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여객기의 호화 서비스와 반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여객기의 호화 서비스와 반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1.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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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여권 가지고 있냐?”

첫 직장 입사 후에 부서 배치를 받고 한 달이 되지 않았을 때, 과장님께서 큰 일거리가 떨어졌다며 물어봤다. 대답을 기다릴 새도 없이, ‘없지?’라고 확인하듯이 다시 묻고는 빨리 여권을 만들자고 했다. 그해 첫날에 해외여행 자유화 발표가 나왔으니, 막 대학을 졸업한 자로서 여권이 없는 게 당연했다. 1989년, 여름이었다.

급하게 여권을 만들고, 외부 프로덕션의 촬영팀을 이끌고 한 달 정도 영국, 미국, 일본 3개국의 곳곳을 다녔다. 당시 영국 런던까지는 미국 알래스카의 앵커리지에 섰다가 가는 경유 항로로만 가야 해서 총 18시간 정도가 걸렸다. 대서양을 건너는 영국 런던에서 미국 뉴욕이 8시간, 뉴욕에서 일본 도쿄까지 15시간의 비행까지 출장 기간에 장거리 여정이 세 차례 있었다. 비행기를 탈 때마다 고가의 카메라에 조명 기구들까지 챙겨서 짐을 싣고 내리는 것도 큰일이었고, 무엇보다 비행기 좌석에서 카메라를 안고 가는 카메라맨이 식사 때마다 아주 곤혹스러워했다. 촬영 시간에 쫓기고 하니 몸이 힘든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프리랜서로 연출을 맡은 가장 나이 든 분 말씀이 일정과 이동 조건이 무리라며, 외국에서는 3시간이 넘으면 촬영팀은 비즈니스석을 탄다고 푸념 비슷하게 말을 건넸다. 그래서 다음에 촬영 건으로 해외 출장을 가게 되면 외국 애들 부럽지 않게 비즈니스석으로 이동하게 하겠노라고 말했다.

바로 다음 해에 놀랍게도 그 촬영팀과 더 많은 10개국 이상을 50일에 걸쳐서 다니게 되었다. 공약한 대로 3시간 이상은 모두 비즈니스석을 끊으라고 했다. 신입사원 티를 벗지 못한 자로서 겁 없이 지른 일이었다. 과장님께서 당신은 양해할 터이니, 다른 이들에게는 좌석 등급에 대해서 아무 얘기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당시 일정에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두바이를 경유하여 독일 프랑크푸르트까지 가는 비행이 가장 길어서 중간 체류 시간 포함하여 20시간 정도 되었는데, 긴 시간 여행을 마치고 촬영팀 일원들이 ‘비즈니스석으로 오니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라고 하여 뿌듯했다. 이후 출장 내내 유럽에서 미국으로 대서양을 건너고, 미국 동서 횡단, 미국 서부에서 일본으로 가는 태평양 노선을 당연한 듯 비즈니스석을 즐기며 다녔다.

그런 호사(?)는 그때의 출장 후에는 띄엄띄엄 운 좋게 승급이 된다든지, 동행 출장자와 격을 맞추거나 기내에서 함께 할 일이 있을 때 마일리지를 써서 항공사 승무원 속어로 ‘꼬랑지’가 되면서나 누렸다. 그러다가 1997년에 함께 일을 했던 외국 회사의 비용으로 뉴욕에서 프랑스 파리로 가면서, 에어프랑스의 비즈니스석을 이용하게 되었다. 에어프랑스의 모든 비행기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탄 노선에는 비즈니스석 공간 안에 바텐더가 각종 칵테일과 와인을 서비스하며 2~3인이 술잔을 놓고 얘기하기 좋은 스탠딩 테이블이 3개 있는 라운지 바(lounge bar)가 있었다. 재떨이가 스탠딩 테이블마다 놓여 있어서 비즈니스석의 승객들이 담배를 피우며 모여서 마치 파티하듯 서로 자기소개도 하며 와인이나 위스키를 부딪치고 있었다.

한때 미국의 대표적인 두 항공사에서 비행기 안의 라운지 바를 가지고 서로 자기가 낫다고 유치한 경쟁을 벌이고, 그걸 광고에서도 풀어놓은 적이 있었다. 1970년대 초에 아메리칸 에어(American Air)에서는 비행기 안에 라운지 바를 설치했다고 자랑했다. 그러자 라이벌인 유나이티드 에어(United Air)에서는 비행기 앞과 뒤에 두 개의 라운지 바를 만들었다며 대응했다. 라운지 바를 세 개까지 놓기는 그랬는지, 아메리칸 에어에서는 다른 식으로 반격했다. 라운지 바 안에 진짜 피아노를 들여놓은 것이다. 1971년에 나온 광고에서는 평소 피아노 실력이 별로 신통치 않다는 평가를 듣는 이가 하늘의 항공기 안에서 피아노를 치자 승객들이 몰려서 칭찬하며 좋아하는 모습을 그렸다. 당시 승객들의 실제 피아노 이용률이 얼마나 되었는지 궁금하다. 유나이티드 에어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프로 연주자로 비행기 안에서 라이브 공연을 제공하는 걸로 응수했다. 피아니스트는 아니고 기타 연주자가 공연했다. 경제지였던 월스트리트저널의 한 기자가 당시 유나이티드 에어의 경영자 한 명을 만나러 갔다가, 선발 오디션을 보러 줄을 선 기타리스트들을 보고 기가 막혀 했다는 일화를 기록했다. 어쭙잖은 기타리스트들에게는 새로운 일자리가 크게 열린 셈이다.

본의 아니게 기타리스트 복지를 위해 앞장선 유나이티드지만, 2009년에 기타로 인해 혼쭐나는 사건을 겪는다. 데이브 캐롤이라는 연주자가 유나이티드 직원들이 함부로 다뤄 수하물인 그의 기타를 망가뜨린 데 항의를 하였지만 유나이티드에서는 캐롤의 표현으로 ‘무관심(indifferent)’, 곧 별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캐롤은 사건의 발단부터 처리 과정까지 꼬집은 노래를 만들어 뮤직비디오를 유튜브로 공개했다. ‘United Breaks Guitars(유나이티드는 기타를 부수지)’라는 제목의 뮤직비디오는 유튜브에 2009년 7월 6일에 올렸는데, 그다음 주에 아이튠즈 1위에 오르고, 8월 중순에 유튜브 5백만 뷰를 돌파하고, 여러 언론 매체에서 소개하고, TV 토크쇼에서 게스트로 부르는 등 엄청난 화제가 되었다. 소셜미디어 시대 한 소비자의 힘이 얼마만 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보여준 사건이었다. 한때 기타 사랑을 실천했던 유나이티드로서는 너무나 뼈 아픈 자업자득의 반전이었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이화여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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