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선거와 전쟁의 모순과 역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선거와 전쟁의 모순과 역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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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rnaud Jaegers / Unsplash
사진: Arnaud Jaegers / Unsplash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인간은 선거로 망할 것이다’라고 냉소적으로 내뱉는 이들을 봤다. 후보자들의 표를 얻기 위한 사탕발림이나 선동에 유권자들이 넘어가, 제대로 일을 할 인물보다 거짓말을 일삼고 세상에 해악을 끼칠 후보자가 당선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런 당선자들이 권력을 가지고 휘두르다 보면, 인류를 멸망 지경으로까지 이끌고 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하긴 지난 역사에서 선거 결과가 전 지구적 비극으로 연결된 사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으로, 세계를 끝장낼 수도 있었던 제2차 세계대전 발발에 가장 큰 책임을 지운다면 나치(Nazi)의 아돌프 히틀러라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정당에 몸을 담은 이후 폭력적인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선거라는 과정을 통하여 수상 자리에 올라 정권을 잡았다. 이어서 그가 선동 조로 외쳤던 시나리오를 그대로 실현하며 총통이 되어 전 세계를 포화 속으로 끌고 갔다. 전 세계를 운운하기도 전에 나라부터 망친다고 ‘선거망국론’을 들먹이는 이들을 보면 대개 자기가 지지하는 이가 낙선할 때 그렇게 말한다. 본인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면 ‘민심이 천심’이나 ‘국민은 위대하다’와 같은 말을 한다.

다른 각도에서 선거는 인간이 만든 아주 위대한 제도인데, 기본적인 맹점이 있다며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자리에 맞는 최적의 인물을 뽑아야 하는데, 그런 훌륭한 인물은 선거에 후보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차선, 차차선은 고사하고 차악, 차차악의 인물들이 나오고, 더욱 극단적으로 흐르면 절대 그 자리에 뽑히지는 말아야 할 인물이 선출되어 세상을 망치는 길로 인도하기도 한다. 거기에 버니 샌더스라는 미국 민주당에서 대선후보 경선에 2016년부터 나서고 있는 인물이 소환된다.

버니 샌더스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로 엇갈린다. 실제 세상을 바꾸기보다는 이상주의자라고도 하고, 말뿐이라는 박한 소리도 나온다.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그를 주인공으로 한 '버니 샌더스의 모순' 혹은 '역설(paradox)'이라는 게 나왔다.

"버니 샌더스가 당선될 수 있다면 그는 대통령을 할 필요가 없다."

이게 대체 무슨 말일까? 그를 대통령으로 뽑을 정도의 의식을 가진 시민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면, 이미 사회적 자정(自淨) 작용이 제대로 작동할 것이므로 굳이 그가 대통령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않고, 선거에서도 철저하게 모순이 적용된다.

미국 정치판에는 자정 작용과 반대에 '백인 블루칼라의 모순'이라는 현상이 있다.

"백인 블루칼라에게 불리한 정책을 펼수록, 그들의 표를 더 얻을 가능성이 커진다."

사는 형편이 어려워질수록 과거를 그리워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래서 복지와 인권의 개념조차 없었던 과거를 생각하며, 복지 삭감하고 인권을 후퇴시키는 정책을 펴는 보수에 표를 던진다고 한다. 물론 근저에는 자신들보다 더 고통스럽게 살았던 다수 흑인이나 소수인종이 있어, 상대적 우월감을 가질 수 있던 과거가 그리운 까닭도 있다. 2016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는 그 실제 위력을 유감없이 보였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든 걸 그리워하든지 재연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런 걸 약속하는 이들에게 선거에서 표를 준다. 지금도 세계 곳곳의 국지전에 군인들을 보내는 미국에서, 전투후증후군으로 시달리는 사람 중에 나오는 '참전군인의 모순'이라는 게 있다.

"전쟁은 너무나 잔혹하니, 전쟁을 해서 전쟁을 없애야 한다."

어느 미국 경찰이 방탄조끼를 입으면, 제대로 기능할까 두려움이 더 커져서, 더욱 공격적으로 된다고 한다. 이를 두고 한 교수는 국가도 방어용이라고 이름 붙인 무기를 갖추면 갖출수록, 혹시 이들도 작동하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하는 불안감이 커져, 공포 정도가 심해져 지레 선제공격을 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전쟁을 억지하고, 공격으로부터 나를 지키려고 준비한 방어용 무기가 상대를 공격하여 전쟁을 발발하게 하는 반전을 일으키기 쉽다는 얘기다. 전쟁 자체가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도구로 작용하기도 한다. 1997년의 미국 영화 <Wag the Dog>은 가상 전쟁으로 성추행 추문을 덮고,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는 과정을 코믹하게 묘사했다. 꼬리가 개를 흔드는 모순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10년 만에 서울 도심에서 국군의 날 기념 행진이 펼쳐졌다. 1970년대에 당시는 5·16광장이라고 부르던 여의도에서 사열식을 포함한 기념식이 열리고 시청 앞까지 각종 국군부대가 장비를 갖추고 행진하던 장면이 생각났다. 그때의 행진을 이끈 추동력은 당시 정부가 위협으로 생각하던 내외에 대한 공포였던 것 같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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