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음악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음악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7.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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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아나운서의 소개에 맞춰 박수를 받으면서 턱시도를 갖춰 입은 피아노 연주자가 입장했다. 청중을 향해 인사를 하고는 연주 의자에 앉았다. 신중하게 안경을 고쳐 쓰고, 악보대의 악보를 펼쳐서 확인했다. 피아노 위에 있던 작은 탁상시계를 오른손으로 잡아, 자신의 눈앞에 가져온다. 왼손으로는 건반 뚜껑을 닫고는, 시계를 향해 연주를 시작할 때의 지휘자가 하는 것과 같은 손짓 신호를 한다. 그러고는 시계만 바라보며 조용히 연주 의자에 앉아 있다. 그렇게 33초가 지나고 시계를 원래 있던 피아노 위에 놓고 건반 뚜껑을 연다. 5초 정도 지나자 다시 시계를 집어 들고 똑같은 수신호와 함께 뚜껑을 닫고는 2분 40초를 시계만 바라보고만 있었다. 앞서처럼 다시 열고 5초가량 지난 후에 같은 형식으로 1분 20초를 보내고, 시계를 놓고 뚜껑을 연 후에 객석을 향해 인사를 하고 사람들은 박수를 친다.

현대 아방가르드 음악의 대표곡으로 꼽히는 존 케이지(John Cage)의 ‘4분 33초’-영어로는 보통 그냥 ‘four thirty-three’라고 부른다-의 연주 장면이다. 1952년 8월 29일 미국 뉴욕주 우드스톡(Woodstock)의 매버릭 공연장(Maverick Concert Hall)에서 처음 공연되었다고 한다. ‘길들여지지 않은 어린 야생마’란 뜻에서 기원하여 ‘반항아’, ‘전통을 깨는 사람’을 뜻하는 ‘매버릭’이란 이름을 가진 장소에서 초연되었다는 것도 심상치 않다. 많은 이들에게 우드스톡은 1969년 8월 중순 며칠을 두고 열렸던 록 페스티벌의 장소로 잘 알려져 있다. 그때의 초연 현장에서 침묵의 연주에 당황했던 이들은 17년 후에 그곳에서 음량 데시벨로만 보면 대척점이라고 할 만한 록 페스티벌이 열리리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음악이라는 공통분모 이상으로 그 둘이 공유하는 게 있다.

반전투성이의 곡이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 악보를 보면 1, 2, 3악장을 가리키는 로마숫자 아래 ‘침묵’이란 뜻의 ‘TACET’라는 단어 하나만 쓰여 있다. 보통 피아노 뚜껑을 열면서 연주가 시작되는데, 여기서는 닫으면서 시작하고 연주를 마치면 뚜껑을 연다. 제목은 ‘4분 33초’라고 했지만 존 케이지 자신이 시간은 연주자가 알아서 조절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관현악단이 이 곡의 연주를 3분 33초로 끊자, ‘템포가 너무 빠르다’, ‘연주가 너무 짧았다’라는 혹평이 나왔다고 한다. 이 곡의 연주 동영상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정말 꿀 알바’ 식으로 어처구니없거나 그래서 재미있다는 댓글이 달리는데, 관현악단과 함께 이 연주를 지휘한 이 중 하나는 1악장이 끝나고 힘들어서 손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닦는 모습을 보였다.

음악은 ‘음표와 음표 사이의 침묵을 즐기는 것’이란 애써 반전 묘미를 만들어내면서 한 말이 있다. 존 케이지는 침묵 그 자체가 음악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의 말을 빌리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이 음악(Everything we do is music)”이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지만, 연주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 침묵의 시간을 보낸다. 위에서 묘사했던 것처럼 시계를 보기도 하고, 뚜껑 위에 손을 얹거나 허벅지 위에서 건반을 두드리듯 손가락을 놀리는 이도 있다. 어떤 행동을 하라는 지침은 없다. 그저 침묵 속에 4분 33초를 보내는데, 완전한 침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계 초침이 돌아가고, 연주자의 호흡도 들숨과 날숨을 구별할 정도로 들리게 된다. 무엇보다 청중들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부스럭 소리를 낸다. 어떤 때는 부러 기침하고, 콧노래를 부르며 침묵의 시간을 메꾼다. 그것들이 음악처럼 들린다. 어떤 면으로는 청중들과 함께 만드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드스톡은 그렇게 침묵하며, 이후에는 젊음의 소리를 발산하며 함께 만드는 음악의, 그리고 한 시대의 문을 열었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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