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로 가는 한국의 ‘라면’과 일본의 ‘라멘’
한국에 ‘라면(Ramyeon)’이 있으면 일본에는 ‘라멘(Ramen)’이 있다. 한국에 ‘만화(Manhwa)’가 있고 일본에 ‘망가(Manga)’가 있는 것과 같다. 일본에서는 라멘이라 하면 가게에서 직접 재료를 준비해 끓여내는 생 라멘을 주로 의미하며, 식료품점에서 인스턴트 라멘도 판매하고 있지만 이는 별도로 구분하고 있다. 일본은 라멘의 정체성을 '요리'로 여기지만, 한국은 라면의 정체성이 '간편식'으로 인식하고 있다. 요즘 한국 라면이 한류 열풍을 타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몰이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K-라면' 열풍이 거세다. 농식품 수출 품목 1위로 등극하면서 라면 수출액도 처음 10억 달러를 돌파했다. 뉴욕 맨해튼에서는 MZ세대 트렌드로 자리 잡은 한강의 편의점 문화를 체험하고, 즉석조리기를 활용한 ‘한강 신라면’을 맛볼 기회가 제공하는 이벤트도 열린다. 이러한 한국 라면의 인기에 편승해서 인도네시아서는 현지 라면 1위 브랜드인 ‘인도미’가 ‘한국라면’ 시리즈까지 출시하였다. 제품에는 한국어로 ‘한국라면’이라는 네 글자가 큼지막하게 적혔다. 라면의 영문 표기도 흔히 쓰는 일본 발음의 ‘라멘’(Ramen)이 아니라 한국 발음대로 ‘라면’(Ramyeon)으로 표시했다. 한국 그룹 뉴진스를 모델로 내세운 광고는 하루 만에 100만 회에 육박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큰 화제를 모았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산으로 오인, 혼동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되는 등 지적 재산권까지 침해했다는 문제까지 제기되었다고 한다.
일본 라멘집 눈물의 폐업 속출
일본 라멘에 대해 잠시 살펴보자. 라멘은 일본의 국민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라멘 가게가 전국에 약 1만 8천 개가 있으며, 그중 약 절반이 개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다. 도심이 되었건 주택가 한적한 곳이건 어디를 가더라도 라멘 가게를 발견한다. 일본에서 가장 큰 편의점인 세븐일레븐의 점포 수인 21,430 개에 육박하고 있다. 시장 규모는 약 6천억엔(6조원 정도)에 달할 정도로 절대 작지 않다. 하지만 최근 들어 코로나 팬데믹까지 견뎌낸 라멘 가게들이 잇따라 도산하고 있다. 원재료비와 공공요금이 급등하면서 고객 유치 경쟁과 비용 증가 사이에서 라멘 가게들이 생존을 모색하고 있다. 라멘은 또한 외국인에게도 알려진 일본의 음식문화이다. 라멘을 찾아서 일본 여행을 오는 외국 관광객이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고전하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기회를 잘 포착하고 있는 듯하다. 일본 라멘은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린 지 꽤 오래되었는데 일본의 대표적인 라멘 브랜드 ‘잇푸도(一風堂)’를 통해서 세계화를 진행한 과정을 살펴보자.

라멘 가게에서 12만 원 지불하다
일본 라멘 가게의 해외 진출은 대형 체인점을 중심으로 진행되었고 이중 대표적인 기업으로 ‘잇푸도(一風堂)’를 들 수 있다. 1985년 창업자 ‘가와하라 세이유(河原成美)’ 씨에 의해 후쿠오카시에서 개업한 잇푸도는, 돼지 뼈 특유의 냄새를 줄이면서도 진하고 감칠맛이 강한 국물과 자가 제면이 특징인 하카타 돈코츠 라멘 전문점이다. 고급스러운 목조 인테리어와 매장 내 재즈 배경 음악 등 세련된 매장 연출로 “지저분하고 여성 혼자 들어가기 어려운” 기존 돈코츠 라멘 가게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며, 일본 국내에서 새로운 소비층을 확보에 성공했다. 2008년 3월에는 미국 뉴욕 맨해튼 이스트 빌리지에 'IPPUDO NY' 1호점을 오픈했다. 이것이 '잇푸도' 브랜드로서의 첫 해외 진출이다. 2009년에는 일본과 마찬가지로 면 문화가 정착된 아시아 시장으로 진출을 목표로 하여, 세계 진출 거점이 될 자회사를 싱가포르에 직영으로 설립한다. 뉴욕 매장과 같은 ‘라멘 & 다이닝(Ramen & Dining)’ 형태의 오픈 키친 방식을 도입했다. 잇푸도는 2024년 현재 총 282개 점포를 운영 중이며, 이 중 미국, 싱가포르, 홍콩 등 동남 아시아, 영국, 프랑스를 포함 해외 점포는 137개이다. 국내와 해외 점포 수가 거의 반반을 이루고 있는 셈이다. 일본 내의 기존 라멘 가게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대기 바(Waiting Bar)를 함께 마련해 일본 맥주와 미국산 크래프트 맥주 등을 제공하는 '라멘 & 다이닝' 방식을 강하게 내세운 것이 성공을 거두며, 뉴욕에서 라멘 붐을 일으킨 것으로도 잘 알려졌다. 잇푸도의 해외 진출 성공 요인으로는 아래와 같이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첫 번째 포인트는 뉴욕, 런던, 파리, 싱가포르와 같은 대도시에 매장을 오픈하여 도회적이고 트렌드 한 브랜드 이미지를 확립할 수 있었다. 창업자 가와하라 세이유 씨는 처음부터 뉴욕 진출에 큰 의지가 있었으며 뉴욕, 런던, 파리 등 세계적인 대도시 매장을 기점으로 삼아 브랜드를 확대해 가면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두 번째로는 해외 거점의 운영 방식으로 많은 글로벌 체인점이 채택하고 있는 프랜차이즈를 도입하지 않았다. 대도시 매장은 직영으로 운영하고, 아시아 지역 매장은 현지 기업과의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운영한다. 자사 브랜드 이미지를 널리 알린다는 관점에서 뉴욕이나 런던 같은 대도시 매장은 직영으로 운영하며, 매장 수를 빠르게 늘릴 필요가 있는 아시아 매장은 현지 기업과 라이선스 계약 형태를 취한다. 라이선스 계약이란 회사의 상호나 노하우를 제공하는 대가로 사용료를 받는 방식으로 이는 프랜차이즈 체인(FC)과는 다르다. 현지 운영에 대해 일본 본사가 적극 개입하는 방식이다.
마지막으로 해외라는 새로운 시장에서 라멘 문화를 전파하고 실천하며, '라멘 업계의 스타벅스'를 목표로 기존의 일본적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라멘의 새로운 가치를 세계에 확산시키고 있다. 뉴욕 매장 오픈 시에는 뉴요커들이 바에서 술을 마시며 약속을 기다리거나 메뉴를 고르는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웨이팅 바(Waiting Bar)'를 갖춘 ‘라멘 & 다이닝’ 형태를 도입했다. 술과 안주도 함께 제공하며, 라멘으로 마무리하는 새로운 음식 문화도 제시하였다.
일본 국내와는 다른 콘셉트, 매장 분위기, 메뉴 구성 등으로 현지화된 다이닝 문화를 제시하는 잇푸도의 해외 매장은 일본처럼 저렴한 가격으로 가볍게 배를 채우고 가는 곳이 아니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음식을 음미하고 대화를 즐기는 다이닝하는 곳으로 포지셔닝되어 있다. 따라서 인당 객단가도 일본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고부가 비즈니스를 전개하고 있다. 파리에 있는 잇푸도 매장에서 두 명이 80유로(약 12만 원)을 지불하는 아래 영상을 참조하기 바란다.


현지화를 위한 새로운 음식문화를 제안
간편식으로서의 한국의 라면과 요리로서의 일본의 라멘은 원류는 같지만 겹치는 부분이 많지 않다. 제품을 소비하는 TPO(Time, Place, Occasion)가 상당히 다르다. 하지만 아직 세계 시장에서 인지도가 높지 않고 특정한 소비자층이나 특수한 수요를 겨냥한 비교적 작은 시장인 틈새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제품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또한 대중적인 메인 스트림으로 진입하기에는 앞으로도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까지는 서로 경쟁하는 상대라기 보다는 해외 시장에서의 라면(또는 라멘)의 인지도 향상과 시장 확대 등 시너지를 나게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비슷한 이름을 가진 문화 상품으로서 관계인 것도 같다.
세계 무대에 잘 알려지는 ‘와쇼쿠(和食)’는 스시, 사시미, 우동, 소바, 야키도리, 라멘 등 다양하다. 일본의 면이 해외의 음식문화와 융합된다면 라멘은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최근에는 ‘오니기리(お握り)’가 부상하고 있다. 올해 "오니기리"라는 단어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되면서, 일본의 대표적인 음식이자 친숙한 찹쌀 주먹밥이 세계적인 언어 속에 자리 잡았음을 증명했다. 오니기리는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일본 전통 요리 "와쇼쿠"의 정수를 담고 있는 일상적인 음식이다. 오니기리는 "패스트푸드, 슬로푸드, 그리고 소울푸드"라고 한다. 편의점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패스트푸드이고, 산과 바다의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슬로푸드이다. 마지막으로 소울푸드인 이유는 가족과 친구들 사이에서 자주 만들어지고 먹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별도의 도구 없이 손으로 살짝 쥐어 만들 수 있어, 휴대하며 이동 중에도 먹기 좋다.
세계 시장은 모든 것이 경쟁이다. 한류와 일본 애니메가 글로벌 시청자를 대상으로 경쟁하듯이 콘텐츠만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음식도 세계인의 배를 채우기 위해 세계무대에서 경쟁하고 있다. 일본에는 와쇼쿠가 있고 한국에는 한식이 있다. 양국 다 계속해서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국내를 넘어서 해외로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한식은 과거보다 널리 알려졌지만, 일식, 중식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평가도 있다. 한식을 알리려면 동시에 한식 문화도 함께 전파해야 한다. 현지화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한식 세계화를 만들어 갈 ‘글로컬(Global: Global + Local)’ 전략이 필요하다. 산업적인 측면과 동시에 문화적인 측면에서 기반을 다지는 중장기적인 전략과 방향수립이 필요하다. 중식과 일식은 모두 이 같은 과정을 거쳐 해외 메인 스트림 시장에 진입했다. 세계적으로 한식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이 부분이 일시적이 아닌 영속성을 가지고 유지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한류를 등에 업고 한식도 성장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한류에 기댈 수만은 없다. 현지화에 바탕을 둔 새로운 음식 문화를 제안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라멘 가게의 세계 진출 전략이 우리나라의 한식의 세계화에 시사점을 준다.
양경렬 나고야 상과대학(Nagoya University of Commerce and Business)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