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폭풍우에 살아남는 법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폭풍우에 살아남는 법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7.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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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배 막 흔들리고 하니까 무섭제?"

"걱정 마라. 배 그렇게 쉽게 안 뒤집힌다."

"니 배가 어떨 때 뒤집히는 줄 아나?"

"파도 높다고 다 배가 뒤집히는 거 아이다."

"배가 뒤집히는 건 있다 아이가, 파도를 피할 때 뒤집히는 기라."

"파도가 아무리 높아도 배도 무게가 있고 길이가 있어서 쉽게 안 뒤집힌다. 근데 초짜 선장들이 겁먹고 도망갈라꼬 배 돌리다 배 옆구리에 파도 맞으면 고대로 넘어가는 기라."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라는 부제를 단 <인간의 조건>(한승태 지음, 시대의창 펴냄, 2013)에 나온, 꽃게잡이 어선의 베테랑 선원이 신참인 저자에게 했던 말들이다. 이 부분을 몇 차례 읽으며, 어느새 '배'를 계속 '사람', '인생' 혹은 '나'로 치환하며 읽었다. 파도는 역경, 시련 혹은 그것으로 가득 찬 것과 같은 고해(苦海)의 상징이었다. 세파에 시달리니, 자기 삶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진다. 내 뜻대로 이루어질 것은 없고, 세상이 무섭기만 하다.

베테랑 선원은 파도가 세도 배는 그렇게 쉽게 뒤집히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인생에 대한 자신이 없어진 사람에게 생이 녹녹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정도도 아니라고 하는 것 같다. 같은 종류의 역경을 당해도 굴하는 자가 있고, 그것을 이겨내는 사람이 있다. 파도에 뒤집히는 배는 파도를 타지 않고, 피하려다 자신의 약점인 옆구리를 노출하며 거기에 충격을 받으며 넘어간다고 한다. 맞다. 눈앞에 있는 문제를 피하려고만 할 때, 문제에 사로잡혀 빠져나갈 길이 없어진다. 문제 따위 부딪혀 버리면 차라리 문제 자체가 없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새로운 문제가 다른 파도처럼 나타나지만, 그 역시 지나갈 뿐이다. 내가 정면으로 그것을 타고 넘어서면.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작가인 체사레 카타(Cesare Catà)가 2016년에 창밖으로 대서양의 파도가 거품을 일으키며 부서지는 아일랜드의 바닷가 어느 시골에 있는 펍에 갔다. 이미 두 번째 흑맥주 파인트를 홀짝이고 있던 늙은 어부와 얘기를 나누었다. 20년 전에 그가 맞은 최고로 끔찍했던 폭풍우를 노인은 추억했다. 노인은 폭풍이 몰아치자, 해안으로 가려고 하는 대신, 오히려 뱃머리를 폭풍의 심장을 향해 돌린 채 돌진했다고 한다. 세 번째 파인트를 마시고 잔을 비우며 노인은 체사레 카타에게 ‘폭풍을 만나면, 섣불리 덤빌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목숨을 건지려면 폭풍의 심장을 향해 몸을 던져야 한다네!”

광고 회사에 다니며 가장 낙담했던 시절에 후배들을 대상으로 지방에 있던 연수원에서 브랜드 강의를 했었다. 광고니 브랜드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세상에 어떤 공헌을 하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며, 자학적인 소리만 주절이 늘어놓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서울로 올라오는 자동차 뒷좌석에서 억지로 잠을 청하려는데, 그래도 부끄러움이 남아 있었던지 갑자기 체 게바라(Che Guevara)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현실적이면서도 불가능한 일을 하자(Seamos realistas y hagamos lo imposible).’

한국어로는 보통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지니자’라고 약간 더 수식을 가한 문구로 알려져 있다. 세상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밤이 지나면 바로 세상이 바뀌리란 꿈을 꾸며 일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광고주가 반 발만 앞으로 내딛게 하려고 열 발 나아가는 계획을 세우리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아기 걸음(baby step)이라도 발을 떼면 결국은 열 걸음, 백 걸음이 된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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