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버드와이저의 터널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버드와이저의 터널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2.11.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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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설국이었다(国境の長いトンネルを抜けると雪国であった).”

얼마 전 ‘가장 유명한 소설의 도입부 Top 10’이라는 제목의, 한 블로거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순위 리스트를 보았다. 거기서 당당 1위로 바로 위의 일본의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인 <설국>의 첫 문장을 올렸다. 정작 <설국> 작품을 완독한 건 3~4년 전이었는데, 이 문장을 워낙 귀에 익숙하게 들었고, 인용된 것을 자주 보아서인지 예전에 읽었던 걸로 착각하고 있었다. <설국>이라는 제목부터 하얀 눈에 덮인 광활한 벌판이 연상되었는데, 첫 문장에서 어둡고 긴 터널과 대비되어 나타나는 순백이 강렬했다. 그러나 소설 전편을 읽으면서는 ‘터널’의 존재가 그 하얀 설국에 점차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경계를 가르는 터널이라는 과정이 있기에 순백의 새로운 세계가 더욱 빛날 수 있었다. 아니 터널이 없이는 그런 세상에 발을 들여놓을 수도 없었다.

“위대함에 이르는 마지막 과정, 터널(Tunnel, the final moment before greatness).”

버드와이저(Budweiser)는 코카콜라, 맥도날드와 함께 월드컵의 먹고, 마시는 부분을 담당한 대표적인 스폰서이다. 치맥, 피맥이라는 단어가 축구 경기할 때면 인기 검색어로 뜰 만큼 맥주는 경기장에서건 TV 시청을 하는 거실에서건 스포츠 관람 현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그런 맥주 분야의 스폰서인 버드와이저가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펼치는 캠페인의 핵심 크리에이티브 요소가 ‘터널’이었다. 버드와이저 맥주병의 뚜껑이 열리며 맥주가 소용돌이치는 병목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화면이 나온다. 그리고 약간 들떴지만 위엄이 있는 영어 내레이션으로 나오는 위의 카피로 월드컵 캠페인의 문을 열었다.

터널은 여러 뜻을 가진다. 이번 월드컵의 슈퍼스타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리오넬 메시, 네이마르 주니어, 라힘 스털링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 버드와이저 홈페이지의 대문 사진으로 걸려 있었다. 그들의 뒤쪽으로 약간 차분하긴 하지만 댄스 클럽이나 패션쇼의 캣워크를 연상시키는 조명이 어우러진 천장으로 장식한 통로가 보인다. 선수들이 대기실에서 나와 경기장으로 들어서는 통로를 터널이라고 한다. 동영상 광고에서는 그 터널을 관중들이 북을 치고 응원 깃발을 흔들어대며 흥겨워하며 지나간다. 바깥에서 출입구를 지나 관중석으로 향하며 선수들과는 다른 터널을 지난다. 관중석이건 축구장의 잔디 위에서건 그들은 모두 위대함을 함께 만들어 간다.

“당신의 터널이 어떠하든, 월드컵은 당신의 것이다(NO MATTER YOUR TUNNEL, THE WORLD CUP IS YOURS TO TAKE).”

관중들이 흥겹게 경기를 즐기기 위하여 관중석으로 향하는 가운데 이렇게 자막이 뜬다. 이제 터널은 경기장 통로 이상의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인생의 어둡고 힘든 순간을 흔히 터널에 비유한다. 그런 힘든 과정을 거치고 있어도, 월드컵 때만큼은 온전히 나 자신으로 즐기라는 말이 된다. 그리고 그 옆에 버드와이저가 있어서, 터널을 잊거나 헤쳐 나오도록 도와주리라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전달하고 있다. 버드와이저 홈페이지 대문에 나온 세 선수가 터널을 나오는 장면이 있는 광고에서는 자막 뒷부분이 살짝 다르다.

“세상은 당신의 것이다(THE WORLD IS YOURS TO TAKE).”

월드컵 세상에서는 거칠 것 없이 전통의 스폰서로 관중석과 축구팬의 거실을 지배하던 버드와이저이지만, 이번 카타르에서는 경기장에서의 맥주 음용 금지라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슬람 국가의 관습 등을 고려하여 미리 조치를 다 취했다고 생각했는데, 대회 시작 직전에 만난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오죽하면 ‘으잉, 말도 안 돼(Well, it’s awkward)’라는 트윗을 날리기까지 했다. 바로 삭제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터널’이라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반전 도구를 끄집어냈던 버드와이저가 경기장 내 맥주 금지라는 이 터널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보는 것도, 버드와이저에는 미안하지만, 이번 월드컵의 마케팅 분야에서는 흥미로운 부분이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인하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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