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엑스포 유치 실패와 거바선생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엑스포 유치 실패와 거바선생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12.0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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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Tim Gouw / Unsplash
사진: Tim Gouw / Unsplash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거봐. 내가 뭐랬어. 안 된다고 했잖아.”

예전에 다녔던 어느 광고회사에서 회의하며 누군가 새로운 광고나 마케팅 프로그램의 아이디어를 내면, 별말도 없이 가만히 있거나 ‘글쎄’라고 하는 유보하는 태도 정도를 보이다가, 상사나 광고주가 반대해서 성사되지 못하면 뒤늦게 이런 말을 습관처럼 던지던 친구가 있었다. 실행하다가 뭔가 일이 어그러졌을 때도 그 친구는 자신은 그런 사태를 모두 예견하고 있었다는 듯이 툭 같은 내용의 말을 던졌다. 워낙 그런 말을 많이 해서 다른 친구들이 아예 ‘거봐’라고 별명을 붙였다. 나이도 있고, 발음도 불편하니, 조금 점잖고 너무 직설적이지 않게 만들자며 몇몇 친구들은 ‘거바선생’이라고 불렀다.

이번 부산엑스포 유치 대결에서 사우디의 리야드에 압도적인 표 차이로 떨어지고 나자, 원인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찍어내는 보도와 말들이 만연하다. 그런 와중에 이제는 잊고 있었던 거바선생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부산이 결코 엑스포 장소로 선정될 수 없다는 걸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는 이들이 줄을 이어 나타나고 있다. 그러면서 언론에서는 가망성이 없는 데도 있는 것처럼 부산시민을 비롯하여 국민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전하고, 부푼 꿈에 젖어 들게 했다고, ‘희망고문’이란 낱말을 남발하듯 쓰고 있다.

원래 불리하다고 했으나, 유치 일선에 나선 이들을 필두로 ‘부산 지지세가 오르고 있다’, ‘1등이 과반수가 되지 못하여 1, 2등 간 결선이 벌어지면 유리하다’, ’49:51 형국이다’ 등의 말들이 나온 건 사실이다. 그런 말을 하지 않으면 ‘패배주의’에 젖었다는 말 따위가 나오고, 그 때문에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책망받을 수도 있다. 한편에서는 마지막까지 힘을 내자는 뜻에서 던진 말일 수도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고, 엄정한 현실을 막연한 바람으로 덮어버린 이들의 잘못이 없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다수 국민에게 퍼뜨린 가장 큰 역할을 맡은 건 지금 ‘희망고문’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이들, 그중에서도 언론이었다. 심하게 말하면 희망고문의 고문 기술자였고, 상황을 직시하려던 이들을 지탄하고 탄압하는 데 앞장선 행동대장과 같은 행태를 보였다.

왜 진작 우려나 반대의 목소리를 내지 않았냐고 하면, 예전의 거바선생은 자신이 얘기할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하곤 했다. 그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옳은 지적에 대해 ‘안 되기를 바라는 거냐’면서 다들 한뜻으로 나아가려는데 훼방하는 존재로, 심하면 배신자로 취급하는 경우를 자주 봤다. 경직된 조직 분위기에 참여자들의 수평적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윗사람의 발언권만이 보장되는 데서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 그래도 ‘거봐’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잦은 빈도로 크게 외치는 이는 실패의 책임 대열에서 이탈하고자 함과 동시에 자신의 현명함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너무 강하다. 그런 현명함이 사후에 꼭 표현되는 게 문제이다.

영국의 탐정물인 셜록 홈스 시리즈 중에 <토르 다리의 문제>라는 작품이 있다. 그 작품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건이 끝난 후에 현명해지기는 쉽다.”

탐정 소설 속에서도 범인이 밝혀진 후에 ‘그래, 나는 그가 범인인 줄 알았어’라는 식의 말을 하는 이들이 자주 등장한다. 소설의 독자 중에서도 자신은 처음부터 범인이 누구라고 알고 있었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사실 이런 식의 ‘거바선생’은 우리 주변의 잡다한 부문에서 꽤 자주 볼 수 있다. 우리 안에 이런 경향이 도사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현명함과 그를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일이 벌어진 후에 하면, 비웃음만 살 뿐이다. 자신의 현명함은 사후의 ‘거봐’보다 사전에 용기 있게 ‘이봐’라고 상대를 불러 반전의 분위기를 만들며 제기하자.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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