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나는 AI를 거부한다 - 결연한 도브의 선언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나는 AI를 거부한다 - 결연한 도브의 선언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4.10.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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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새로이 입사했다는 한 신입사원을 두고 백화점에서 보도자료를 돌린 것도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현대백화점에서 2023년 3월 2일부터 근무를 시작했다는 신입사원의 이름은 '루이스'였다. 커뮤니케이션팀의 카피라이터로 근무하게 되었는데, 정식 근무 전에 그에게 '봄'과 '입학식'을 키워드로 '향수'에 대한 광고 문구를 만들어보라 백화점에서 입사 시험을 겸해 업무를 맡겼다고 한다. 루이스는 "'향기로 기억되는, 너의 새로운 시작' 어떤가요?"라고 제안했다. 이어 입학식 대신 '연인'으로 키워드를 바꿔보라는 주문에 "'흩날리는 벚꽃처럼 설렘 가득한 향'이나 '봄바람과 함께 찾아온 로맨틱한 향기'를 생각해 봤습니다"라고 답했다며 백화점 측은 아주 흡족하게 신입사원의 능력을 알렸다.

아래의 직원 카드에 보이는 것처럼 사번도 부여되고 부서와 직위에 사진까지 있지만, 루이스는 사람은 아니다. 네이버의 초대규모 AI 언어모델 '하이퍼클로바'를 기본 엔진으로 사용하여 현대백화점의 광고 카피, 판촉 행사 소개문 등 마케팅 문구 제작에 특화된 초대규모 AI 카피라이팅 시스템의 이름이었다. 루이스가 업무를 시작한 작년 3월에 CJ에서는 고객 성향에 최적화된 마케팅 문구를 자동으로 생성한다는 '성향 맞춤 AI 카피라이터'를 업무에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지난주 칼럼에서, 행사를 알리는 광고에 실린 사진이 AI로 생성한 이미지임을 알렸던 KB금융그룹의 사례를 얘기했다. 굳이 AI와 결부하여 캡션처럼 쓴 이유를 몇 가지로 추론했는데, AI를 업무에 활용한다는 사실을 기업에서 열심히 홍보한 지는 꽤 되었다.

인조 속눈썹과 같은 미용 소품 사업을 하는 친구가 신제품을 개발했다. 친구의 사업에 필요할 때마다 광고성 문구나 슬로건을 개발하는 일을 함께했었다. 신제품 소식을 듣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그 친구를 만나니 AI로 광고 문구와 슬로건은 물론이고 로고 시안까지 다섯 개 개발했다며 보여주었다. 로고 시안의 방향까지 정리한 설명 문건까지 충실하게 AI가 마련했다. 방향과 역시 AI가 종합한 경쟁사들과 비교하여, 시안 중 하나를 결정하는 일만이 우리 인간에게 주어졌다.

최근 AI와 관련하여 몇몇 사람들이 이미 제기한, 향후 기술의 확산에 아킬레스건이 될 이슈가 있다. 어쨌든 'artificial', '인공'이라는 말이 붙듯이, 'real', '진짜'는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fake'라는 용어가 붙는데, 부정적인 의미가 당연히 내포되어 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Real Beauty' 캠페인을 펼쳐 오면서 'real'을 강조해 온 도브(Dove)로서는 AI를 내세우는 데 동참하는 건 물론 어불성설이고, 뭔가 자신의 견해와 정책을 밝혀야 한다는 압박을 알게 모르게 느껴왔을 것이다. 그 결과가 선언을 담은 동영상으로 나왔다.

'2025년이면 온라인 콘텐츠의 90퍼센트가 인공지능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라는 문장으로 도브의 동영상은 시작된다. 기술 산업 관련 연구기관으로 유명한 가트너 그룹은 그림과 문자를 포함하여 2025년 기업발 광고 메시지의 30퍼센트가 인공지능에 의해 만들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바로 2년 전인 2022년에 그 비율이 2퍼센트에 미치지 못했다는 걸 고려하면 이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다. 이렇게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지는 그림이나 메시지가 어떤 형태인지 도브의 영상이 보여준다.

'끝내주게 멋진(gorgeous) 여자', '완벽한 피부(perfect skin)의 여성', '가장 아름다운(the most beautiful) 여성'을 상상해서 그려달라고 AI에 프롬프트 창에 명령을 내렸다. 그에 맞춰 여성들의 모습이 화면에 나온다. 이어서 도브의 차분한 메시지가 나오기 시작한다.

'지난 20년간 도브는 리얼 뷰티 캠페인을 진행해 왔습니다.'

뭔가 반전을 기대하라는 분위기를 만드는 문장이다. 앞서 AI가 주문에 응해서 만들었던 이미지들을 상기시키면서, 이제는 프롬프트의 요청 문구에 '도브의 리얼 뷰티 광고에 따라(according to Dove Real Beauty ad)'라는 조건이 붙는다. 우리가 그동안 리얼 뷰티 캠페인에서 봤던 주변에 흔히 보는 자연스러운 여성들의 모습이 연이어 화면에 나온다. '완벽한 피부'에서는 검버섯이나 주근깨 가득한 미소 띤 여성들의 얼굴이 등장하는 식이다. 그리고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아름다움은 어떤 종류라고 AI가 배우길 원하십니까?'

다양한 인종과 체형의 여성들이 등장했던 도브의 지난 광고들 장면들에 이어 결연해 보이는 도브의 선언이자 약속이 자막으로 나온다.

도브는 AI를 이용하여 여성의 이미지를 만들거나 왜곡시키는 행위를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Dove will never use AI to create or distort women's images.)

남들이 AI로 뛰어갈 때 진짜의 세계로 달려가는 이가 있어야 한다. 그게 자신이 지난 20년간에 걸어온 길이다. 누구에게는 반전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를 두고 바로 '정도(正道)'라고 한다.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서경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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