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유쾌하고 독특했던 결혼식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유쾌하고 독특했던 결혼식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10.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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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사회가 여자야, 여자.”

“여기 결혼식장에서 일하는 사람 아니야?”

뒤에 앉은 이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 결혼이 시작된다고 식장에 들어와 앉고, 전화기를 진동으로 해달라는 안내가 나온 직후였다. 그 말을 전하는 이의 인상과 목소리가 알 듯했다. 신랑이 자기네 독서회에 줌으로 참여해서 강연해달라고 했는데, 그때 함께 했던 친구 중 하나였다. 식을 시작할 시간이 되자 ‘신랑과 신부의 대학내일 인턴 동기’로 사회를 맡았다고 정식으로 자기소개를 했다. 요즘은 사회 없이 하는 결혼식도 꽤 봤는데, 사회가 여자인 경우는 처음이었다. 워낙 내가 결혼식장을 다니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여자와 남자의 일에 구분이 없어지는 경향을 반영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다.

얼굴 가득 웃음 띠며 평소대로 나긋하면서도 씩씩하게 들어온 신랑이 바로 마이크를 받아서 인사말을 했다. 신부의 직장 상사가 신랑과 신부가 주인공인 행사이니, 결혼식 날은 연예인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즐기라고 했다며, 그 말에 충실하겠단다. 여행도 좋아하고, 깜짝 이벤트도 자주 하여, ‘관종’ 소리까지 듣는 친구인지라, 결혼식에서 어떤 일을 벌일지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부담된다고 했다. 한바탕 놀겠노라 제대로 선언을 한 셈이었다.

신부는 아버지와 함께 전통 방식으로 입장했다. 입구에서 식장으로 첫발을 떼면서는 잠깐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다. 신부의 눈물을 이전에 본 적 있었다. 결혼 축하 저녁 식사를 우리 집 근처에서 함께 하고 ‘심야식당’처럼 동네 사람들이 모여 술 한 잔 홀짝이고 음악을 듣는 작은 술집으로 2차를 갔다. 그곳에 매일 들르다시피 하는 50대 남자 손님들이 곧 결혼한다는 젊은이들이 왔다며 흥분했다. 성악가풍으로 노래하는 이가 결혼 축하 노래를 해주겠다며, 평소보다 더욱 멋지게 화려한 제스처와 함께 뽑았다. 그 노래를 들으며 신부가 감동에 겨워 눈물을 흘렸었다. 식장에서의 축가는 영화 <토이 스토리>의 OST 중 하나를 대학내일 동료가 불러주었다. 신랑과 신부의 연애 시절에 찍은 동영상과 사진이 스크린에 나오고, 거기에 노래 가사까지 자막으로 얹었다.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뮤직비디오, 곧 뮤비를 보는 느낌이었다. 정말 신부와 신랑이 연예인 놀이를 했다.

요즘 결혼식에서는 정식 절차가 된 듯한 신부와 신랑의 서약 비슷한 것을 차례로 낭독했다. 이어 사회자가 주례가 없는 결혼식에서 신부나 신랑 아버지가 보통 하는 축사나 당부의 말이나 인사까지 생략하고 성혼 선언을 하겠다고 했다. 참석자들이 함께하는 방식으로 성혼 선언을 진행했다. 사회자가 선언문의 일부를 선창하고, 참석자들이 따라서 복창하는 형식이었다. 마지막 부분에서 그들이 계속 행복하도록 참석한 이의 의무로 돕겠다고 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참석자들을 적극 개입하게 만드는, 행사의 일원이 되게 하는 트렌드를 반영했다고 할 수 있다.

식의 마지막에 ‘행진’을 위한 곡으로 영화 ‘코코(Coco)’의 신명 나는 OST가 쓰였다. 신혼여행지가 멕시코인 관계로 그쪽 배경의 노래를 선정했다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신랑과 신부가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며 행진하고 인사하며 참석자들의 흥을 돋우며 지나갔다. 미국 남부의 흑인 교회에서 신도들이 성가대의 노래와 연주에 맞춰 고적대 행진하듯 교회 중앙 통로를 춤을 추며 빠져나가는 행렬이 연상되었다. 물론 이번 결혼식에서는 하객들이 그 정도까지 나가지는 못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아마 하객들과 함께 춤을 추는 그런 행진도 가능할 것 같다.

예외 없는 법칙이 없다고 하듯, 어느 행사건 바꾸지 못할 부분은 없다. 혁신이니 개선이니 하는 단어들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아주 조금이라도 다른 식으로 시도해 보자. 그런 데서 멋진 반전도 일어난다.

결혼식 주인공 박종남•이승연 부부 제공
결혼식 주인공 박종남•이승연 부부 제공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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