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모델 때문에 바뀌어야 하는 광고 사례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모델 때문에 바뀌어야 하는 광고 사례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4.01.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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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기껏해야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소녀들이 열을 지어 학교 운동장에서 엎드려뻗쳐 자세로 벌을 받고 있다. 요즘도 이런 단어를 쓰는지 모르겠는데, 예전에 학교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던 ‘단체 기합’ 장면이다. 학생들의 등과 하늘을 향해 애처롭게 선 엉덩이 위로, 뒷짐을 선 선생님으로 보이는 남자 어른이 성난 목소리를 퍼붓는다.

“운동한다는 애들이 뭐 하고 있는 거야.”

땅에 금방이라도 박을 듯 이마에 땀이 방울방울 맺혀 금방이라도 줄기가 되어 쏟아질 듯한데, 몸이 힘든 것보다 폭언과 육체적 고통을 주면서 정신을 강조하는 행태가 괴롭게 만드는 것 같다. 학생들의 속마음이 작은 내레이션으로, 자막으로 나온다.

‘우리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거야?’

정신교육을 내세운 체벌을 받으며 학생들의 마음속에 의문이 든다. 그런 아이들 머릿속의 흔들림을 읽었는지 선생님이 더 크게 소리 지른다.

“너희들 똑바로 정신 안 차려! 정신을 어디 두고 왔어.”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중고 야구 선수의 얼굴에 대고 성을 내며 고함을 지르고, 정신 차리라며 머리를 빡빡 깎아버린다. 실내 체조 선수를 꿈꾸는 소녀나 수영 싱크로나이즈 연습에서도, 태권도를 배우는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유치원생들에게도 같은 행태가 벌어진다. 더는 참을 단계를 넘어 반항적인 눈짓과 표정이 오가는 가운데 절망적인 상황에서, 내레이션과 함께 반전이 일어난다.

“만약에, 모든 게 바뀐다면. 우리 마음대로, 우리 방식대로, 우리가 바꿔 본다면?”

이 반전은 쇼트트랙 선수들이 롤러블레이드를 타며 신 나게 연습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들과 손을 마주치며 격려하는 선수가 있다. 쇼트트랙 국가대표로 지금도 활약하는 심석희 선수이다. 고함에 주눅 들고 벌을 서던 학생들이 즐겁게 스포츠를 즐기고, 선수는 아니지만 운동장에서 엎드려뻗쳐 자세를 있던 학생 하나가 일어선다. 그리고 밝고 자신감 넘치는 표정의 젊은 유명 선수들과 연예인들의 모습이 나오고, “솔직히 뭐 좀 즐긴다고 큰일 나는 것도 아니잖아?”라는 멘트와 함께 마지막은 역시 심석희 선수가 장식한다.

2021년 초 코로나 19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나이키에서 ‘Play New’라는 이름으로 진행한 캠페인이다. 한국 체육계의 고질적 병폐라고 하는 지도자들의 위압적인 자세와 체벌이 공공연히 정신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모습을 고발하여 큰 박수를 받은 캠페인이다. 2024년 1학기 광고 과목 수업 준비를 위하여, 교재용으로 나온 서적 하나를 보는데, ‘광고의 사회적 기능’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이 광고가 나왔다.

이 광고에 쇼트트랙의 심석희 선수가 대표 모델로 나온 데에는 2019년에 세상에 알려진 사건이 분명 영향을 미쳤다고 추정한다. 고교생 시절부터 코치로부터 상습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알리며, 가해자인 국가대표 코치를 고발했다. 성폭행의 피해자인 여성에게 책임 일부를 씌우고, 사제지간이나 성적을 운운하며 면죄부를 가해자에게 내주는 빙상계나, 선정적으로 포장하는 언론계 일부의 분위기 속에서 꿋꿋이 폭로한 심석희 선수의 용기를 기리는 측면이 있었다. 그런데 이 광고가 나오고 몇 달 후에 심석희 선수가 동료 선수를 험담하고, 심지어 고의로 실제 경기에서 넘어뜨리기까지 하며 팀워크를 무너뜨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선수 자신의 문자 메시지가 증거처럼 나왔는데, 코치와의 부적절한 처신까지 문제가 되었다.

이후 어느 정도 소명이 되고, 2022년의 베이징 동계올림픽까지 우여곡절 끝에 출전했고, 이번 겨울 시즌에도 활약하고 있지만, 2021년 나이키의 ‘플레이 뉴’ 캠페인은 처음 나왔을 때의 찬사가 이어지지 못했다.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사례로 다음 판에서는, 3년 전의 광고라는 집행 시기를 떠나서도 싣기 힘들 것 같다. 인간 광고 모델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더 어울리지 않을까.

같은 책의 전략 부문에서는 대표 광고로 무신사의 ‘사랑해’ 캠페인이 나왔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캠페인의 모델은 마약 복용으로 문제가 된 배우 유아인이다. 이 역시 다음 판에서는 교체되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사고를 치지 않는다며 가상 AI 모델이 대안으로 힘을 받는데, 그들 역시 나름의 반전을 만들어낸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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