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비건의 배신과 딥페이크

[박재항의 反轉 커뮤니케이션] 비건의 배신과 딥페이크

  • 박재항 대기자
  • 승인 2023.1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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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드타임스 박재항 대기자] “‘비건(vegan)’이라는 게 나의 정체성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내가 도덕의식이 높은 사람이라는 걸 비건이라는 사실이 말해줍니다.”

“내 목뒤에 ‘v’자 타투가 새겨져 있어요. ‘비건(vegan)’의 ‘v’에요.”

“앞으로 내 평생 고기(meat)를 먹을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사람들이 고기나 햄버거 먹는 모습만 봐도 이제 역겨워요.”

이렇게 100% 철저한 비건 원칙을 고수하며, 그 사실에 자부심을 가진 이들이 작은 회의실 같은 공간에서 카메라를 보고 말한다. 이어 지글지글 볶은 스테이크를 듬뿍 넣고 그 위에 치즈까지 흘러넘칠 정도로 뿌린 샌드위치를 만드는 화면이 나온다. 그리고 모임 진행을 맡은 이가 샌드위치를 그들 앞에 내놓으며 말한다. “드시고 싶으시면 드셔도 아무 상관 없습니다.” 약간 의심스럽게 샌드위치를 쳐다보던 이들이 냄새를 살짝 맡아보고, 조금 뜯어서 내용물을 보더니, 한 입씩 베어 물기 시작한다. 그리고 환하게 표정이 바뀌며 말한다.

“와우, 맛있어요”, “엄청나요.”, “정말 좋아요.”

“하나 더 먹고 싶은데요.”

“사실 고기가 너무나 그리웠어요.”

“비건으로 돌아갈 일은 없을 거예요.”

“고기 맛에 홀딱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겠네요.”

“샐러드나 먹는 인간들, 참 안됐어요.”

이 사람들이 조금 전까지 엄격한 비건이라고 말한 이들이 맞나 싶게 샌드위치의 고기 맛 예찬을 늘어놓더니, 세계평화를 위해서도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까지 나아간다.

“더 많은 사람이 고기를 먹는다면, 이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될 거예요.”

“우리나라 안의 분열을 고기가 메꿀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자신들이 말하는 장면들을 보여주자 당황하고 경악한다. 화면을 돌려서 샌드위치를 서빙하며 하는 말이 나온다. “이건 철저하게 비건 재료로만 만든 치즈 스테이크 샌드위치예요. 두부를 스테이크처럼 만들었죠.”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샌드위치를 보고, 속 내용물을 살피는 이들의 이전에 나온 화면이 나오고, 하나씩 조심스럽게 맛을 본다. 이어 그들이 샌드위치를 평하는 발언까지 화면에 담았고, 영상 데이터를 가지고 편집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리 준비한 고기에 빠져서 사는 육식 예찬자들의 적나라한 발언들이다. ‘하루에 한 끼는 꼭 고기를 먹어야 하고, 그게 자랑스럽다’, ‘내가 고기 좋아하는 건 세상이 다 알지’, ‘고기를 먹지 못하면 기분이 나빠져’, ‘인간 본성이 고기를 먹게 되어 있어’ 따위의 유치한 말들이다. ‘v’자 타투를 했다는 이의 말은 ‘meat’의 ’m’자를 새겼다고 바뀌었다.

실제로는 그들은 대체육 비건 샌드위치를 먹었고, 그에 대한 느낌을 말했는데, 비건을 배신하는 반대의 충격적인 발언들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의 음성과 입 모양까지 맞춰서 꾸민, 이른바 딥페이크(deepfake) 영상으로 만들어 보여준 것이다. 철저한 비건을 자처하는 이들이 당혹스러워하며 자기 말이 아니라고 부정하는 가운데, 자막이 뜬다.

“비건들이 고기를 좋아한다고 말하게 할 수 있는 딥페이크라면, 당신이 어떤 말을 할 수 있게 만들지 상상해 보세요(If a deepfake can make a vegan say they love meat, imagine what a deepfake can make you say).”

진행자가 딥페이크의 위험성을 다시금 강조하고, 규제하는 법안을 마련할 것을 청원하라 말하고 같은 내용이 자막으로도 뜬다. 그러면서 더 많은 정보를 보고 싶으면 ‘DEEPSTAKE.AI’를 방문하라고 한다. 딥페이크에 대한 경각심을 갖도록 하는 캠페인이었다. 

문제는 비건들을 희화화할 수도 있는 소재가 문제였다. 게다가 이걸 제작하고 집행한 회사가 얇은 스테이크, 우리나라로 치면 대패삼겹살을 연상하게 하는 스테이크를 주종으로 하는 ‘스테이크-으음(Steak-Umm)’이란 회사다. 딥페이크와 비슷하게 ‘딥스테이크’를 제목으로 내세웠다. 이도 반전이라면 반전이겠지만, 심각한 메시지를 이들이 함으로써 장난처럼 되었다고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도 나타났다.

출처: ‘스테이크-으음’ 홈페이지
출처: ‘스테이크-으음’ 홈페이지

 


박재항 매드타임스 대기자, G_BAT대표, 인하대 초빙교수, 이화여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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