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순정만화에서 시사배틀로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순정만화에서 시사배틀로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10.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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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명랑 순정만화. 이런 분류가 만화에 있는지 모르겠으나, 포근한 유머가 곁들여진 순정만화풍의 일본 애니메이션, 곧 아니메의 전형적인 인물들이 나온다. 도도하면서도 장난기가 숨어 있는 남자와 귀여움이 묻어나는 단발보다 살짝 긴 옅은 금발의 소녀풍 여자, 그리고 여성을 쏙 빼닮은 너덧 살 정도로 귀염 덩어리인 어린이. 잔잔하며 따뜻한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고, 가족들은 맥도날드 감자튀김과 치킨너깃을 장난치면서 먹고 있다. 음표 사이를 까르르 웃음소리가 메꾸는 듯한 느낌이다. 더 이상 행복하기 힘든 젊은 부부와 어린 딸의 모습이다. 맥도날드와 함께하면 그렇게 행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예쁘게 전했다.

맥도날드 일본에서 오후 나른한 시간의 간식으로 너깃과 프렌치프라이를 제안하는 형태의 광고를 애니메이션 형태로 만들었다. 영상이 공개되자 색감, 분위기, 인물들이 ‘곱다’, ‘훈훈하다’, ‘예쁘다’ 등의 찬사가 쏟아졌다. 미국인들도 칭찬 일변도의 댓글을 달았는데, ‘왜 미국에서는 맥도날드 광고를 이렇게 만들지 못하느냐’는 식의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반전이 일어나고 분위기가 달라졌다. 불쑥불쑥 맥도날드와는 별 상관없는 이슈들이 댓글로 등장했다. 논리적 순서와는 거리가 멀지만, 나오는 반응들과 그들 사이 연쇄작용을 살펴보며 대략 구성해 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에는 일본 광고에 나오는 것 같은 행복한 가정이 거의 없다.

총기사고에 약물이 난무하는 미국 사회의 문제가 나온다. 전통을 중시하는 일본 사회와 비교한다. 그러다가 일본 사회의 획일성과 각종 제약이 주목받는다. 그 증거로 광고에 나온 부부와 자녀의 형태가 너무 전형적이라고 지적한다.

가정은 꼭 남성과 여성으로 이루어진 부부와 자녀가 있어야 하는 건가?

성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일본 사회의 후진성을 고발한다. 그런 광고를 내보내는 맥도날드의 윤리에 대한 공격까지 나온다. 급기야 이 광고에 성 정체성에 대한 시민의 각성과 배려에 반(反)한다며 ‘anti-woke’라는 딱지까지 붙인다. ‘woke’라는 용어가 등장하자 민감하게 이제는 조건반사같이 반발하는 이들이 나온다.

왜 미국 맥도날드의 광고는 전투적인가?

성전환 수술을 하여 여성이 된 흑인이 등장한 미국 맥도날드의 광고가 소환되었다. 공권력의 흑인 탄압과 무자비한 폭력에 대응하여 일어난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를 언급하며, 제발 총만 쏘지 말라고 한다. 말투나 표정이 보는 각도에 따라 위협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흑인과 성소수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나친 배려나 눈치 보기, 즉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ly correct)’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여성으로 성전환한 흑인은 전통 미국 사회 가치를 수호한다고 자부하는 미국의 극보수층들 공격 본능을 자극하는 요소들을 한 몸에 담고 있는 존재이다. 그런데 맥도날드 트위터 계정에 올린 흑인 여성의 그 영상의 날짜를 보니 2020년 6월이다. 3년 전의 정식으로 TV에 집행된 광고도 아니고 트윗으로 올린 영상을 가지고 와서 트집을 잡듯 한다. 마치 올해 상반기에 버드라이트와 성전환자의 관계를 두고 대공세를 펼쳐 의기양양했던 이들이, 성전환하여 여성이 된 이들이 등장한 2021년 잭 다니엘스 위스키의 포스터를 들고 나와, 표적을 찍어 공격을 가했었던 일을 연상시킨다.

이런 온라인에서 벌어진 소동의 결과일까. 맥도날드 일본의 이 아니메 영상은 유튜브에서 조회 수 1억을 훌쩍 넘겼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일본과 미국의 태평양을 사이에 둔 담당자들의 표정이 궁금해진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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