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파파라치] 엄마의 손톱

[김시래의 파파라치] 엄마의 손톱

  • 김시래
  • 승인 2018.11.19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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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꿀에 수삼을 재어 내주었다. 꼬박꼬박 한 숟가락씩 먹을 것, 새 수저로 먹을 것, 식탁에 흘리지 말 것을 주문했다. 조심스럽게 한술 떠서 입안에 넣고 숟가락을 빨다가 돌아가신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이 보양식을 자주 해주셨다. 엄마의 주문은 아내와는 달랐다. 때 가리지 말고 수시로 자주 퍼먹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곤 급한 일이나 있는 것처럼 집을 나서는 아들에게 그릇째로 들고 따라 나오시며 수삼을 떠먹이시곤 했다.

아내와 엄마는 같은 여자이지만 아들에겐 다른 존재였다. 그런 엄마가 2003년 11월 내 곁을 떠나셨다. 엄마의 고향인 오대산에 함께 갔던 그해 여름 여행이 마지막이었다. 엄마의 임종 때 아내는 엄마의 손톱 10개를 잘라 간직했다. 그리고 오대산 방아다리 약수터 가장 크고 곧게 자란 나무 밑에 묻어 드렸다. 시인이신 누님은 장례를 마치고 그곳에서 삼 남매의 마음을 시를 지어 전해드렸다.

 

사랑하는 어머니, 산을 불러 당신을 심습니다

우리들의 가슴속에 뿌립니다

철이 진다 해도 철철이 피어나실 분가루 고운 당신

한치 혀로 부를 수 없어 목울대마다 붉은 꽃망울이 맺힙니다

눈뜨면 캄캄한 이 광야에 눈감으면 보이는 당신

그 머나먼 길을 따라나선 오대산 자락에서 잡았던 치마꼬리를 차마 놓아 드립니다

이제 산은 어머니가 되고 어머니는 산이 됩니다

마른 배를 불려 여린 자식들을 우뚝 세우신 내 힘찬 어머니

끝내 산으로 일어서 자식들을 품어 안습니다

안고 왔지만 안기어 갑니다 맑고 고운 명주울음 당신, 사랑합니다

영원히 함께 사는 법을 가슴속에 들어와 사는 법을 가르쳐 주신 당신

이제 모든 걱정 근심 아픔마저 훌 훌 다 털으시고

아름다운 그 곳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평안히 평안히 잠드소서

기쁘게 잠 드소서

 

엄마는 방앗간의 피댓줄을 직접 돌리셨다. 신림동의 네거리 한 모퉁이에서 호떡 장사도 하셨다. 그렇게 버신 돈으로 음식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대학을 보내셨다. 명절만 되면 하루 종일 만두를 빚었는데 삼 형제에게 나눠준 수백 개의 만두는 냉장고에 칸칸이 쌓여 몇 달간의 든든한 양식이 되어 주었다.

남에게 베푸는 걸 좋아하셨고 배려심도 깊으셨다. 빌려준 돈을 갚지 않고 외국으로 떠나버린 친구 때문에 마음 상해 있는 내게 엄마는 “사람이 속이는 게 아니다. 돈이 속이는 거다. 잊어버려라”라고 말씀해 주셨다.

직장 초년 시절 “말리면 시래기, 버리면 쓰레기”라는 헤드라인으로 조선일보 광고공모전에서 상을 받았었는데 엄마가 신림시장에서 시래기를 말리고 짚으로 엮어서 만들어주신 소품을 사용한 작품이었다. 엄마는 당시 가장 싸고 쓴 “청자”라는 담배를 즐겨 피셨는데 상금을 받아 조금 비싸고 연한 “은하수”라는 담배를 사드렸었다. 그때의 환한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대한민국 광고대상의 대상을 수상했던 “삼성생명 효 캠페인”도 그런 어머니의 기억에서 만든 것이니 엄마는 온전히 내 인생의 그림자였다. 그런 엄마에게 왜 그리 따지고 대들었는지. 한스럽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또 한번의 11월이 가고 있다.

자생이모위(子生而母危)라고 했다. 아기가 태어나려면 엄마가 아프다는 뜻이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는 뒷바라지가 없다면 누군들 이 세상에 바로 서겠는가. 어디 부모님뿐이랴. 우리는 뒤늦은 후회로 인생을 채워가는 아둔한 존재다. 지금 알고 있는걸 그때 알았더라면. 시인 킴벌리 커버거의 견해가 여기 있다. 부모의 이야기를 포함해서. 만약 당신도 동의한다면 우리의 남은 인생을 함께 타고 갈 타임머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 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 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 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 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 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김시래(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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