 한다.

특별하게 관심을 끌고, 메시지를 전하려고도 하지만, 존재 자체로 일상이 가지는 힘을 깨워줄 수 있는 게 광고이다. 너무 개별적으로 튀려고만 하면서 존재로서 광고의 가치와 힘을 우리는 잊거나 약화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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