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손님 쫓는 술집 광고의 반전 효과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손님 쫓는 술집 광고의 반전 효과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8.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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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마존
출처 아마존

‘Hot Beer, Lousy Food, Bad Service’ 

‘뜨거운 맥주, 형편없는 음식, 나쁜 서비스’

어느 맥줏집에 들어가려는데, 문 앞에 이런 안내판이 걸려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 뉴욕시 맨해튼에서 JFK 공항을 갈 때 주로 이용하는 밴윅고속도로(Van Wyck Expressway) 옆길에 게토(ghetto)라고 보통 부르는 빈민가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쇠락한 느낌을 주는 동네에 있는 블라니(Blarney)라는 술집 앞에는 광고인지 경고인지 이런 문구들이 붙어 있었다.

특별한 스포츠 중계가 있는 날도 아니고, 흔한 대형 TV 하나 있지도 않은데, 술집 안은 오후 5시부터 북적거린다. 많은 손님과 바텐더는 친근하게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손님들끼리도 대부분 알고 지내는 것 같다. 맨해튼의 화려한 지역들 빼고, 뉴욕시 서민 주택가의 전형적인 술집 풍경이 펼쳐진다. 블라니 바가 위치한 동네로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들를 일은 거의 없다. 혹시나 길을 잃어 들어가면 약간 우범지대 같은 분위기도 풍겨서 겁이 나기도 한다. 술집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손님들의 이방인을 보는 것과 같은 시선을 참아내야 한다.

외지에서 온 손님들이 남긴 평가 후기는 양극단으로 좋음과 싫음이 갈린다. 제대로 걸레질하지 않은 바닥에 내려앉은 먼지가 눌어붙어 끈적거리고, 손님들과 잡담을 나누느라 바텐더는 주문을 제대로 받지도 않고, 시킨 술과 음식이 나오려면 하세월이다. 높은 평점을 남긴 이들은 서로서로 잘 아는 옛날 술집과 같은 분위기가 좋다고 한다. 그리고 맥주 종류가 두 가지에 불과하지만, 충분히 차갑고, 맛있다고 한다. 스스로 자기 파괴적으로 깎아내린 듯한 위에서 얘기한 문구들이 뭔가 의도가 있고, 실제 발휘하는 효과가 있다.

첫째, 손님들의 기대 수준을 낮춘다. 일제 강점기에 지원병으로 나갔다가 해방 후에 국군 창설하는데 일찍 들어가서 나중에 육군 참모총장까지 지낸 인물이 있다. 그의 별명이 석두장군(石頭將軍), 곧 ‘돌대가리’ 장군이었는데, 그런 별명이 붙는 데 맥주가 일정 역할을 했다. 어느 겨울에 그의 집에 미군 장교를 포함해 손님들이 왔는데, 그의 부인이 날씨가 춥다며 맥주를 데워서 대접해서 그 남편에 그 부인이라며 별명을 굳혀 주었다고 한다. 그런 난센스와 같은 아주 특별한 상황을 빼고 맥주를 미지근하게 ‘warm’도 아니고, 뜨겁게 ‘hot’ 하게 주는 경우가 요즘 세상에 가당하겠는가. ‘뜨거운 맥주’라고 경고를 했기에, 다른 술집과 비슷한 정도의 온도라고 해도 손님들은 훨씬 차갑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음식 맛에 대한 기대도 접고 들어왔을 테니, 크게 불평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음식 맛을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후기는 거의 보지 못했다.

둘째, 외지에서 오는 뜨내기 손님들을 막을 수 있다. 블라니 바는 서민풍의 전형적인 동네 술집이라고 했다. 이웃사촌들의 가족모임 같은 데에 이질적인 인사들이 오면 분위기를 흐릴 수 있다. 그래서 아예 외지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는 효과를 기대하면서 저런 문구를 걸었을 수 있다. 단골인 동네 사람들이야, 저런 문구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다. 항상 비치되어 있는 가구처럼 여길 것이다. 맥주의 온도나 음식 맛이 어떠한 지 확실히 알고 있는 그들은 저런 문구 자체를 유머 감각을 보여주는 농담으로 여겼다. 그런 농담을 즐길 줄 알고, 경고(?)에도 불구하고 술집에 오는 자신들의 충성도를 과시하며 자부하는 징표가 되기도 했다.

셋째, 술집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다. 아이리시(Irish) 술집들이 뉴욕 전역에 꽤 많다. 맨해튼의 고급 아이리시 바들과 술과 음식, 서비스의 품질로 경쟁할 수 없을 바에야 블라니는 자신을 낮추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런 자비(自卑)나 자학(自虐)의 반전 메시지로 블라니 바는 퀸즈의 아이리시 술집으로 한 번쯤 찾아가 볼 만한 곳으로 알려졌다. 마치 형편없는 청결 상태 등을 일부러 보이며 성공한 한스브링크 호텔의 광고 캠페인과 같은 효과를 위의 경고성 광고문이 거두는 반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세 가지 의미를 정리했지만, 블라니 바의 주인이 정말 그런 효과를 노렸는지는 알 수 없다. 다음에 뉴욕에 가면 들러볼까 생각한다. 이렇게 호기심을 생기게 만든 것만으로도 성공한 반전 커뮤니케이션의 사례로 올릴 만하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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