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정체성과 안전의 두 마리 토끼를 잡다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정체성과 안전의 두 마리 토끼를 잡다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8.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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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광고주들이 대가를 지급하지 않으면서 가외 일들을 시킨다는 불평은 광고 회사 쪽에서 자주 나오기 마련이다. 이전에 함께했던 대표이사 한 분은 ‘광고주라는 사람들이 말이야, 줘야 할 돈도 안 주고 말이야’라고 불평에 동조해주는 말씀을 던지신 후에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지셨다.

“그런데 말이야, 나쁜 광고주를 좋게 만들어야 하는 것 아냐?”

정말 불평만 해댔지, 그들 광고주를 변화시키려는 본질적인 노력은 하지 않았다. 광고 회사들은 누가 더 험한 일까지 해대며 더 밑으로 갈 수 있느냐는 경쟁을 하고 있었다. 광고주도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그에 대해 뿌듯함을 느낄 때, 광고 회사에 대해 더 많은 서비스를 정당하게 요구하고 구매하지 않겠는가. 마케팅의 정의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구매 장애 요소를 없애 주는 것’이라고 나는 자주 말한다. 그 정의에 매우 적합한 사례가 있다.

출처 https://toughturban.com/
출처 https://toughturban.com/

2018년 캐나다의 온타리오주는 모터사이클을 탈 때, 헬멧을 꼭 써야 한다는 규정을 폐지했다. 안전에 역행하는 개정인데, 터번을 항상 착용하는 시크교도들을 위한 조치였다. 인도 바깥에서 가장 많은 시크교도가 사는 나라가 캐나다라고 한다. 영국이나 미국의 군대나 경찰에서도 시크교도들에게는 철모나 모자 대신 터번을 쓰고 근무하는 걸 허용하고 있으니, 그 연장선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할리 데이비슨의 고향인 미국 위스콘신주에서 가깝고, 자연환경도 라이딩을 즐기기에 좋은 캐나다인데, 시크교도들에게는 헬멧 착용 규정이 구매 장애 요소였다. 개정 조치가 행해지기는 했으나, 바로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딜레마가 있다. 터번을 써서 종교 정체성을 보일 수는 있으나, 만일의 사고 시 안전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바뀐 규정에도 불구하고, 터번은 계속 구매 장애 요소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안전과 종교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는 없는 것일까. 캐나다 할리 데이비슨 딜러사의 광고 회사인 줄루 알파 킬로(Zulu Alpha Kilo)는 헬멧만큼의 안전 성능을 갖춘 터번을 만듦으로써 두 마리 토끼를 잡고, 구매 장애 요소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근대 이전의 갑옷 위에 걸치던 쇠 그물 형태에 현대의 방탄조끼 소재를 결합하여 안전 헬멧 구실을 할 수 있는 터번을 만들었다. 시크교도는 예로부터 용맹함으로 유명했는데, 실제 과거의 시크교도 전사들이 쇠 그물을 터번 천 속에 넣고 머리에 감았던 사실로부터 착안했다.

캐나다 할리 데이비슨에서는 ‘터프 터번(Tough Turban)’이라고 이름 붙인 라이딩용 터번의 설계와 제작 과정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공개했다. 세계 각지에 시크교도들이 흩어져 살고 있으니, 그 지역에 맞게 제작하라는 의도였다. 전 세계의 모든 시크교도가 ‘자유’롭게 라이딩을 즐겨야 하지 않냐며, 할리 데이비슨의 브랜드를 강하게 각인하는 효과도 거두었다. 터프 터번 프로젝트를 인지한 사람들의 80% 이상이 할리데이비슨을 보다 가깝고 포용력이 있는 브랜드로 느끼며 선호도가 올라갔다고 한다. 모터사이클을 즐기고 싶어졌고, 그때 할리 데이비슨을 고려하겠다는 비율도 올라갔다. 시크교도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거친 사내들의, 그들만의 세계 속, 그것도 너무나 미국적인 놀이라는 인식이 옅어진 것이다. 시크교도들을 위한 ‘터프 터번’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했을 때, 광고주인 캐나다 할리 데이비슨 내의 누군가는 ‘할리를 타는 시크교도들이 얼마나 된다고?’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을지도 모른다. 좋은 의도는 다른 집단에도 영향을 주고, 원래 출발점이 된 브랜드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광고주들을 착하게 변화시키라는 반전의 시각을 말씀하셨던 대표이사는 이후 광고주 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기업의 브랜드를 혁신할 필요가 있어서, 나름 세밀한 브랜드 성장전략을 제안했다. 브랜드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할 필요가 있다며 대목마다 강하게 동의를 표시했던 분께 마지막으로 작업을 하려면 얼마 정도의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돈 얘기를 하자 그분이 긴 한숨을 뿌린 후에 말씀하셨다.

“그냥 해주면 안 될까? 정말 돈이 없어.”

광고주가 돈을 내고 합당한 서비스를 받아야 함을 설파하신 분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상황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안타까운 반전이었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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