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소식좌의 먹방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소식좌의 먹방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12.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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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화장품(K-Beauty), 대중음악(K-Pop), 드라마(K-Drama)와 함께 한류의 대표주자로 ‘먹방(Mukbang 혹은 Meokbang)을 언급하는 외국인들이 꽤 있다. 음식을 먹는 모습을 방송하는 영상이 왜 한국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며, 한국 문화의 주요 구성 요소로 인정을 받는 것일까. 사실 재료나 모양이나 맛이 특별한 요리를 소개하며 먹는 장면을 담은 콘텐츠는 외국에서 오래전부터 있었다. 처음 외국 생활을 하면서 TV의 요리 프로그램이 너무나 많았고, 유명 스타 대접을 받는 셰프들도 줄줄이 등장했던 게 신기했다. 그런데 먹는 것 자체가 주(主)가 된 콘텐츠는 거의 없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시작부의 그 유명한 마들렌처럼 뭔가를 촉발하든지, 영화 <대부> 1편에서 스파게티 요리법을 보여주는 것처럼 인물들의 여러 측면을 보여주는 장치로 쓰인다. 모두 일상에서 크게 의도적으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음식이 나오고 만들어지고 섭취된다.

한국어 먹방이 국제 공통 용어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의 음식은 현실을 벗어난다. 보통의 정도에서 넘치는 과(過)함이 몇몇 형태로 나타난다. 가장 먼저 섭취하는 음식의 양이 과다하다. 국산 육류 소비 진흥을 담당하는 부처의 커뮤니케이션 부문 자문을 했던 적이 있었다. 자문 맡기 직전에 예쁘장한 보통 체격의 유명한 여성 먹방 유튜버와 영상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렸다고 한다. 그 여성이 앉은 자리에서 고기를 4킬로가 넘게 먹으면서 중간중간 직접 체중계에 올라서 몸무게가 얼마나 느는가 보여주었다고 한다. 담당 부서장이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고기 먹고 싶어지겠어요? 도망가고 싶지’라고 할 정도로 과도한 섭취량이 먹방의 제1요건과 같이 되었다.

2010년대 초반부터 먹방이 인기를 끌고, 용어 자체가 일상용어로 자리를 잡으며,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듯 거대한 음식 더미를 앞에 둔 먹방 유튜버들의 무수히 등장했다. 그런데 그 이전의 아시아에서는 대식의 포스를 보여주는 이들과 장면들을 담은 문화 콘텐츠들이 꽤 있었다. 1988년 개봉된 홍콩 영화 <대호출격(大虎出擊)>-홍콩에서의 원제는 <노호출경(老虎出更)>-의 첫 부분에서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배우 저우룬파(周润发)는 달걀 10개를 하나씩 깨어 날 상태 그대로 긴 유리컵에 부은 후에 꿀꺽꿀꺽 마시는 엽기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놀라서 쳐다보는 옆자리 남녀에게 ‘대대로 전해 오는 보양식’이라며 ‘이소룡이 성룡에게 그리고 다시 적룡에게 전했다’라는 얘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다. 유부녀의 불륜 상대로 밤을 지새운 나태하고 바람기를 주체 못 하는 형사의 면모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날달걀 10개였다.

과하게 먹는 장면이 나오는 한국 영화의 대표로 박찬욱 감독의 <올드 보이>를 뽑을 수 있다. 두 가지 음식이 나온다. 무엇으로도 억제할 수 없는 복수 일념과 함께 그 복수는 날것으로 잔인하고 처절하게 연출될 것이라 예고하는 산낙지를 우걱우걱 먹는 장면. 그리고 너무나 유명한 15년 동안 변함없이 먹어야 했던 군만두. 배우 최민식은 짜장면을 좋아해서 짜장면으로 원했고, 탕수육도 후보에 있었는데, ‘왜 군만두로 했는가’라는 한 평론가의 질문에 박찬욱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짜장면에 비해 닫힌 세계, 완결되고 갇혀 있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양의 과도함과 전혀 반대쪽으로 달려가는 반전의 먹방도 나왔다. 소식으로 유명인들이 방송을 탔고, 그들에게는 ‘소식좌’라는 칭호가 붙었다. 남성 소식좌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코드쿤스트가 패스트푸드 치킨버거의 광고 모델로 등장한 건 식음료 광고의 공식을 깨는 반전이었다. 짧은 시간에 엄청난 양을 먹어 치우는 것에서 긴 시간을 두고, 조금씩 섭취하는 독특한 먹방 형식을 취했다. 자연스레 그 버거를 ‘코쿤 버거’라고 부르는 이들이 늘어났다. 모델의 이름이나 카피로 제품을 부르는 사례는 꽤 있었다. 버거 종류에도 ‘이정재 버거’나 ‘사딸라 버거’ 등이 있었다. ‘코쿤’은 모델의 애칭이기도 하나, 그 자체로 외부와 연결을 꺼리며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을 즐기는 이들이나 그런 생활을 말한다. 생각날 때마다 한 입씩 몇 시간을 두고 떼어먹는 ‘패스트(fast)’나 ‘버거(burger)’, ‘먹방’의 느낌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간 이 광고는, 일단 바이럴 측면에서는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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