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불과불급’의 시대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불과불급’의 시대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8.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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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워너 브라더스
출처 워너 브라더스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바벤하이머(Barbenheimer)’를 했다. 올해 전 세계 흥행의 1, 2위를 다툴 게 확실한 두 영화 <바비(Barbie)>와 <오펜하이머(Oppenheimer)> 영화를 연달아 봤다. 바비는 여성 문학을 전공으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처와 함께 영화관에 가서 봤는데, 예상 밖으로 처의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여러 부분에서 ‘지나쳤다(too much)’라며 박한 평가를 했다. 가장 두드러진 게 일방적인 웅변형의 대사가 많다고 한다. 처의 말로는 <바비>의 감독인 그레타 거윅의 특징으로 전작인 <작은 아씨들> 영화에서도 그런 경향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번 <바비>에서는 더욱 지나쳤다고 한다. 마텔의 직원으로, 반항적인 10대 딸을 키우는 중년의 엄마로 나오는 글로리아라는 배역의 독백과 같은 연설이 결정적으로 과함의 과함을 시현해 거슬렸다고 한다. 전통적인 여성관에 빠져버린 상태로 나오는 인형들을 보고 하는 글로리아의 독백은 이렇게 시작한다.

"It is literally impossible to be a woman. You are so beautiful, and so smart, and it kills me that you don't think you're good enough. Like, we have to always be extraordinary, but somehow we're always doing it wrong. (제대로 여자 노릇 하기는 문자 그대로 불가능해요. 당신은 기가 막히게 아름답고, 똑똑한데,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니 정말 안타까워요. 말하자면 우리 여자들은 항상 특별해야 한다고 하면서, 어떤 면에서 계속 잘못된 일을 하고 있어요.)”

이후 글로리아는 날씬해야 하지만 깡말라서는 안 되고, 건강하기도 해야 하는 여성의 몸에 관한 과도한 주문에 대해 말한다. 이후는 직장에서 상사가 되어야 한다지만, 모두에게 친절하게 굴어야 하고, 리더가 되지만 남자와 달리 아랫사람이라도 의견을 짓밟아서는 안 되고, 커리어우먼이 되어야 하는데 자식을 포함한 다른 이들까지 돌봐야 하는 의무를 짊어진다고 한다. 여자는 늙지 말아야 하고, 무례해서도 안 되고, 뽐내지도 말고, 이기적이어서도 안 되고, 좌절하지 않고 두려워해서도 안 되는데 선을 넘지 말라는 온갖 제약에 시달린다. 결국 글로리아는 이렇게 그의 긴 독백을 마무리한다.

"I'm just so tired of watching myself and every single other woman tie herself into knots so that people will like us. And if all of that is also true for a doll just representing women, then I don't even know. (나 자신과 모든 여성이 다른 이들이 우리를 좋아하게 만들려 자신을 얽매는 모습들에 신물이 나요. 그런 게 여성을 상징하여 나타낸다고 인형에까지 적용되어야 할지 나는 모르겠어요).”

사실 바비에서는 주장만이 말로 과하게 나타난 건 아니었다. 핑크색이 그렇게까지 화면을 메꾸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100개 이상의 기업이나 브랜드와 협력했다고 하고, 그들의 로고나 메시지가 넘쳐났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았다는 미명하에 상업화의 비판을 누그러뜨리며 자유롭게 광고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 전체가 PPL(Product Placement)이라고 할 정도로 소위 명품이라고 하는 브랜드들을 중심으로 패션쇼와 전시회를 겸했다는 평가를 받은 <섹스 앤 더 시티> 영화 시리즈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게다가 관객들에게 바비처럼 꾸미고 나오도록 유도하고, 이를 경험 이벤트로 만드는 것도 영화에서 여성들이 외양에 지나치게 신경 쓰고,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강요한다는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요소들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느낌이 있다. 이런 점들 때문에 글로리아가 그렇게 오래, 일방적이라 할 만큼 떠들어야 했던 건 아닐까.

영국의 가디언(The Guardian) 신문에서는 <바비>가 한국에서만 유독 흥행이 저조했던 이유로 페미니즘에 대한 한국 사회의 민감성과 공격적인 태도를 들었다. 그 지적이 어느 정도 타당하기는 하나, 흥행이 한국에서만 저조했던 이유로는 한참 뒤로 밀릴 것 같다. 바비 인형이 한국인의 정서와 추억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부분이 미국과 다른 서구 사회에 비하여 작다는 게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거기에 처는 그레타 거윅 감독 특유(?)의 장광설에 가까운 웅변을 말한다. “여자들이 가르치듯 떠드는 걸 한국에서는 더욱 못 받아들이잖아.” 이 말을 하고는 그렇기 때문에 더욱 직접적으로 대놓고 오래, 큰 소리로 얘기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고도 했다.

이전에는 ‘과하면 오히려 도달하지 못한다’ 곧 ‘지나친 것보다는 모자란 게 낫다’라는 식의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얘기했다. 모두가 미디어가 되는 현재는 ‘불과불급(不過不及)’, 즉 ‘과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로 간 것 같다. 너무하다 싶게 소리를 크게 지르고, 마구잡이로 아무 곳이나 어느 시간이나 외쳐야만 사람들 귀에 닿게 된다.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불광불급(不狂不及)’, 정신이 미칠 정도가 아니면 닿지 않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러야 들리는 단계가 되겠다. 우리는 어느 단계에 있는가.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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