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인종차별과 피해의식을 덮는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인종차별과 피해의식을 덮는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7.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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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지난달 6월 27일 알제리계 17세 소년이 경찰의 검문을 피해 달아나려다, 경찰의 과잉 대응으로 총격받아 사망하며 촉발된 프랑스에서 시위가 일주일을 지나며 조금은 소강상태로 접어든 양상을 띠고 있다. 샤넬이 7월 4일에 에펠탑을 배경으로 센강 부두에서 패션쇼를 개최하고, '2023-2024 F/W 파리 오트 쿠튀르 위크'도 7월 3일부터 6일 사이에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여행사들의 야간 투어까지 재개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그러나 안심할 수는 없다. 인종차별과 관련한 이슈는 언제든 촉발될 수 있다. 특히 이번 시위처럼 경찰을 필두로 한 공권력의 과도한 집행은 글로벌화가 이루어지면 질수록 세계 각국에서 같은 형식으로 꾸준히 증가하며 벌어지고 있다. 그에 항의하는 시위는 역시나 점점 더 격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번 프랑스 시위 중에는 파리 남쪽의 도시인 라이레로즈의 빈센트 장브런 시장의 자택에 소수의 시위자가 차를 타고 돌진하여 집에 불을 지르는 사건도 일어났다. 중도우파란 시장의 정치적 성향에 불만도 있었겠지만, 공권력에 일방적으로 당하고, 다른 인종 대비 편파적으로 피해를 봤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가 극렬하게 폭력적으로 표출된 경우로 볼 수 있다. 한편의 피해의식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게, 실제 프랑스에서는 2017년 경찰의 총기 사용 규제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형법이 개정된 이후 경찰에 의한 총기 사망자가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 작년의 경우 교통단속에서 총기 사용으로 13명이 사망했는데, 대부분이 아랍계나 흑인 계통이라고 한다.

비슷한 경우를 이전에 봤다. 미국에서 1991년 3월에 로드니 킹이란 흑인이 경찰의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다가 잡혀서 대로변에서 일방적으로 집단 린치를 당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촬영되어 공개되었다. 공분을 불러일으켰는데, 1년 후에 열린 공판에서 로드니 킹을 폭행한 경찰들이 무죄 판결을 받자, 흑인 사회가 폭발하며 거센 반발이 폭력적으로 벌어졌다. 바로 LA 폭동이다. 그때 나는 서해안의 LA 반대편인 뉴욕시 맨해튼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뉴욕도 들썩이고 있었다.

LA 폭동이 일어나고, 한인 가게들이 털리며 총격전까지 벌어지는 와중에 뉴욕에서도 판결에 항의하는 집회가 열렸다. 그날 뉴욕은 완전 패닉 상태였다. 브루클린에서 집회를 한 시위대가 브루클린 브리지를 건너서 맨해튼 시내로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며, 각 건물에서는 조속히 귀가하라며 사람들에게 건물 밖으로 나가라고 했다. 그렇게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 사이로, 마치 2차대전 때 엘베 강을 넘은 이후 소련군의 베를린을 향한 진격 소식이 독일인들에게 전해지듯 얼만큼이 진실인지도 모르게 알려졌다. 공권력과 기존 질서가 무너지는 일단을 보기도 했다.

흑인 청년 두 명이 작은 사거리 코너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에 단 스피커로 힙합 음악을 최대 음으로 틀었다. 경찰이 와서 음악을 끄고, 차를 빼라고 하면서 경찰과 대치하는 양상이 되었다. 몇몇 젊은이들이 인종과 관계없이 하나둘 구경을 하러 멈추었다가, 경찰들에게 야유를 퍼붓기 시작했다. 당황한 경찰이 ‘음악 소리를 줄이라’며 체면치레하는 듯 경고만 주고 물러났다. 소수의 흑인이 큰소리로 욕을 하고 그들의 세상이 온양 떠들어대며 으스대며 다니는 것 같았다. 일시에 조기 귀가하러 지하철에 꽉 들어찬 인파들 속을 비집고 들어온 흑인 하나가 좌석에 앉은 백인에게 손가락질하며 일어서라고 했다. 자신이 피곤하여 앉아가야만 하겠단다. 지목당한 백인 신사는 아무 소리 하지 못하고 일어나, 꽉 들어찬 승객들 속에 발이라도 붙일 틈을 만들려 낑낑댔다. 집 근처 패스트푸드점 문 옆에 앉아서 구걸하던 흑인 홈리스도 버럭 일어나서 행인들에게 손가락질하며, 무슨 내용인지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런 거친 언사와 폭력적 행동이 과연 인종차별의 종식을 가져올까? 그전에 차별을 알리고, 자신도 모르게 차별 언행을 하는 이들의 의식을 바꿀 수 있을까.

유럽 축구 리그에서는 인종차별적 언행을 강력하게 규제하고 처벌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 5월 22일, 레알 마드리드 소속 흑인 축구선수 비니시우스 주니어를 향한 인종차별 언행이 라리가 35라운드 발렌시아의 경기에서 발생했다. 몇몇 관중이 비니시우스를 보고 ‘원숭이’라 부르며 놀렸고, 비니시우스는 그들 관중과 설전까지 벌였다. 이어 스페인과 라리가의 인종차별 규제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으나, 라리가 회장은 책임을 떠넘기는 듯한 발언을 했고, 스페인 정부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비니시우스의 조국인 브라질 정부는 “축구장에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있을 곳은 없다”라며 인종 차별 반대 홍보 캠페인의 일환으로 브라질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리우 데 자이네루 도시 언덕 위의 예수상을 1시간가량 소등했다.

예수상을 꾸미거나 음량을 증대한 것이 아니라 불을 껐고, 빛을 가리고 소리를 죽였다. 비니시우스의 피부색에 맞춘 것이라고도 했고, 침묵이 인종차별의 시끄러운 소리를 덮어버렸다고도 했다. 세상은 ‘검은 예수’를 영접했고, 브라질은 ‘믿음’을 비니시우스에게 선물할 수 있었다. ‘힘’은 빼고, 줄일 것은 줄이고, 발상까지 바꾸어 상황에 적절한 대응을 보인 우아하고 품격 있는 반전이었다.

출처 비니시우스 주니어 트위터
출처 비니시우스 주니어 트위터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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