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드타임스 신인섭 대기자] 80년 전, 내 나이 16살. 평양사범학교 4학년 때 8월 15일 정오. 대일본제국 천황폐하 현인신(現人神)의 옥음(玉音) 방송이 있었다. 일본 천황은 살아 있는 인간/하느님이며, 그의 말은 옥음이라 불렀다. 전에도 이따금 옥음 방송이 있었으나, 이번 방송은 듣지 못했다.
1945년이 되자 평양 문수리에 있던 사범학교 교사는 일본군이 막사로 접수했다. 학업은 전폐였다. 하던 일은 문수리에 있던 일본 육군항공대의 비행기 부속품을 창고로 개조한 평양 시내 몇몇 교회에서 정리하는 일이었다.
평양 시내의 큰 교회를 접수해서 무기 부품 창고로 쓰는 것은 비상한 아이디어였다. 첫째, 미군은 교회를 폭격하지 않는다. 둘째, 교회를 징발당하니 교인들이 일요일에 예배드릴 장소가 없어졌다. 셋째, 반일 감정이 강한 한국 기독교인에게는 심한 타격이었다. 내가 일한 경창교회는 큰 교회였고 숭실전문학교 길 건너 바로 맞은 편에 있었다. (숭실전문은 신사참배 반대로 폐교 상태였다.) 한국에 유일한 장로교 신학교는 경창교회에서 약 200M쯤 되는 곳에 있었다. 또한 기독교 병원도 이 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좀 더 떨어진 곳에는 광성중학교, 정의여자중학교 등이 있어서 그 일대는 기독교 마을이었다.
점심 시간이었고 꺼무스레한 빵 2개를 점심으로 주는데, 턱없이 부족했다. 방송은 듣지 못했으나 그때 마침 같은 반 동기생의 아버지로 국민학교 선생이던 분이 지나가시면서 일본말로 “니혼 마껫다요(일본 졌어)”하며 급히 어디론가 가셨다. 너무 놀라워서 믿기지 않았다. 일본이 전쟁에 지다니? 하기야 옥쇄(玉碎)라는 신문 보도는 자주 있어서 일본이 지고 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옥쇄란 전멸(全滅)이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평양의 어느 중학생의 해방 1막은 이것이었다.
해방이 되고 나서도 20여 년쯤 뒤의 일이지만, 한국광고 역사 연구를 하면서 1945년 8월 15일 자 총독부 조선어 기관지인 매일신보(每日新報) 1면에 일본의 항복 기사를 보게 되었다. (1945년 모든 일간 신문은 하루 타블로이드 한 장짜리 신문으로 초라하기 짝없었다.) “평화 재건에 대조 환발 (平和 再建에 大詔 渙發)” 즉 전쟁은 끝내고 평화 재건을 위한 임금의 말씀을 널리 전한다는 뜻의 머리기사인데, 천황의 말씀을 받든 총리대신 이름의 보도였다. 4개 단락으로 된 발표문의 처음 다섯 줄은 다음과 같다.
짐은(천황)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재 상황을 깊이 고려하여 비상의 조치를 통해 시국을 수습하고자 하여 이에 충의(忠義)롭고 선량한 신민들에게 고한다. 짐은 (일본) 제국 정부로 하여금 영, 미, 중, 소 4개국에 대해 그 공동선언(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도록 하고자 하는 요지를 통고하게 했다.
1945년 7월 26일에 발표된 이 포츠담 선언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 요구가 포함된 선언이었고 발표 21일 만인 8월 15에 일본이 수락을 발표했다. 이 21일 기간에는 8월 6일과 9일에 15만 명에서 24만 6천 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히로시마(廣島)와 나가사키(長崎)시 원자폭탄 투하가 있었다. 이 사건은 일시, 장소, 피해에 관한 언급 없이 천황의 조서에도 언급되어 있다. 물론 무조건 항복이란 말은 없다.
1945년 9월 2일, 조서 발표 17일 만에 도쿄만에 정박한 미국 45,000톤급 전함 미주리호 선상에서는 오전 9시 4분에 일본 항복(SURRENDER OF JAPAN) 서명식이 거행되었다. 일본의 항복 문서 서명은 태평양전쟁/세계 제2차 대전의 종료를 공식화한 사건이요, 문서이다. 9월 7일 항복 문서 원본은 트루먼 대통령과 육·해군 장관과 마샬 대장이 보는 가운데 전달되고 다시 10월 1일 정부 문서기록소에 이관되었다.
트루먼 대통령 기념도서관에 수록된 18개 일본 항복 사진 가운데 11장의 사진과 1945년 8월 15일 조선총독부 조선어 기관지 매일신보의 일본 항복을 알리는 천황의 조서를 보도한 1면 기사를 담는다. 비행기 부품 창고로 변했던 예배당은 부활했다. (공산당 치하가 되자 다시 문을 닫았을 뿐 아니라 사라졌다.)
교회를 무기 부품창고로 바꾼 세력은 처참히 무너졌다. 대일본 제국주의는 사라지고 민주주의 나라로 바뀌었고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 되었다. 일본 항복문서 원본은 미국 국가 문서보관소에 저장되어 있다. ‘일본 졌어’란 말을 들은 한국인 중학생은 이제 95세의 노인이 되었다. 그의 지갑에는 6.25 한국 전쟁 참전용사 카드 두 장이 있다.












신인섭 (전)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