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진정한 ‘공정과 균형(Fair and Balanced)’의 2023년을 바라며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진정한 ‘공정과 균형(Fair and Balanced)’의 2023년을 바라며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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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현대차나 삼성 같은 대기업이야, 돈이 많아서 맘대로 프로모션 같은 것 하지만, 우리 KT는 돈도 힘도 없어서 제시한 것들 하기가 힘들 것 같은데요."

이 칼럼에서도 한차례 언급했던 2013년의 KT 위저드 야구단의 마케팅 계획 발표장에서 당시 KT 전무로 있던 정치권 출신 인사가 내 발표를 듣고 한 말이었다. 비아냥 섞인 그런 반론에 ‘대한민국 광고계의 3대갑’ 운운하면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며,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어냈다. 그런데 좀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인사가 KT가 돈도 힘도 없는 약자라고 실제 믿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고의 약자 코스프레는 메소드 연기처럼 스스로 약자라고 믿을 때 가능하지 않겠는가. 대체로 사람들은 아무리 돈이 많고, 힘이 세도 자신보다 더한 사람들을 보면서 자기 연민을 가지며 포기하거나, 반대로 독하게 마음을 먹고 무자비하게 달리기도 한다. 항상 다른 이에게서 자기보다 나은 구석을 애써 찾기도 한다.

우리 정치권 인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한국 언론의 90%가 보수 성향이라고 하는 데 반해, 다른 쪽에서는 노조가 한국 언론을 좌지우지한다고 서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두 가지를 사실 여부를 따지지 않고, 각각의 의견으로 같은 값을 매겨 취급하는 양상은 심히 불만이지만, 목소리만 들으면 피해의식은 양쪽 모두에서 분명히 지닌 것 같다. 이런 피해의식은 언론의 수용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우리 쪽의 소리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상대방이 잡은 언론 권력에 의해 묻히거나 왜곡된다고 여긴다. 그렇게 기울어진 운동장이지만, 우리 쪽만은 공정하게 균형을 잡고 간다고 위안으로 삼는다.

‘Fair and Balanced(공정과 균형)’이란 슬로건을 내걸었던 언론사가 있다. 많은 이들에게 놀랍게도 미국 우파 언론의 선두 주자로 도널드 트럼프 당선의 일등 공신이라고도 할 만한 폭스 뉴스(Fox News)이다. 폭스 뉴스를 만들다시피 한 인물인 로저 아일스가 만든 슬로건이라고 한다. 방송계 ‘미투(Me Too)’의 대표적인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물러난 바로 그 인물이다. 그 이야기는 2018년에 <Divide and Conquer: The Story of Roger Ailes>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히트했다. 공교롭게 2017년 5월에 로저 아일스가 자업자득의 비탄에 잠겨 있다가 세상을 떴고, 기다렸다는 듯이 그다음 달에 ‘Fair and Balanced’ 슬로건을 폐기하고, 바꾼다는 발표를 했다. 공식적인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로저 아일스 시대의 확실한 마감으로 많은 이들이 생각했다.

로저 아일스는 거침없는 언행으로 유명했다. 마초적 기질의 카리스마라고 우러러보는 이들도 있었고, 언젠가 큰 사고를 칠 거라고 하면서 우려하며 기다리는 이들도 있었다. 아일스로서는 인생 대부분 기간에 꺼릴 것 없는 권세를 휘둘렀는데, 결국은 그 거친 언행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아일스가 얘기한 ‘Fair and Balanced’는 일반적인 ‘공정과 균형’의 뜻과는 다르다. 공정함의 여부와 균형점의 위치를 결정하는 이가 바로 폭스 뉴스였고, 로저 아일스 자신이었다.

폭스 뉴스에서 ‘Fair and Balanced’와 함께 자주 쓰던 구호 중의 하나가 ‘We Report. You Decide(우리가 보도하고, 여러분이 결정합니다)”였다. 이 역시 로저 아일스의 작품인데, 뒤 문장이 ‘You Follow(당신은 따릅니다)’로 읽힌다. 새로이 바꾼 슬로건은 폭스 뉴스의 자신감이 한껏 반영되어 있다. “Most Watched, Most Trusted(가장 많이 보고, 가장 신뢰받는)”으로 ‘시청률 1위, 신뢰도 1위’라는 나름의 객관적인 지표에 기초하여 내놓은 슬로건이었다. 그런데 2019년 MSNBC가 시청률에서 앞서는 등 사실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흔들리지 않는 건 구호는 폐기했지만, 자신들이 공정하며 균형을 지킨다는 다수 폭스 뉴스 시청자들의 믿음이었다. 미국 국회의사당으로 난입해도 그건 상대편에서 너무 무도하고 극단적인 행위를 저질렀으므로 어쩔 수 없는 공정하고 균형 잡힌 대응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2021년 일론 머스크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은 중도인데, 극단적으로 왼쪽으로 달려간 이들이 자신을 극우로 보이게 했다고 강변하는 것 같은 양상이다.

자기중심적인 공정과 균형은 떨치고, 진정한 문자 그대로의 서로 상대를 생각하며 배려하고, 균형점을 모색하는 그런 대화가 꽃 피는 새해를 기대하며 기원한다. 그런 사회로의 반전에 광고가 이바지하는 2023년이 되기를 바란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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