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로 본 지적재산권] 저작권의 핵심은 표현

[사례로 본 지적재산권] 저작권의 핵심은 표현

  • 윤혜진
  • 승인 2018.11.11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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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서도 타인의 창작물을 사용하거나, 모방하여 복제하는 행위는 저작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것을 배울 정도로, 창작물에 저작권이 부여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입니다. 저작물에 요구되는 창작성은 타인의 창작물을 모방하지 않은 정도의 낮은 수준입니다. 흔한 도형의 변형이나 제목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저작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창작한 것 모두 저작권으로 보호될 수 있을까요?

저작권법상에서의 저작물은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 입니다.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아이디어라고 한다면, 아이디어 자체는 저작물이라고 볼 수 없고, 아이디어가 구체적으로 외부에 표현된 것이 비로소 저작물입니다. 저작물이 거창한 표현물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창작했더라도 보호받을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종종 아이디어와 표현물을 혼동하는 경우입니다.

위 작품들은 굳이 저작물의 정의를 몰라도 어느 한 쪽이 모방했다는 것을 알 정도로 비슷해 보입니다. 차이점이라면 왼쪽은 그림, 오른쪽은 사진이라는 것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그림 또는 사진이 표현방식일까요? 사진은 바람에 날릴 듯 살랑거리는 긴 머리, 푸른 하늘, 머리 위로 들어올린 팔로 청량감, 상쾌함을 표현했습니다.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이런 이미지가 아이디어이고, 구체적인 의상, 표정, 동작들은 표현방식입니다. 아이디어를 사진으로 표현하느냐, 그림으로 표현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청량감이나 상쾌함은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다음의 두 그림을 어떨까요. 피서를 즐기는 여성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수영을 하거나 강렬한 햇빛은 선글라스로 가리고, 잎이 넓은 나무들이 있으면 더욱 좋겠지요. 두꺼운 옷을 입거나 모닥불 옆에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 두 그림의 공통점은 아이디어일까요, 표현일까요?

두 그림 모두 선글라스, 튜브, 나무, 수영장, 느긋하게 누워 있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요소들은 휴식 또는 여름휴가 등을 상상하게 하는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왼쪽 그림은 여성이 튜브에 누워 있는데, 여러 종류의 큰 나뭇잎들에 둘러싸여 있고, 오른쪽 그림은 야자수가 있는 좀더 넓은 공간으로 보이고, 튜브와 여성의 머리가 같은 색상으로 표현되어 더 간결하고 강렬해 보입니다. 모두 여름 휴가로 흔히 떠올릴 수 있는 요소들을 결합했지만, 그 표현방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자신의 작품을 모방했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요소들이 비슷하다고 주장할 만도 하지만, 저작권의 핵심은 작가가 생각하는 아이디어를 얼마나 독특하게 표현했느냐 하는 것에 있습니다.

왼쪽 그림은 컬러링북의 한 작품입니다. 나뭇잎을 검고 어둡게,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색칠했다면 어떨까요? 나른한 여름 오후의 달콤한 휴식이 아니라, 정글에 갇혀 있는 공포나 답답함을 나타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결국 저작권은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핵심입니다.

창작은 기존의 작품을 모방, 개량을 거쳐서 발전한 것이므로, 타인의 창작물을 전혀 참고하지 않고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표현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할 것입니다. 저작물에도 최소한의 창작성만을 요구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다만, 자신의 아이디어라고 해서 모두 보호되는 것은 아니며, 타인이 독특하게 표현한 이미지도 모방해서도 안 되겠습니다.

윤혜진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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