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강을 따라 마음도 그렇게 가더이다
세월의 강을 따라 마음도 그렇게 가더이다
  • 장성미
  • 승인 2019.02.10 14:2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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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현종(唐 玄宗) 이융기(李隆基)는 보위에 오르고 먼저 할머니 측천무후(則天武后)로 인하여 무너지고 혼란스러웠던 정국(政局)을 바로잡았고, 국가의 조직을 개편하며 강력한 황제의 위상을 다시 회복하고 긴 세월 명군(明君)으로 칭송 받으며 당(唐)나라 역사상 극성기를 이룩하였었다.

젊음의 시간을 모두 국가를 위하여 불태웠던 성공한 황제! 그의 곁에는 황실의 수많은 여인들이 있었지만, 긴 세월 유독 그의 사랑을 차지하던 무혜비(武惠妃)가 있었다. 중년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현종은 그녀의 중상모략에 아들을 셋이나 죽이는 비정한 아비가 되었고 그러다 무혜비가 죽자 그의 내면세계는 무너져버렸고 총기(聰氣)있던 황제의 모습도 더불어 사라져갔다.

당 현종과 양귀비 / 필자 제공
당 현종과 양귀비 / 필자 제공

방황 속에 있던 어느 날 그의 마음을 가져가는 또 다른 한 여인 양옥환(楊玉環)의 등장으로 다시 삶의 의미가 소생하였다. 그녀는 무혜비가 낳은 자신의 열여덟 번째 아들인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비(妃)였다. 하지만 이미 사랑에 눈이 멀어버린 현종은 황제의 본분(本分)도 아버지로서의 천륜(天倫)도 다 버리고 욕심에 급급한 혼군(昏君)이 되어 며느리였던 그녀를 귀비(貴妃)에 책봉하였다.

현종은 이십 대의 젊은 양옥환을 얻고서 그녀를 위한 것이라면 가릴 것이 없었다. 그녀가 유난히 좋아하는 과일이 리쯔(荔枝: 여지)였는데, 해마다 남쪽 저 끝에서 리쯔가 익는 초여름이면 바람처럼 빠른 말들을 역마다 줄지어 기다리게 하다가 북쪽을 향해 흙먼지를 날리며 쏜 살처럼 장안(長安)으로 리쯔를 운송해 오게 했다. 그럴 때 아직도 싱싱하고 탐스런 새빨간 리쯔껍질을 벗기고 우윳빛 과육을 입안 가득 머금은 양귀비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즐거워했다.

또 현종은 이임보(李林甫)를 십구 년 동안 재상으로 두면서 훌륭한 대신들은 내치고 아첨하고 순종적인 신하들 만을 중용하니 언로(言路)는 서서히 막혀갔고, ‘인(人)의 장막(帳幕)’도 더불어 차츰 드리워지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형국에 현종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이민족(異民族) 출신 절도사(節度使) 안록산(安祿山)이 야심(野心)을 가득 품고 배신(背信)을 꿈꾸며 한없이 비위를 맞추었다.

안록산은 자기 보다 열다섯 살이나 어린 황제의 여인 양귀비의 양아들이 됐다. 심지어 몸무게가 330근(190kg)이나 되어 혼자서는 일어서지도 못하는 지경이라 양 옆에서 두 사람이 잡아주어야 일어날 수가 있었지만, 현종과 양귀비 앞에서 ‘호선무(胡旋舞)’(《구당서 안록산전(舊唐書•安祿山傳)》)를 출 때는 바람처럼 나비처럼 춤을 추었다.

萬國笙歌醉太平(만국생가취태평), 온 나라 음악에 젖고 춤에 젖어 태평스럽고,

倚天樓殿月分明(의천루전월분명)。 웅장한 화청궁은 달빛에 더욱 도드라지네.

雲中亂拍祿山舞(운중란박록산무), 선율에 어우러져 (안)록산이 춤추니,

風過重巒下笑聲(풍과중만하소성)。 겹겹 산을 지나는 바람결엔 (양)귀비의 웃음소리.

안록산 / 필자 제공
안록산의 호선무 / 필자 제공

돌이킬 수 없는 망국의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서는 운명에 처한 당나라 말기, 만당(晩唐)의 시인 두목(杜牧)은 <過華清宮(과화청궁)>의 시에서 영욕(榮辱)이 교차하던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나라를 기울게 한 단초(端初)의 인물들을 이렇듯 떠올렸다.

현종이 황제에 오르고 처음 이십여 년의 세월 동안은 ‘개원(開元)의 치(治)'라 칭송 받는 ‘태평성세(太平聖歲)’로 백성들의 삶은 안정되고 경제가 탄탄해져 풍요로왔다. 그는 깨어있는 지도자로서 선정(善政)을 베풀고 인재등용에도 탁월하여 요숭(姚崇)、송경(宋璟)、장구령(張九齡)과 같은 재상을 임명하였고, 당나라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로 주변국들이 넘볼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진 국가를 이룩하였다.

안타깝게도 경국지색(傾國之色)에 탐닉해 버리면서 심혈을 기울여 국정(國政)을 돌보던 군주(君主)의 모습은 점점 사라져갔다. 삼십여 년 권좌(權座)에 머물던 현종이 사사로운 감정에 젖어 들면서 분별력도 흐려져 장구령 같은 재상을 파면시키고 이임보 같은 검은 마음을 품고 그저“예, 예”라고 하는 인물을 등용하였고, 더군다나 그의 천거(薦擧)로 안록산을 흡족해 하며 군권(軍權)을 넘겨주기 시작하였다.

혼미해진 황제! 여산(驪山)아래 화청궁에서 현종은 사치와 향락에 취해 깨어나지 못하며 모든 국정(國政)을 이임보에 이어 드디어 양귀비의 사촌오빠인 양국충(楊國忠)에게 일임하자 온갖 부정한 방법으로 부(富)를 축적하고 전횡(專橫)을 일삼았다.

다른 마음을 품고 늘 현종이 죽기만을 기다리던 군(軍)의 실력자 안록산은 갈등관계에 있던 양국충의 타도를 내세우며 마침내 755년 반란을 일으켰다. 오랜 세월 전쟁을 모르던 당나라의 군대는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안록산의 군대를 막을 힘도 대책도 없이 한순간에 마외역(馬嵬驛: 지금의 섬서성陝西省 흥평시興平市 부근)까지 쫓겨갔고 현종은 양귀비의 생명을 내어놓고서야 평정을 이룬 숙종(肅宗)에게 권력을 넘기고 홀몸 늙은이가 되어 태상황(太上皇)으로 물러나며 실패한 지도자가 되어 남은 삶을 살았다.

이 내란의 후유증은 승승장구(乘勝長驅)하던 당나라가 급속도로 기울게 되는 원인의 역사적인 사건이 되었다. 국가의 재건을 꿈꾸는 사대부(士大夫)들의 ‘젊은 피의 수혈’을 외치는 운동이 한동안 있었지만 무력해진 나라를 다시 되돌리기에는 이미 역부족이였다.

사람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권력을 얻든, 보잘것없는 작은 권력을 얻든 또는 어떤 힘있는 누구의 곁에 있게 되든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가르침을 정작 당사자들은 얻은 힘에 마음이 뺏겨 단번에 망각하는 경우가 참 많다.

그러나 누군가 성공한 지도자가 되고 싶다면 또는 누군가의 곁에서 성공한 지도자를 만들고 싶다면 권력이 왔을 때, 마음의 중심에 선(善)을 향한 길 가기를 다시금 다짐해야 하고, 사사로운 욕심을 내려놓고 ‘절제’와 ‘책임’이라는 화두(話頭)를 놓치지 않아야 ‘성공의 길’을 이룩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지도자는 처음 권력을 얻었을 때 품었던 공의(公義)의 실천에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귀를 열고 눈을 크게 뜨고 살피면서 정도(正道)를 잃지 말고 겸손한 리더의 마음을 끝까지 가지고 지속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해야 ‘성공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장성미 문화평론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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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아 2019-03-13 05:45:12
쉽게 재밋게 읽으며 역사를 배우네요.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김남희 2019-02-22 12:31:24
雲中亂拍禄山舞
그림이 살아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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