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속물들의 행진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속물들의 행진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01.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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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출처 픽사베이

[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어깨가 아파서 열탕에 들어가 찜질을 하기 위해 동네 목욕탕에 다니고 있다. 여느 동네 목욕탕 사우나와 마찬가지로 파우더룸의 TV에서는 아침 시간이면 뉴스가 나오고, 보도하는 것마다 한 마디씩 훈수인지 논평인지 하는 양반들이 있다.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에서 장애인들도 지하철을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요구하며 소위 ‘승하차 시위’를 벌이자, 강경 대응으로 나선 서울시에서 서울시교통공사를 통하여 불법시위로 피해를 봤다며 6억 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전장연에서는 폭행당했다며 고소할 움직임을 보인다는 보도가 나왔다. TV 뉴스를 보던 한 양반이 쯧쯧 소리를 크게 내며 말했다.

“야 이 자식들아. 얼마나 더 먹겠다고 그 난리를 피우고 있냐. 작작 좀 해라.”

그분은 서울시로부터 보상금 같은 것을 얻기 위한 시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모든 행동을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걸로 정의하고 그걸 구시렁거리며 뒷담화하는 이들이 꽤 있다. 나이나 성별을 떠나서 항상 있었던 것 같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에 청소 당번을 하는 친구와 함께 집에 가려고 기다리다가 청소를 도와주니까 담임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 그런다는 초등학교 애를 봤었다. 학생운동에 앞장서는 친구를 보며, 나중에 정치하려고 나선다고 툴툴거리는 친구도 있었다. 1990년쯤에 컴퓨터가 회사 사무에 일반 직원들도 활용할 수 있게 보급되면서, 한 친구가 IT를 업무에 접목하는 TF(태스크포스) 일을 함께하게 되었다. 하루 내내 컴퓨터 앞에서 일한 친구에게 그의 팀장이 오후 늦게 뒤쪽으로 와서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더란다.

“종일 컴퓨터 하며 놀았으니까, 이제 일도 좀 해야지.”

친구 청소를 도와주는 애의 뒷담화를 했던 아이는 자신도 뭔가 칭찬받을 일을 하고 싶었는데, 귀찮고 쑥스럽고 해서 못했다. 학생운동의 의도를 의심하던 친구도 민주화에 한몫하고 싶었으나 무섭기도 하고, 집안 걱정도 하며 차마 뛰어들지 못한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이 그렇게 표현이 된 것으로 본다. IT 트렌드에 무지한데, 젊은 팀원들에게 물어보며 배우기는 쑥스럽고 체면이 손상된다고 여기던 팀장님이 열심히 일하던 팀원에게 엉뚱한 면박을 주는 걸로 나타났다. 전장연의 시위를 돈과 결부시키는 이들은 자신 언행의 모든 동기가 돈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이다.

최근 모 신문의 기자 하나가 부동산 관련한 피의자에게 돈을 빌리거나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그런 짓 하려고 기자 짓한 거면서, 그렇게 잘난 체를 했단 말이야.” 한 친구가 고소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똑같은 짓을 한 다른 신문사는 경영층이나 전체 신문 차원의 아무런 사과나 움직임이 없는 데 비하여, 그 신문은 대표이사와 편집국장이 바로 그만두었다는 얘기에 그 친구는 한 마디로 코웃음을 쳤다. “쇼하는 거야.”

선행을 하는 이들의 존재 자체가 불편한 이들이 꽤 있다. 아주 오래전 회사 동료들과 하는 어느 술자리에서 한 사람이 술안주로 올랐다. ‘아주 정치적이다, 곧 윗사람이 원하는 것은 미리 알아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한다. 반면에 아랫사람에게는 무자비하기 그지없다’ 등등. 조용히 술잔만 홀짝거리며 그 얘기를 듣고 있던 최고 선배 하나가 불쑥 얘기했다. “야, 그 친구는 속물이라도, 내가 아주 존경하는 속물이다. 속물이 되려면 그렇게 해야 해! 너희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못하는 놈들이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 그 일갈에 모두 묵묵부답이었다. 모두들 부러움 한 자락 깔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뒤로 속물들을 안줏거리로 올리는 일이 드물어졌다.

사회와 인류에 진정으로 선한 변화를 가져오고자 노력하는 이들을 상 위에 모시듯 올려놓고 존경과 감탄으로 시작해 조소로 넘어갔다가, 심하게는 저주에 가까운 욕지거리 비슷한 외침까지 이미 어슴푸레해진 그림자를 향해 질러대기도 했다. 그리고 함께 욕하지 않는 친구들에게, 설날 귀갓길 아버지 발걸음 제대로 따라오지 않고 까분다고 어린애들에게 호통 치듯 소리치며, 동조자로 수준을 맞춰 떨어트려야 맘이 편했다. 찌질하기 그지없는 커뮤니케이션이다.

 


※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이화여대·한림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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