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반전을 기대하며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반전을 기대하며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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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한축구협회 트위터
출처 대한축구협회 트위터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처가 갑자기 한국 대표팀이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축구에 거의 관심이 없는 처에게도 월드컵 축구는 큰일인가 싶었다. 까닭을 물으니, 어느 은행에서 한국 대표팀이 16강에 진출하면 이율은 10% 이상으로 주는 상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월드컵 축구의 시간이 왔다. 그런데 10월 29일의 참사 이후는 어떤 일을 해도 생각이 너무나 익숙했던 이태원 해밀턴 호텔 옆의 그 좁은 골목으로 향한다.

월드컵에서의 한국팀 성적과 연관된 저축 상품 얘기를 듣고도 바로 축구장에서 일어났던 압사를 초래한 사고들이 생각났다. 가까이 올해 10월 1일 인도네시아에서 135명이 경찰에 쫓기며 뒤엉켜 압사하는 사고가 있었다. 중국과 남미에서도 비슷한 사고들이 있었다지만, 이 방면에서 사람들의 뇌리에는 축구 종주국이라고 자부하는 영국 팀들이 연관된 것들이 크게 자리를 잡고 있다. 영국의 축구팬들, 특히 훌리건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경기 전후의 폭력적인 행동과 응원은 1980년대 특히 격하기로 유명했다. 39명이 사망했던 1985년 벨기에 하이젤 경기장에서의 난동과 거의 100명에 이르는 팬들이 압사했던 1989년의 힐스버로 사건은 영국뿐 아니라 축구계 전체의 가장 참담했던 사건으로 남아 있다.

1990년에 영국으로 삼성전자 홍보영화 촬영 출장을 갔다. 당시 1부 리그였던 윔블던 축구팀을 삼성전자가 후원하고 있었고, 마침 그들의 홈경기가 있어서 촬영을 한 적이 있었다. 축구 전용 경기장은 처음 가보는 것이었다. 경기장까지 응원가와 구호를 소리 높이 외치며 가는 당시 장발이거나 빡빡이었던 관중들의 무리는 축구 '팬(fan)'보다는 소요 '군중(mob)'에 가깝게 느껴졌다. 힐스버로 사건이 바로 전해에 일어났고, '훌리건'이란 단어가 한국인들에게는 생소함을 벗어났으나 실체는 모른 채 그저 두렵게 자리 잡고 있던 시기였다. 그리고 세계 축구 조류나 관전 문화 등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당시 영국의 프로축구가 어떤 식으로 구성되고 운용되는가에 대해서도 아무런 지식이 없었다. 선수들이 서로 소리치는 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하프라인 근처의 VIP석 두 번째 열에서 경기를 봤다. 축구 전용 구장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중간 휴식 시간에는 VIP석 뒤편에 있던 운동장 클럽에 가서 당시 영국을 방문한 소국의 수상과 악수를 나누고 위스키를 홀짝거릴 정도의 호화로운 관전이었다. 그러나 경기장까지의 보도에서 마주치고, 야구로 치면 외야 블레처(bleacher)같은 곳에서 서서 응원하는 이들의 거친 모습이 더욱 강하게 공포스러운 기억으로 한동안 남아있었다.

팀의 성적이 괜찮으면 관중들의 계층이 올라가고 응원 태도도 점잖게 되지만, 헤매기 시작하면 곧바로 예전의 거친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영국 축구팬으로 <피버 피치>이란 책을 낸 저자가 말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후진 팀일수록 추한 팬들을 모으는 것 같다'라고 한다. 내가 관전했던 1990년 경기에서 윔블던은 힘 한번 쓰지 못하고 3:0으로 졌다. 상대는 어디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경기 직전의 1990년 월드컵에서 영국인의 원성을 들었던 흑인 스트라이커가 멋진 활약을 보여주었다. 윔블던이란 팀 자체가 약체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팀의 성적이 후져서 그리 응원하는 팬들도 거칠었나.

팀의 성적과 팬들의 극성이나 폭력성과 관련한 <피버 피치> 저자의 추론은 그럴듯하다. 우스개로 말하는 '지랄 총량의 법칙'처럼 어느 팀에나 말썽을 일으키는 팬들의 숫자는 절대 수는 비슷하게 있단다. 그런데 팀의 성적이 떨어지면 충성도가 떨어지는 팬들부터 경기장을 찾지 않는데, 폭력성이 강한 팬일수록 성적과 관계없이 극성맞은 응원을 이어간다. 그래서 극소수의 사고뭉치들이 갑자기 팬들 가운데서 큰 비율을 차지하며, 폭력 사건을 현장에서 구경하고 틈을 타서 동참까지 하려는 이들까지 몰려들면서, 팀까지 오명을 뒤집어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저자는 그의 가족이나 친지들이 결혼식이나 세례식 등의 모임을 그와 상의한 후에야 결정하는데, 이유는 바로 그에게 축구, 특히 아스널의 경기 관전이 우선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말한다. '축구는 결국 견디며 살아야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내가 만일 휠체어를 타는 처지라면 내 가족이나 친구들이 아파트 맨 꼭대기 층에서 행사를 열 계획은 하지 않을 테니, 축구 시즌 중의 토요일 오후에 행사를 열어야 할 까닭도 없지 않은가?' 논리적인지 낯이 두꺼운 건지 아니면 정말 장애인인지 헷갈린다.

올해 그래도 그는 반전을 맞았다. 현재까지 아스널이 프리미어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아스널이 1위 자리를 언제까지 지킬지는 알 수 없으나, 11월 중순의 아스널처럼 한국 대표팀도 멋진 상승세로 16강 진출을 이루기를 바란다. 손흥민 선수의 부상 등 악재가 있고, 처가 언급한 은행은 내심 탈락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10월 말의 너무나 가슴 아프고 부끄러운 참사의 기억을 다소나마 반전시켜 주길 기대한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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