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펩시가 전투기 소동에 휘말린 까닭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펩시가 전투기 소동에 휘말린 까닭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12.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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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아무도 밝힌 적이 없어요.”

얼굴이 커서 어깨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6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까만 색 재킷에 역시나 까만색 티셔츠를 받쳐 입은 한 백인 사내가 초코볼 단지와 소형 지구의와 양쪽에 스탠드 등이 놓여 있는 고풍스러운 책상에 앉아 손 제스처를 취하며 말을 한다. 그의 서재인 듯한 방의 작은 창문 앞에 비스듬한 삼각형 형태를 취하며 책상을 배치하고 그 뒤에 본인의 몸을 감춘 듯 했다. 책상 위와 벽 뒤의 틀에 작은 트로피들이 어지럽게 뽐내고 있고, 책들이 별 규칙 없이 서가에 꽂혀 있거나 누워 있다. 앉아 있는 벽 뒤에는 1930년대 말에 미국과 나치 독일의 대리전으로까지 불렸던 유명했던 조 루이스와 막스 슈멜링의 복싱 대결 포스터가 액자에 끼워져 걸려 있다. 아무도 밝힌 적이 없고, 자신도 25년 동안 조용히 있었는데, 처음으로 세상에 알린다는 사실이 무엇일까.

“아트 디렉터인 돈 슈나이더와 저는 실제로 엄청나게 욕먹었어요.”

이어지는 이 말과 함께 그의 젊은 시절 사진이 나오는데, 파란색 철자로 펩시(PEPSI)가 새겨진- 실제 화면에 잡힌 모자에는 ‘P’는 보이지 않고 ‘EPSI’만 보인다- 하얀색 모자를 쓰고, 돈 슈나이더로 짐작되는 이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1990년대 펩시를 광고주로 가지고 있던 광고회사 BBDO에서 펩시 담당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마이클 패티였다. 펩시 광고를 오랫동안 담당하면서 광고인으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 마이클 패티는 나중에 영&루비컴(Y&R) 뉴욕의 대표를 거쳐 Y&R 월드와이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부회장까지 맡는 등 꽤 유명하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일궜다. 지금은 <슈렉> 영화에 나오는 당나귀를 귀엽고 과묵한 버전으로 만든 듯한 당나귀와 함께 양 떼가 있는 농장을 가꾸며 은퇴 생활을 즐기는 듯하다. 198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당시 세계 광고계를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전자, 정유, 방송 등에서 각 업종을 대표하는 소니, GE, 쉐브론, HBO 등의 광고주들을 담당하면서 화려한 시절을 보낸 그지만 그가 ‘엄청나게 욕먹었다’면서 회고하는 흑역사가 있다.

“’해리어 제트기 펩시’를 유튜브에 검색하면”이라고 그가 독백한다.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프로모션 사례가 떠오른다. 특히 최근 넷플릭스에 <펩시, 내 전투기 내놔(Pepsi, Where’s my jet)>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가 나와서 새롭게 화제가 되는 사건이다. 1996년 3월 펩시에서는 대대적인 경품 프로모션을 시작하며 아주 인상적인 광고를 선보였다. 십대 초반의 나름 미소년이 잔뜩 멋을 부리며 쿨한 패션 도구들을 갖추는데, 거기에 필요한 펩시 포인트가 표시된다. 펩시 한 캔을 사면 5포인트가 적립되는데, ‘티셔츠 75포인트, 선글라스 175포인트, 가죽 재킷 1450포인트’라는 식이다. 그런데 갑자기 학교 도서관과 수업 중인 교실에 광풍이 몰아치며 주차하는 남자 어른의 겉옷을 날려버린다. 사람들이 하늘을 보니 그 미소년이 수직이착륙 전투기로 알려진 해리어 제트기를 타고 나타나며, 거기에도 ‘해리어 제트기 7,000,000 펩시 포인트’라는 자막이 뜬다. 광고 자체로 화제가 되었는데, 진짜 유명해진 건 존 레너드라는 21세 청년이 포인트를 모아서 해리어 제트기를 타겠다고 마음을 먹으면서였다.

처음에 존 레너드가 계산해 보니, 제반 비용까지 합쳐서 430만 달러 정도를 써서 펩시콜라를 사면 3천 2백만 달러 정도로 추정되는 해리어 제트기를 경품으로 받을 수 있는 포인트를 모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거의 열 배에 가까운 투자 대비 수익이 가능한데, 이벤트 카탈로그를 보니 15포인트만 적립하면 그다음부터는 10센트를 내고 1포인트씩 살 수 있었다. 그러니까 펩시콜라 세 캔을 사고, 나머지는 70만 달러에서 1달러 50센트만 뺀 금액을 지불하면 해리어 전투기를 받을 수 있는 7백만 포인트 획득이 가능했다. 존 레너드의 멘토와 같은 친한 사업가가 70만 달러 수표를 써주고, 존 레너드는 그 수표를 펩시에 보내서 포인트를 요구하며, 자격을 달성하니 해리어를 달라고 했다. 사건의 발단부터 경과, 최근 존 레너드와 사건과 관련된 인물들의 인터뷰를 망라해서 유쾌하게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마이클 패티가 결연한 표정으로, 인터넷에서 ‘바보 같은 광고쟁이들’이라고 사고의 원인 제공자가 되었는데, 실제는 다르다면서 맨 위의 말을 했다. 어지러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A4 정도 크기의 종이를 ‘최초로 광고주인 펩시에 제시했던 광고 그림’이라며 집어 들어 펼쳐 보였다. ‘해리어 전투기 700,000,000 포인트’라고 씌어 있었다. 그대로만 나갔으면 패티의 말처럼 그런 소동이 일어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게 돌아간다.

BBDO에서 펩시에 제시한 최초 시안. ‘7억 펩시 포인트’로 씌어 있다. (넷플릭스 화면 캡처)

“잘 안 읽히네요(I find that hard to read).”

광고주 중 한 명이 1차 시사 하고는, 숫자가 너무 커서, ‘0’이 많아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불평했다. 그래서 ‘0’을 하나 뺐다가, 그것도 길다고 해서 다시 하나 더 빼서 7백만이 되었다고 한다. ‘million’이란 단어 자체가 기억하기도 좋고, 깔끔하게 떨어진다고 생각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7억이 7백만으로 단지 눈에 확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26년 후에 다큐멘터리로 제작까지 되는 엄청난 반전이 일어났다. 마이클 패티가 첫 번째 시안 스케치를 증거물로 보관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펩시 광고주 쪽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런 말을 했다고, 잘못했다는 이가 없다. 역시 광고로 인한 잘못은 광고회사 책임이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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