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못한 무식함의 미덕

예측 못한 무식함의 미덕

  • 유지영 기자
  • 승인 2019.09.02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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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한참 늦은 리뷰인지도 모르겠지만,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에는 ‘무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무식하지만 일단 죽자고 덤비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서운가, 틀려도 본인이 틀린 줄 모른다.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은 무섭다. 예측할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무엇이든 다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물 간 액션 영화배우인 주인공은 어떻게든 인지도를 띄워 보기 위해 딸에게 물려주기로 되어 있던 전 재산을 투자하여 브로드웨이에서 정극 공연을 올린다. 말이야 쉽지 혼자 연출부터 각본, 연기, 기획, 투자, 캐스팅까지 다 하는 입장이라면 정말 하루하루 버티기조차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예상해본다. 사실 저 정도까지는 겪어 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

미학이고 철학이고 개뿔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액션배우가 고고한 연극판에 뛰어든다는 게 아주 꼴사나웠는지, 상황은 그에게 조금도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방귀 깨나 뀐다는 비평가 중 한 여자는 최악의 평을 예고한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상황은 좋게 바뀔 것 같지 않은데 배우랍시고 데리고 온 사고뭉치는 상대배우에게 같잖은 메소드 연기를 시도하는가 하면, 프로덕션에 남은 돈도 없는데 이것저것 사들이기까지 한다. 결국 어찌어찌 공연이 올라가긴 한다. 정말로 목숨을 바치는 주인공 겸 연출 겸 각본가 겸 기획자 겸 캐스팅디렉터, 투자자…의 현실과 연극의 가상세계를 넘나드는 1인 10역의 열연 덕분이다. 

 어쨌든 연극은 성공리에 마무리된다. 이 눈물겨운 꼴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지켜본 비평가가 한 마디 남긴다. “예상 못한 무식함의 미덕 – the Unexpected Virtue of Ignorance”

“잘 모르겠지만 뭐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는 말은 사실 목숨을 걸 정도는 되어야 받아들여질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도, 시장에 대한 분석도, 전략도 없이 어떤 일을 시작해야만 할 때가 있다. 목숨을 걸 만큼 중요한 게 아니라면, 갑자기 하늘에서 황금이 뚝 떨어지길 기대하는 게 아니라면, 그냥 빨리 손 털고 관두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나뿐인 목숨은 세상에 있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것이고, 하늘에서 갑자기 황금이 뚝 떨어질 확률은 0에 가깝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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