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6411이라는 브랜드를 만든 연설의 첫 머리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6411이라는 브랜드를 만든 연설의 첫 머리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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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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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새벽 4시에 서울 구로동 가로수공원을 출발하는 버스가 있다. 출발해서 15분이 지나지 않아서 승객들이 가득 찬다. 만석이 된 버스의 복도에까지 피곤한 사람들이 주저앉아서 간다. 버스에 탄 이들의 대부분은 강남의 빌딩에서 청소부로 근무하는 이들이라고 한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5시 반까지 청소하는 빌딩에 도착해서, 빌딩에서 일하는 직장인들이 도착하기 전에 청소를 끝내야 한다. 보통 얘기하는 출근 시간이 그날 하루 그들의 첫 번째이자 가장 힘든 작업은 끝난 후이다. 이들을 두고 고(故) 노회찬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아들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에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고 있는 줄 의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 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 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실상 그들에게 노회찬 의원은 이름을 주었다. 2012년 7월 진보정의당 출범 당시 대표직을 수락하면서 한 그의 연설은 서울시 노선버스 번호 하나를 사람들에게 강하게 각인시켰다. 바로 6411번 버스이다. 그의 연설 본문은 그 버스를 호명하며 시작한다.

“6411번 버스라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을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는 그 당의 사람들에게도 낯설게 다가온 번호였을 것이다. 당연히 설명을 해줘야 한다.

“서울시 구로구 가로수공원에서 출발해서 강남을 거쳐 개포동 주공 2단지까지 대략 2시간 정도 걸리는 노선버스입니다.”

버스의 노선을 들으면서 당시 현장에 있던 상당수 인사는 누구의 이야기를 할 것인지 감을 잡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에게도 그 버스에 타고 있는 이들은 이름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미화원’이란 정부 공식 용어보다 ‘청소 노동자’라고 한 묶음으로 불리는 경우가 보통이었다. 연설과 함께 그들을 상징하는 숫자가 생겼다. 이후로 ‘6411’은 새벽 첫차를 타야 하는 노동, 그들 노동의 결과를 맛보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투명 인간’과 같은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용어가 되었다. 그렇게 ‘6411’이란 숫자로 구체화하면서 생기면서 보이지 않는 노동과 그를 수행하는 이들에 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6411은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되었다.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0년 11월 이맘때의 오후 5시경에 서울시 개포동에서 버스를 타고 영등포 쪽으로 가고 있었다. 피곤함에 쩔은 모습의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이들이 강남의 정류장마다 타서 반포쯤 오니 버스 복도까지 가득 채웠다. 그때 새삼 버스 번호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6411번이었다. 내가 가는 목적지를 따져서 타야 하는 버스 번호로 6411을 되뇔 때까지는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승객이 눈에 들어오며 6411은 노선 번호 이상의 의미가 있고 다가왔다. 승객들의 이름을 알지는 못하지만, 노회찬 의원의 연설이 떠오르면서 이제 그들은 더 이상 투명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들이 뒤에 남겨 놓은 하루의 신산한 노동까지 내 속에서 되살아났다.

‘6411’은 그 연설 이후 노동자의 소외와 권익을 얘기할 때면 자주 소환된다. 그리고 격한 주장과 언설과 그를 방어하거나 반격하는 더욱 격심한 반발의 언행들이 이어진다. 소리를 높여야만 진정성이 표현된다고 하는 이들에게 이제는 ‘6411 연설’이라는 역시나 또 하나의 브랜드로 불리는 노회찬 의원의 그날 연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물어보면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냐는 표정이 된다.

“최고위원은 꽃다발 하나 주는데, 당 대표는 세 개씩 주는 이런 불평등과 예산 낭비를 근절하겠습니다.”

노회찬 의원다운 농담 첫머리가 있었기에 그의 연설이 더욱 효과적으로 사람들에게 먹히며 빛날 수 있었다. 비장 일변도의 사회 운동과 싸움 방식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농담과 비유로 만드는 반전이 6411이라는 사회적 브랜드를 만들었다. 강대강(强對强)의 싸움은 어느 쪽도 얻는 것 없이 서로의 상처만 깊어지게 전개될 확률이 높다. 반전을 일으키는 농담처럼 나오는 유연함이 때로는 필요하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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