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반전 필수의 ‘여섯 단어 이야기 Six-Word-Stories’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반전 필수의 ‘여섯 단어 이야기 Six-Word-Stories’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09.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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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문학 작품의 갈래로 소설이란 것이 있다고 학교에서 배울 때 길이에 따라 분류한다고 했다. 장편(長篇), 중편(中篇), 단편(短篇)으로 나누는데, 장편 중에서도 아주 길어서 한 권에 담지 못하는 건 대하(大河)소설이라고 했고, 한두 장 분량밖에 안 되는 것들은 콩트나 손바닥 안에 쓰일 정도라고 ‘손바닥 장(掌)’을 써서 장편(掌篇)이라고 했다. 그런데 손바닥 장편보다도 짧게 단어 6개를 가지고 이야기를 꾸미는 놀이를 영어권에서 즐기는 이들이 있다. 여섯 단어로 이루어진 작품들을 올리는 게시판 같은 웹사이트도 있다. 시라면 모르겠지만 소설은 모름지기 한 장 이상은 되게 길어야 한다는 기존 관념을 반전시킨 경우라 할 수 있다. 재미있게 본 것들 몇 개를 뽑아봤다. 될 수 있는 한 여섯 단어로 옮기려 노력했다.

Strangers. Friends. Best friends. Lovers. Strangers. (타인. 친구. 절친. 연인. 타인.)

서로 모르는 이들로 만나서 친구가 되고, 그중에서도 가장 가까운 사이의 절친으로 발전하다.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했다가, 무언가 서로 갈라서서 다시 타인으로 돌아간 안타까움 혹은 속 시원함과 그 사이사이 관계의 발전과 변화를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이렇게 여섯 글자 이야기는 반전과 함께 독자 스스로 상상하게 만드는 게 핵심이다. 위의 두 사람의 관계 변화에 이어지는 이야기도 있다.

“Wrong number,” says a familiar voice.(“전화 잘못 걸었습니다.” 친숙한 목소리가 말했다.)

목소리는 익었고 누구인지 알지만, 낯가리는 타인이 되었다. 전화를 건 이는 무슨 미련이 남았던 것일까. 전화를 받은 쪽도 건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을 텐데, 어떤 심정으로 매몰차게 잘못 걸었다고 했을까. 인간관계야 죽고 못 산다고 했다가, 원수지간이 되기도 하니까, 이런 일에 낙담할 건 아니다. 그런 인생 반전을 얘기한 여섯 단어도 있다.

Failed S.A.T.. Lost scholarship. Invented rocket.(대입수능 망침. 장학금 실패. 로켓 발명.)

한국의 대입 수학능력 시험과 비슷한 S.A.T.를 망치고, 장학금도 받을 수 없게 되어 대학을 다닐 수 없게 되었다. 대학에서 나와 혼자 마음대로 시도하다가 로켓까지 발명했다. 대학이 인생에 꼭 필요한 건 아니다, 아니 성공의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비슷한 사례를 한국에서 들은 적 있다. 한 후배가 포르쉐를 장만하여 그 동호회에 갔단다. 처음 참가하는 이들이 차례로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30대 중반 정도 되는 이가 이렇게 말하더란다.

“제가 고등학교 때 공부를 꽤 잘했어요. 까딱하면 수능 성적이 잘 나올 뻔했는데, 운이 좋아 시험을 망쳤습니다. 그래서 동대문시장에서 장사를 시작해서 이렇게 포르쉐 동호회까지 나올 수 있게 되었네요.” 그 얘기를 듣고 나도 여섯 단어 이야기 시도해 보았다.

“수능 폭망. 장사 시작. 포르쉐 즐김.”

여섯 단어 이야기의 가장 유명한 건 헤밍웨이의 다음 작품이다. 누군가가 여섯 단어로도 소설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바로 이렇게 써서 주었다고 한다.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아기용 신발 판매. 한번도 착용 안함.)

한 번도 신어본 적이 없는 아기 신발을 팔려고 내놓았다. 신발이 마음에 안 들어서 팔기로 한 것일까. 그런 쪽으로 상상이 되지는 않는다. 뭔가 가슴 아픈 분위기를 풍긴다. 그 아기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부모들의 문제였나. 헤밍웨이의 아기 신발 이야기와 연결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슴 아프게 반전의 대비를 일으키는 단어들을 쓴 작품이 있다.

The smallest coffins are the heaviest.(가장 가벼운 관이 제일 무겁게 느껴진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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