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파스타와 성리학의 공통점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파스타와 성리학의 공통점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10.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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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파스타가 짜장면처럼 되었어.”

이태원에 있는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 그 동네에 있는 이태리 음식점에 평균 잡아서 일주일에 한 번은 가곤 했다. 여성 동료들이 많았던 팀에 주로 있었는데, 남성 대비 이태리 음식을 비롯한 양식을 좋아했다. 외부 손님들을 만나서 식사를 함께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태원 동네의 특성상 양식을 대접하는 게 자연스러웠고, 대부분 사람도 자신의 회사 주변과는 다르게 이태원에서는 양식을 기대하고 오는 편이었다. 서양 음식점 중에 이태리 음식점 숫자가 많은 편이었고, 거기서 파스타를 먹다 보니, 일주일에 한 번은 먹어야만 하는 짜장면 같은 음식이 되어서 위와 같은 말을 했다.

회사 일과 관련 없이 만나는 친구 중에도 파스타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모이게 되었다. 이태리 유학을 다녀온 친구들이 다수인 집단이었다. 그들이 추천하는 우리와 비슷한 연배로 파스타 요리를 잘한다는 요리사가 둘 있었다. 한 명은 한국 여성과 결혼한 이태리인으로, 아예 자기 이름을 일찌감치 음식점 점포명으로 내걸고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다른 친구는 한국인으로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이태리로 가서 3년 넘게 현지 식당에서 일을 하고 돌아왔다. 꽤 고용 주방장을 맡아서 일하다가, 이태리 유학생 출신 모임 친구들과 내가 어울렸을 때쯤 독립하여 자기 음식점을 차렸다고 들었다.

어느 날 이태리에서 음악 유학을 하고 돌아와서 이태리 음식점을 하는 선배뻘 연배의 식당에 모여서 놀다가 서울에서 이태리 음식을 가장 맛있게 하는 곳이 어디인지가 화제에 올랐다. 고급 호텔 안에 있거나 부자 동네의 화려한 음식점들을 물리치고 위에서 얘기한 한국 여성과 결혼한 이태리인과 현지 음식점에서 밑바닥부터 갈고닦고 돌아온 친구 두 명이 최고라는 데 별 이의가 없었다. 그럼 둘 중 누가 더 나은가를 가지고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음식점 주인이었던 최고 선배뻘 되는 분이 결론을 내려주었다. 둘의 유파가 완전히 달라서 우열을 비교하고 나눌 수 없다고 했다. 거기서 힌트를 얻은 친구들이 ‘맞다’라고 맞장구를 치면서, 둘의 특성을 정의하는 대화로 이어졌다.

트렌디하게 새로운 시도를 가한 것과 옛날 방식의 전통 이태리 음식으로 둘이 나뉘었다. 변화하는 입맛과 플레이팅과 서브 방식에 맞추어 변화를 가한 쪽이 이태리인 요리사였고, 한국인 친구는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정통의 맥을 잇는 요리를 했다는 평가에 모두가 동의했다. 역사상의 비슷한 사례를 다른 부문에서 끌고 와서 얘기해 주었다.

중국 송나라 때 주희가 성리학이라는 이름으로 나름 유가 고전의 체계를 잡았다. 그런데 <송나라의 슬픔> 책에 따르면, 송대에 성리학은 '인성에 위배되는 사상 논리'요 주희는 그저 사립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 때 성리학이 황권과 결합하여 국가 법률의 중심사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한동안 성리학은 지고무상의 존재로 다른 해석을 용인하지 않고 정권 보위의 칼처럼 쓰였으나, 그 반작용으로 명 후기에 가면 유연함과 도덕성을 강조하는 양명학이 나타났다. 이후 청대에는 실용적 측면을 강조하는 고증학이 대두하여 학문 조류를 이끌기도 했다. 조선에서는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주희의 해석을 규정하고, 그 틀에서 벗어나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철퇴를 가하는 상황이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다.

주희가 유가 선현의 말씀을 색다르게 해석하는 일종의 ‘독창성(Ingenuity)’을 발휘했다면, 같은 중국 학자로서 자신도 다른 방식을 시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 데 비하여, 조선의 학자들은 변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수성(Genuity)’에 문자 그대로 목숨을 걸었다. 이태리 출신의 요리사는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한국인 친구는 이태리 스승의 방식을 고수한 양태와 비슷하다.

전통 이태리 요리 방식을 지키던 친구는, 이태리 음식점이 고급화되는 과정에서 가격까지도 이전의 수준을 지켰다. 이태리 서민들의 음식을 화려하게 식당을 꾸미고 비싼 식기에 내놓으며 터무니없는 가격을 매기는 짓을 자신은 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고 있으니 자신의 파스타를 저급으로 퉁쳐 버린다고 분노하던 그 가 어느 날, “더 이상 이태리 음식 못하겠어요. 술집이나 하렵니다”라고 선언하고 실천에 옮겼다. 이후 그가 새로 연 음식점에는 국적 불명의 음식들이 난무했다. 음식도 그도 자유롭게 어울려 소리치며 음정 박자 무시하며 노래 부르는 것 같았다. 놀랍게도 이태리 친구는 전통 방식으로 회귀했다. 그렇게 반전에 반전이 음식점 세계에서도 돌아간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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