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里仁〕 그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카페★里仁〕 그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 장성미 칼럼리스트
  • 승인 2020.08.24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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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구글 검색

한적한 시골길을 걷다가 어느 과수원 옆을 지날 때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게 농익은 과일을 보게 되면 자연스레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주변에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나만 있다고 해서 그 탐스럽게 잘 익은 과일을 함부로 딸 권리는 없는 것이다. 우선 과수원 주인에게 허락을 받거나 값을 지불하고 나서야 그 과일을 소유할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작은 사물도 이렇듯 순서를 지키며 예(禮)를 갖추어야 나의 소유가 되는데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야 할 세상살이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겠는가!

출처 https://new.qq.com/

어떤 작은 조직이든 거대한 조직이든 상관치 않고 그 사회에서 힘(권력)을 갖게 되면 사람들이 특히 남자들이 그 권력에 기대어 종종 사사로운 성적욕망에 탐닉하여 현재의 본분을 역할을 망각하고 대부분 자신보다 힘없는 대상에게 예의(禮義) 없이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시도하여 거두어들일 수 없는 오명(汚名)을 남기고 나락으로 뚝뚝 떨어져 버리는 경우가 있다.

만약 용기있는 고발자(告發者)에 의해 그런 일이 세상에 밝혀지면 대부분의 가해자(加害者)는 처음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부정(否定)이나 회피(回避)를 일삼는다.

그 피해자(被害者)에게 진정한 사과나 뉘우침의 성심성의(誠心誠意)를 다하지 않고 어쨌든지 그 순간만을 모면해 보려고만 하는 무도(無道)하고 용렬(庸劣)한 자세를 취한다.

그러다 뜻대로 해결이 되지 않고 법적(法的)으로 그 문제가 진지하게 제기되면 그제야 꼬리를 내리거나 법정 투쟁을 벌이거나 비겁(卑怯)하게 세상을 떠나기도 한다.

몇 년 동안 국내 정치리더십 그룹에서 이런 추문이 잊을 만하며 나오며 최근까지 줄을 이었다.

그 가해자들이 정치력을 발휘하여 공동체를 위한 업적(業績)을 쌓았다고 사회적으로 공(功)을 세웠다고 인권운동을 했다고 이런 추한 행실을 희석시켜 주거나 용서해 줄 수는 없다.

피해자 어느 한 개인의 기본적인 인권을 유린(蹂躪)하였기에 당연히 법적인 책임과 처분을 감당해야 하고 더더욱 도덕적으로 진실하게 반성하며 세간(世間)의 책망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이 진정 정치그룹에서 애국애민(愛國愛民)의 리더십의 길을 가고 싶었다면 아무도 보지 않고 누구도 없는 그 영역에서 조용히 자신을 바라보며 ‘나의 장점과 단점이 무엇인지, 나의 마음과 생각은 어떤지, 나는 어떻게 행동하고 절제(節制)해야 하는지, 더 나아가 나는 사람과 더불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이런 삶의 기본을 돌아보며 한 발 한 발 걸어왔다면 어땠을까?

살아가면서 참 쉬운 행함은 아닌데 ‘中庸(중용)’을 열면 인간의 삶의 자세에 대해 늘 돌아보아야 할 덕목으로 혼자 있을 때 사람이 무엇을 갖추어야 하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道也者(도야자), 不可須臾離也(불가수유이야). 可離非道也(가이비도야) 是故君子戒愼乎其所不睹(시고군자계신호기소부도). 恐懼乎其所不聞(공구호기소불문). 莫見乎隱(막현호은), 莫顯乎微(막현호미), 故君子愼其獨也(고군자신기독야). 〈中庸ž第一章〉

신독 (출처 http://kuaibao.qq.com)

도(道)라는 것은 잠시라도 떠날 수 없는 것이며, 떠날 수 있는 것이라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보이지 않는 데서도 경계하고 조심하며,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해야 한다.

숨기려하면 더 드러나고, 아주 미미해도 더 잘 드러난다. 그러므로 군자는 혼자 있을 때도 신중해야 한다.

 


장성미 C플랫폼 준비위 사무국장,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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