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최의 생각유람] ④ 친구의 방학

[피카최의 생각유람] ④ 친구의 방학

  • 최창원
  • 승인 2019.01.29 08: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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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A는 학기 중엔 교단에 서고, 방학이 되면 나라 밖으로 나간다. 올 방학에도 A는 어김없이 늘 가는 ‘그곳’을 다녀왔다. ‘그곳’은 오지이다.

A에겐 아들이 있다. 그 아들이 사춘기에 들기 전까지, A와 그 아들은 그야말로 ‘친구’같은 사이였다. 그러나 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문제가 생겼다. 그 아들은 아이돌이 되겠다고 선언했고, A는 그런 아들의 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A는, 하나 뿐인 아들이 자기처럼 외국 유학을 다녀와서 교수나 연구원이 되길 바랐다. 매사에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그는, 아이돌 스타를 꿈꿨던 아이들의 실패사례들을 수집해서 아들에게 제시하면서 반대했다. 아들은 학교에 나가지 않는 날이 많아졌고,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드문드문 생겼다.

친구들이 해줄 수 있는 얘기는 한 가지였다. 사춘기? 그거 너도 지독하게 겪어봤잖아? 그치만 지나고 나면 ‘내가 언제 그랬어?’하는 거다. 네 생각만 고집하지 말고, 아들의 생각도 일부 수용해줘라. 일단 그 시기를 잘 넘기게 타협해라.

숱한 번민 끝에 A는, 아들이 원하는 댄스학원에 아들을 보내줬다. 단, 학교에 잘 나가고,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게 조건이었다. 그렇게 아들은 춤을 추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물론 오디션을 보러 가는 것도 A는 허락했지만, 예선 탈락하기를 밤마다 간절히 빌었다.

그렇게 아들은 대학생이 됐다. 물론 A의 바램대로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아이돌 연습생이 되지도 못했고, 그 아들도 점점 자신의 꿈에서 멀어지는 듯 했다. 대신, 아들은 말이 없어졌고, 부모와 대화하기를 거부했다. 그래도 A는 대학생이 된 아들을 보며 안도했고, 부모 자식 사이가 다 그렇지 뭐, 하면서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러나 그 아들이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오지인 ‘그곳’으로 봉사활동을 떠나면서 문제는 심각해졌다. 돌아오기로 되어 있는 3일 전, 떠나기 전에 다녀올 곳이 있다며 짐을 챙겨 캠프를 나간 아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A부부가 바로 ‘그곳’으로 날아가 아들을 찾아보려 했지만, 아들은 어디에도 없었다. 행방불명이었다.

그게 4년 전 일이다. A는 아직도 방학이 되면 ‘그곳’을 헤매고 다닌다. 그런 A에게,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다. 자식이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데, 네 자식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그의 분노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서로 나란히 서서 살아가는 나무와 같다. 자식이 어릴 때, 부모 나무는 자식 나무에게 아낌없이 준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성장하게 되면, 자식 나무는 부모 나무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한다. 인간이 원래 그렇게 프로그램화 되어 있기 때문에, 그걸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세상이다.

햇살도 바람도 공유하지만, 세상의 비바람도 숱한 겨울도 함께 이겨내며 살아가지만, 절대 하나일 수는 없는, 영원히 병립관계인, 그래서 아릿하고 쓸쓸한 ‘부모 자식’이라는 관계. 두 그루의 겨울나무를 보며 든 생각이다.


최창원 카피라이터, 겸임교수, 작가, https://www.facebook.com/ccw7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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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2019-01-29 15:40:21
글과 사진이 멋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