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불길 속의 동물원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불길 속의 동물원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1.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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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으로 폐허가 된 베를린 동물원
2차 대전으로 폐허가 된 베를린 동물원 (출처 Berlin Zoo)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19일 오전 2시 58분쯤 경북 구미시 금오산 인근 한 놀이공원 내 동물원에 불이 나 비닐하우스 7동을 태워 모두 2200여만원(소방서 추산)의 피해를 내고 1시간 20여분만에 꺼졌다. 이 불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동물원 인근 비닐하우스 7동이 모두 불에 탔고 현장에 있던 토끼와 물고기 등 동물 39종 100여 마리도 모두 불에 타 폐사했다.’ (서울신문 20230119 인터넷판)

기사 앞머리에서 놀이공원의 이름을 쓰지 않은 까닭이 궁금했다. 알 만한 사람이면 알 수 있고 나름 홍보 활동도 열심히 전개했고, 지역형의 알뜰살뜰한 놀이공원 모델을 제시하고 있는 ‘금오랜드’의 이름을 왜 가렸는가. 불미스러운 일이나 부정적인 기사에서 기업 이름을 빼기 위해 애썼던 이들이 생각났다. 뒤로 가면서 동물원 우리에서 속수무책으로 화마 속에서 사라져 간 동물들의 마지막이 상상되며 가슴이 아팠다. 이 동물원은 다양한 물고기와 덩치가 작은 포유류들을 주로 전시하여, 아이들이 직접 동물들을 안아 보면서 접촉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했다. 바로 전날까지 아이들 품에 안겼던 동물들이 화재로 스러져 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런 일은 전쟁 중에서나 일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 유럽 전장에서 독일이 항복하기 직전 소련군과 독일군이 베를린 시가전을 벌이던 와중에 베를린 중앙공원이라고 할 수 있는 티어가르텐 영내와 그 주위를 야생 동물들이 우왕좌왕 뛰어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티어가르텐 안에 있던 베를린 동물원의 우리가 포격으로 무너지고, 관리인들도 자리를 피하면서 동물들이 그들을 가두고 있던 우리에서 나와 먹이를 찾거나 일순의 자유를 누리는 듯이 코믹하게 그린 영화와 문학 작품도 본 기억이 있다. 베를린 최후의 전투를 본 동물들은 아주 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존재들이었다.

전쟁으로 쓰러진 기린 (출처 https://albumwar2.com/)
전쟁으로 쓰러진 기린 (출처 https://albumwar2.com/)

1939년 2차대전이 터지던 당시 베를린 동물원에 있던 동물들은 거의 4천 마리에 가까웠다. 그들 대부분은 수차에 걸친 베를린 공습 때 사망했고, 우리에서 나와 베를린 시내와 공원을 뛰어다니는 본의 아닌 자유를 누렸던 동물들은 최다로 잡아도 100마리가 되지 못했다. 영국 공군을 주축으로 벌어진 베를린 공습이 여러 차례 이어졌다. 1943년 11월 23일의 공습이 특히나 대규모였고, 베를린 동물원으로도 집중 폭격이 이루어져, 동물들에게는 그야말로 악몽의 밤이 되었다. 그날의 공습 중 물속이나 물가에서 생활하는 동물들이 있는 아쿠아리움을 폭탄이 직격했다. 폭발이 일어나며 아쿠아리움의 수족관이 터지면서 물고기들이 하늘로 날렸고, 악어, 거북이, 물곰 등의 해양 생물들도 폭발이 만들어낸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날아갔다. 다음 날 아침에 티어가르텐 바깥의 주민들이 길가에 죽어 있는 악어를 보고 질겁을 했다고 한다.

폭발의 물리적 충격보다 심리 쇼크가 동물들에게는 더 결정적인 타격을 주었다. 동물원 바로 옆에 동물원을 상징하고 알리는 큰 타워 건물이 있었다. 그곳에 대공포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공원 안의 상대적으로 한적한 지역에 높이 설치되어 있다 보니, 공습 폭격기들에 대항하는 대공포의 위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곳이 되기도 했지만, 그만큼 공습 편대의 핵심 목표가 되었다. 주위 상공은 공습 내내 가까이 접근하는 전투기들의 엔진 굉음에 폭탄이 떨어지면서 나오는 점점 더 가깝고 크게 들리는 휘파람 같은 소리에, 고막을 터뜨릴 듯한 폭발음이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들었다.

피할 수도 없이 우리 안에서 영문도 모른 채 그 소리를 듣고, 폭탄이 터지며 일으키는 화염과 이어지는 화마를 보고, 연기를 맡고 들이마시며 다수의 동물이 미쳐버렸고, 공포 그 자체로 즉사한 무리도 많았다고 한다. 동물원에 코끼리가 8마리 있었는데, 7마리가 그날 밤의 공습으로 세상을 떴다. 혼자 남은 한 마리는 종전을 맞이하고 1947년에 자연사했다고 하는데, 그 역시 죽을 때까지 심리적 상처로 인한 돌발 행동 등의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2차대전에서 독일과 함께 추축국이었던 일본에도 도쿄 중심부 우에노 공원 안에 동물원이 있었다. 일본 최초의 근대 동물원이자 천황이 도쿄도에 하사하여 일본인들에게는 매우 뜻깊은 곳이었다. 전쟁이 계속되고 전황이 불리해지면서 동물 사육을 지탱하기 힘들고, 공습으로 우리가 파괴되었을 때 맹수들이 밖으로 나가 시민들과 사회 안전에 해를 끼칠 수 있다고 하여 동물들을 위험도에 따라 분류하고, 그들을 처치하는 소위 ‘최종계획’이란 것까지 만들었다. 폭격 피해 보기 전에 대부분의 동물을 독약으로 죽였는데, 덩치 때문에 위험도 1등급에 속한 코끼리는 머리가 좋아서 독약임을 감지하고 먹는 걸 거부했다고 한다. 결국 당시 동물원에 있던 코끼리 세 마리를 굶겨 죽였는데, 사료 공급을 끊은 절식(絶食) 이후 죽기까지 각각 13일, 19일 그리고 30일이 걸렸다고 한다. 굶어 죽고 있는 코끼리들을 바라보는 사육사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1975년 종전 30주년을 맞아 우에노 동물원 안에 2차대전 때 죽은, 실상은 동물원 측이 죽인 동물들을 위한 위령비가 세워졌다. 

우에노 공원 위령탑 (출처 https://apjjf.org/)
우에노 공원 위령탑 (출처 https://apjjf.org/)

일본인들은 자신들이 죽인 동물들의 영을 위로하는 위령비는 세우면서, 왜 그들이 참혹하게 죽인 사람들에게 대한 책임은 부정하는 걸까. 동물에 대한 책임과 잘못은 인정하고 빌면서, 사람들에 대해서는 무시하고 궤변으로 일관하는 것도 반전이다. 너무 오랫동안 그런 태도를 지키고 있어, 이제는 그들이 한국을 비롯한 구 일본의 식민지나 침략을 받은 국가 출신으로 그들 때문에 희생된 인간을 위한 위령비를 세운다면 그게 반전이 되겠다.

진정한 계묘년이 시작되기 사흘 전에 구미에서 불길 속 사그라진 동물 친구들의 명복을 빈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이화여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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