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함께 만드는 쇼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함께 만드는 쇼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7.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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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올림픽 개막식 (출처 wikipedia)
런던 올림픽 개막식 (출처 wikipedia)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현재 진행되는 2023 FIFA 여자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스페인과 네덜란드 선수들이 SNS에 올린 영상들로 구설에 올랐다. 뉴질랜드 원주민인 마오리족의 전통 의식이자 춤인 하카를 흉내 내며 조롱하는 분위기를 풍긴 영상들이었다. 개막식에 등장할 하카 풍경을 그리면서 그런 나름의 퍼포먼스를 벌인 것이었다. 개막식 무대의 내용이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뉴질랜드에서 펼쳐질 국제 행사에서 하카의 등장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개막식 자체가 크게 화제가 되지 않았다. 보통 이런 큰 스포츠 행사들은 대회 자체의 승패 예측도 만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개막식 볼거리도 사전에, 화제에 오르곤 한다. 극적인 효과를 개막식 현장에서 극대화하기 위하여, 주최 측은 보안에 과도할 정도로 신경을 쓴다. 특히 공식적으로 주최는 도시 단위이지만, 국가의 위용과 문화 자산을 과시하는 올림픽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슬럼독 멜리어네어>, <트레인스포팅> 등의 걸작 영화의 감독으로 유명한 대니 보일이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의 총연출을 맡아 가장 고심한 부분도 바로 콘텐츠의 보안 문제였다. 개막식의 무대 디자인 일부는 사전에 공개하기도 했지만, 운장자 위에서 펼쳐지는 집단 무용과 영상이 어우러지는 장면이나 하늘과 관중석에서 펼쳐질 파노라마가 알려지면 김이 빠지는 건 당연했다. 공연에 참여하는 1만 명이 넘는 인원들과 시설을 준비하는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빼내어 기사화하려는 기자들을 어떻게 통제하는가가 관건이었다. 런던 이전의 숱한 올림픽 개막식 경험이 있던 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몇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 카메라가 달린 모든 폰을 압수하라.
  • 엄격한 비밀 유지 합의서를 작성하고 서명받으라.
  • 모든 참가자를 유급으로 채용하고, 비밀을 흘리면 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알린다.
  • 참가자 각자가 전체 내용은 모른 채, 자신의 소소한 역할만 알고 수행하도록 하라.

대니 보일은 경험 풍부한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한 위의 제안과 반대로 행동했다. 스마트폰을 비롯하여 카메라가 달린 폰들을 압수하지도 않고 자유롭게 가지고 들락거리도록 했다. 비밀 유지 합의서 따위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전문 기술이 필요한 극히 일부분을 빼고는 모든 역할을 무급 자원봉사자들을 선발하여 맡겼다. 참가자들 모두가 개막식 전체의 흐름을 숙지하여 자신의 맡은 부분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알도록 했다. 물론 보이지 않게 사전유출 가능성을 줄이는 방법도 실행에 옮겼다.

인사전문가들을 활용하여 자원봉사를 지원한 사람 중 정보 유출 가능성이 큰 사람들을 정중하게 탈락시켰다. 성화대 작업을 하고 시험을 하는 시간에는 경기장 주변을 영국 군대의 협조를 얻어 비행금지구역으로 설정해, 언론사 헬리콥터의 접근을 원천 봉쇄했다. 무엇보다 그는 기자들까지 포함하여 자원봉사자들과 공연자들 모두를 개막식이라는 작품을 함께 만드는 창작의 동료로 끌어들이는 언어의 반전을 구현했다.

영국의 유명한 중장거리 육상 선수로 런던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던 세바스찬 코의 조언을 받아들여, 보안 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단어를 살짝 바꾸었다.

“비밀이라는 말을 쓰지 맙시다. ‘비밀’이란 건 밖으로 빼돌려야 할 것 같잖아요. 대신 ‘깜짝쇼’라고 하자고요(Stop telling everyone that there is a secret. A ‘secret’ is something that’s pushing to come out. Instead, tell everyone to ‘save the surprise’).”

대니 보일이 세바스찬 코의 제안을 바로 받아들였고, 이후 다 함께 깜짝쇼를 해내자는 뜻의 ‘SaveTheSurprise’라는 문구가 올림픽 경기장을 비롯한 모든 연습장 곳곳에 새겨졌다.

출처 skipedia
출처 skipedia

런던올림픽 개막식의 하이라이트는 작년 작고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몫이었다. 007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대니얼 크레이그가 버킹엄 궁에 가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을 헬리콥터로 모시고 오는 영상이 나왔다. 그 헬리콥터가 경기장 상공에 007 영화 주제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실제로 나타나고 여왕과 함께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는 연출이었다. 모든 관중이 놀라움과 반가움의 환성을 지르는 가운데, 어느새 여왕이 부군 필립공과 함께 귀빈석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손자들인 윌리엄과 해리 왕자까지도 할머니인 여왕이 그들 뒤에서 들어오는 걸 보고는 놀라워했다. 그들도 모를 정도로 깜짝쇼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비밀을 지키도록 관리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쇼를 만드는 동료로 자원봉사자들과 참가자들을 초대함으로써 멋진 반전이 완성되었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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