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카이저를 카이저이게 한 반전의 한 마디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카이저를 카이저이게 한 반전의 한 마디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4.01.1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축구 월드컵이 유럽과 중남미 몇 개국의 잔치에서 진정으로 전 세계인이 즐기고 관심을 집중하는 스포츠 이벤트가 된 건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이라고 해도 과도한 단정은 아니다. 처음으로 컬러TV로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실시간 중계가 된 월드컵이었다. 1969년에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 중계되기는 했으나, 순간의 감동에 그칠 수밖에 없고, 미국이라는 후광이 너무 세서 냉전 시대 전 세계 반쪽에서는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마셜 맥루한의 말대로 함께 TV를 통하여 울고 웃는 ‘지구촌(Global village)’의 실현은 누가 뭐라 해도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이 MVP이다.

아무리 전 세계를 실시간으로 커버하며 중계하고, 이름 그대로 세계(world) 각 지역을 대표하는 팀들이 참가한다고 해도, 경기 내용이 좋지 않았다면 포장과 유통만 그럴싸한 제품으로 그쳤을 것이다. 그런데 1970년 멕시코 월드컵은 지금도 역사상 최고의 월드컵으로 전문가나 축구팬들이 이구동성으로 꼽을 정도로 명경기들과 전설적인 사건들이 많았다. 특히 최초로 월드컵 세 번째 제패의 역사를 쓴 브라질은 가장 예술적이고 아름답고 재미있는 브라질다운 축구의 최고봉을 보여주었다.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은 그 정수를 보여준 경기였다. 그렇지만 그해 월드컵 최고의 경기는 결승전이 아닌 서독과 이탈리아의 준결승전이었다.

전반 8분 만에 골을 넣은 이탈리아는 그 한 점을 지키면서 1-0으로 승리를 가져가는가 싶었는데 정규 시간 종료 직전인 90분에 서독에 골을 허용하며, 경기는 연장전에 접어들었다. 연장 4분이 지날 무렵에 서독이 골을 넣어 앞서 나갔다. 리드는 오래가지 못하고, 바로 4분 후에 이탈리아가 동점 골을 넣고, 추가 골까지 성공하며 다시 리드를 잡았으나, 연장 후반 5분이 지났을 때 서독에 다시 동점 골을 허용했다. 연장전에서만 네 골이 커지고, 승부차기로 넘어가야 하나 싶을 때, 이탈리아의 골이 다시 터졌다. 어느 기록을 보면 서독의 골이 리플레이로 나올 때, 이탈리아의 골이 터졌다고 한다. 연장전에서만 다섯 골을 주고받은 월드컵 경기는 그 후에도 없었다. 경기의 승부 외에 이 경기에서 내게 너무나 강력하게 각인된 선수가 있었다.

서독 팀의 주장이자 리베로로 뛰었던 프란츠 베켄바워였다. 연장 초반 이탈리아 진영을 헤집고 들어간 베케바워가 이탈리아 특유의 강력한 태클을 당했고, 넘어지면서 그의 어깨 부분 탈골이 생겼다. 임시 깁스를 하고 베켄바워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30분이라고 하는 다섯 골을 주고받은 명승부에 오른쪽 팔을 가슴에 붙이고 어깨에 깁스를 한 채 뛰었다. 1970년은 너무 어렸고, 집에 TV도 없었으니, 중계를 직접 보지도 못했고, 아마도 1974년의 독일 월드컵 때 보여준 하이라이트에서 독일과 이탈리아의 경기를 봤을 것이다. 그때 깁스를 한 채 경기를 치르는 베켄바워의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1974년 대회에서 서독의 주장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린 모습이나,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서 원조 축구 황제인 펠레와 함께 두 황제의 퍼포먼스를 펼치는 장면보다, 깁스를 한 채 경기를 지휘하며 30분을 버티어내는 순간순간이 훨씬 인상적으로 남아 있다. 1970년 멕시코에서의 독일과 이탈리아 대결이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남는 데는 베켄바워의 부상이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베켄바워는 말로도 잊지 못할 기억을 남겼다. 1974년 월드컵은 사실 독일의 우승보다 요한 크루이프가 이끈 네덜란드와 그들의 ‘토탈 사커’가 사람들에게 더 충격이었고, 우선 연상이 된다. 비록 결승전에서 서독에 패하며 준우승했지만, 대회 최우수선수(MVP)는 네덜란드의 크루이프가 뽑혔을 정도이다. 승부와 엇갈린 크루이프의 수상을 두고 그의 명언으로 길이 남는 이런 말을 했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게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한 것이다.”

‘강자(强者)->승자(勝者)’의 고정관념으로 박힌 순서를 반전시켜서, 상대를 비방하지 않으면서 자신과 팀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보여주었다. ‘황제’를 뜻하는 ‘카이저’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베켄바워의 진정한 대관식은 바로 이 말로 이루어졌다고 본다.

경기에서도 그랬지만 말로 써도 카이저의 모습을 보여준 베켄바워가 지난주 1월 7일 세상을 떴다. 2022년 12월 카타르 월드컵 기간에 축구 황제라는 펠레가 시기도 맞추어 작별을 고했는데, 독일의 황제가 1년이 조금 지난 후에 역시 하늘로 향했다. 그의 부고 기사를 본 날에 우연히 이전에 즐겼던 웹툰 한 편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이런 말이 나왔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멀리 볼 수 있는 게 아니야. 멀리 볼 수 있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거야.”

그라운드 전체를 시야에 넣고 멀리 보면서 플레이했던 프란츠 베켄바워. 수비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았던 문자 그대로 자유롭게 축구장을 누비는 ‘리베로’. 그로써 진정한 카이저가 되었던 프란츠 베켄바워의 명복을 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임시 깁스를 한 채 경기하는 베켄바워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임시 깁스를 한 채 경기하는 베켄바워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