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친구를 웃게 한 자는 천국에 갈 자격이 있다

[김시래의 트렌드라이팅] 친구를 웃게 한 자는 천국에 갈 자격이 있다

  • 김시래
  • 승인 2019.01.18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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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하동은 먼지가 없고 따스해서 걷기에 좋았다. 한반도 중앙을 가로지르는 19번 국도의 섬진강변엔 봄기운마저 감돌았다. 섬진강은 말라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강변 바닥의 사금이 섞인 강모래는 지금도 귀하다고 했다. 제방이 없던 그 옛날엔 바닷물이 여기까지 들어왔고 지금도 섬진강물은 광양 앞바다까지 나아간다. 송림공원에서 구례를 향해 세 시간을 걸은 뒤 호암마을 삼거리에서 멈추었다. 송영복(63)형이 차를 몰고 마중을 나왔다. 형의 고향은 이 곳, 악양 입석마을이다. 부산에 사시다 오래 전 돌아와서 형제봉 주막을 차렸다. 주막은 두 평 남짓의 부엌과 작은 방, 그리고 여섯평 남짓의 홀이 있고 홀엔 네 개의 테이블이 있다. 혼자 손님을 맞고 혼자 안주를 만든다. 밤이 깊고 손님이 마음에 들면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도 부르는데 화개장터에서 버스킹을 하는 수준이시다. 한때 회를 치던 손으로 기타를 들고 <디어 헌터>나 <알함브라의 궁전>을 섬세하게 한줄 한줄 짚어가다 깊은 산중의 낙수 물소리같은 음성으로 노래를 들려주면 얼큰한 청중의 박수가 어김없이 터져 나왔다. 이 날도 출입문 입구 나무 의자위로 호박빛 등불이 걸리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 같은 직장에서 썸을 타고 있는 커플, 감성돔을 싸들고 온 형의 후배들로 좁은 주막은 말소리와 노래소리가 뒤섞이고 어울려 왁자지껄했다. 유감은 돼지고기와 두부를 인정 넘치도록 썰어 넣은 김치찌개를 먹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필 5일장이 서는 날이었다. 형은 싱싱한 미나리와 배를 큼직하게 썰어 넣은 간재미무침과 슴슴하게 간이 된 아구탕을 내놓았다. 잠자리는 주막에서 십 분 떨어진 고택 ‘풀꽃이야기’였다. 그 곳의 여주인은 악양의 오드리 햅번으로 통하는데 컬러링으로 퀸의 노래를 장착하고 계시다.

형과의 인연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갑작스런 실직에 마음이 까마득해졌고 어디로든 떠나야 했다. 공지영 작가의 ‘지리산 행복학교’ 라는 책 속에 형제봉 주막이 있었다. 서럽고도 안타까운 인생의 여러 사연을 간직한 낙향거사들의 사랑방이였다.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 인연이다. 운전을 그토록 싫어하는 내가 바로 일어나 그길로 오후를 달려 이곳으로 들어섰으니. 말총머리를 묶은 형은 어둠이 드리워진 주막의 부엌 모퉁이에서 신문을 읽고 있었다. 손님은 없었다. 막걸리 몇 통을 마셨고 김치찌개에 허기를 채웠다. 몇 마디 대화가 오갔을 것이다. 천장에는 상처를 이겨내고 다시 출발하려는 사람들의 절실함이 부적처럼 매달려 있었다. “친구를 위로한 자는 천국에 갈 자격이 있다”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그 때 그랬으니까. 나의 친구는 누구였을까. 술도가를 하는 형의 친구가 다녀갔고 산행을 다녀온 분들과 몇 마디 주고 받았다. 취기가 몰려 왔다. 나는 누구의 친구이기나 했을까. 눈이 흐려왔고 고개가 내려앉았다. 일어서야 했다. 형이 카드는 안 된다고 했다. 그 때 나는 아마 세상의 불운을 모두 겪은 자의 여린 표정이었을 것이다. 형은 차갑게 얼린 감을 내주며 나중에 보내달라고 했다. 상처는 타인에게로 가는 통로다.

이제 고향 찾듯이 그곳에 간다. 수려한 쌍계사와 장엄한 화엄사도 좋고 떠들썩한 화개장터도 좋다. 아른거리고 어른대며 수면위로 부서지는 금빛 낙조와 굽이굽이 펼쳐진 갈대숲의 하동 백리길은 두고 두고 잊지 못하리라. 재즈풍으로 편곡된 김하은의 <섬집아기>가 함께 한다면 그 풍광을 어찌 감당할 것인가. 먹거리도 재첩국이나 참게탕만 찾을 일이 아니다. 화개장터 버스정류장 중국집을 소개드려볼까? 40년 전 운동회 때 먹던 자장면 맛 그대로다. 세상에 이런 맛이 남아있다니. 나는 주방을 들여다보고 그 이유를 알았다. 바로 돼지기름의 쇼트닝통이 주방장의 발밑에 있었던 것이다. 뭐 어떠랴. 마가린이나 버터나. 풍광과 먹거리는 남도여행의 백미다. 그러나 눈치 채셨을 것이다. 내가 찾는 이유는 인연 때문이라는 것을. 우연한 인연은 세월과 만나 따뜻한 관계가 된다. 작년 가을 서울로 형이 왔었다. 새롭게 뜬 삼각지 양고기집으로 갔는데 비위가 상했는지 잘 드시지 않으셨다. 속편한 해장국 한 그릇을 나누고 잘 아는 통기타집으로 가니 그제서야 너털웃음을 지으며 지리산 자락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헤어지기 직전 얼마간의 용돈을 접어 급하게 호주머니에 넣어드렸다. 네온싸인 휘황찬란한 여의도의 늦은 밤거리는 쓸쓸했고 나는 그에게 작은 위로가 되고 싶었다. 아마도 나와 형은 천국에서도 다시 만날 것이다. 


김시래 정보경영학박사, 트렌드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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